[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배고픈 공연을 보았다. 극장이 넓지 않아 배고팠고, 관객 수가 많지 않아 더 배고팠다. 그러나 가장 허기졌던 것은 그들의 진지한 고민과 사유의 폭을 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서였다.

연극 '벚꽃동산'은 안톤 체홉의 희곡이 원작이다.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아트씨어터 문'이라는 공연장은 '체홉 전용 극장'이었다. 한 작가의 전용 극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지만, 그것도 연극의 고전작가라 불릴 수 있는 체홉의 전용 극장이라니, 패기가 대단해 보였다. 매번 새로운 현대 창작극을 올리기 바쁜 수많은 극장들 가운데, 체홉의 고전 작품들만 올리기로 했다는 이 극장에 더욱 눈길이 갔다.

체홉에 조금 앞서, 러시아에는 거대한 문호들이 삶에 대한 무겁고도 진지한 고민들을 늘어놓았다.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였다. 체홉은 삶을, 그리고 문학을 심오하고 사변적으로 풀어내지 않았다. 그는 삶의 파편들이 모여 총체들을 이룬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수많은 파편들 자체가 총체를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체홉의 작품들은 더욱이 절제된 어조로, 나직이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연극 '벚꽃동산'은 자신의 재산이자, 추억의 장소였던 아름다운 '벚꽃동산'을 잃게 되는 류보피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이다.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파리에 떠난 류보피 부인이 5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정든 땅 벚꽃동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격한다. 그러나 빚에 떠밀려 동산은 곧 경매에 부쳐진다. 그녀는 벚꽃동산이라는 추억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반면, 로파힌이라는 인물은 벚꽃동산을 통해 새로운 사업, 창창한 미래를 꿈꾼다.

   
 

젊은 배우들의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연극이었다. 보는 이마저 어색하게 하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텍스트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나 하고 탄성을 머금게 되는 장면들이 반복되었다. '안똔체홉학회'의 다른 작품들은 아직 보지 못한 터라,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성실한 모범생들 같았다. 그들은 원작에 충실했다. 다만 20세기에 탄생한 원작이 21세기에 공연되기 위해 거쳐야할 수정 작업을 조금 더했을 뿐이었다. 이들의 작업이 더욱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고전 연극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에서 유독 외로운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고전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더 다층적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주기에 '고전'이다. 공연에 오른 횟수가 무수하다고 해서, 이미 질리도록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고전 연극의 의미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연극은 그 줄거리를 안다고 해서 재미가 감소되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연출에 따라, 배우들에 따라, 장소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변하는데, 작품 자체가 변하기도 하겠지만, 관객들 저마다가 각자의 시공간 속에서 받아들이는 관점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고전은 계속 무대에 올라도 좋다. 그리고 고전이 아니더라도 재연의 의미가 풍성해질 수 있는 작품들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벚꽃동산'은 류보피에게는 현실감각을 잊게 만드는, 추억과 회상의 공간이 되었다. 그곳을 떠나면서 그녀는 다신 오지 않을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기억이 멀어짐을 슬퍼했다. 그러나 류바피의 딸 아냐에게 그곳에서의 해방은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을 의미했고, 로파힌은 그곳을 소유하며 생애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하나의 벚꽃동산이었지만, 저마다의 시선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그리고 안톤 체홉의 희곡 '벚꽃동산' 한 작품이 있고, 저마다의 시공간에서 개개의 정체성을 담고 새롭게 만들어질 다양한 연극 '벚꽃동산'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거듭날 연극 '벚꽃동산'들을 마주할 새롭고 다양한 관객들 또한 계속 존재할 것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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