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와 이중성…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설득력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강해인 아띠에터] 시적인 제목이 눈에 띄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원제는 'The Light Between Oceans'다. 바다 사이의 빛이란 이 제목은 영화의 주요 무대인 야누스 등대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 톰(마이클 패스벤더)의 인생에 다가온 삶과 희망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곱씹어 볼수록 원제가 더 아름답고 적절해 보인다.

야누스와 이중성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악행처럼 보이는 것이 있으나 악인은 없는 영화다. 영화는 전형적인 악인을 배제하는 대신, 인간이 마주한 선택과 딜레마에 관해 묻는다.
 
바다에서 구한 아이를 제 자식처럼 키운 부부. 그들이 아이의 친부모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할 수밖에 없는 일과 해야 할 일이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톰이 있다. 그리고 그의 선택엔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가 있기에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영화의 주 무대인 등대는 '야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문의 수호신이며, 영화에서 언급되듯 끝과 시작의 경계에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두 개의 얼굴이라는 의미도 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두 개의 얼굴이란 이중성에 초점을 맞춘다. '타인의 아이를 기른다'는 선택이 가져오는 빛과 어둠이 영화가 보여 주고자 한 중심 테마다. 특히, 모성의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하는데, '기른 정'과 '낳은 정' 사이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이클 패스벤더
영화의 딜레마를 더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건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표정이다. 그녀의 표정을 따라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절망을 겪고 나면 톰이 직면한 문제가 '법'이나 '정의'의 문제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풍부한 감정 덕에, 톰이 찾아야 하는 해답이 법을 초월할 수 있음에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친부모를 찾아줘야 한다'라는 당연한 명제는 '아이의 친부모를 찾아줘야 할까'에서 '찾아주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로 점차 바뀌어 간다.
 
   
 
 
이 딜레마가 한 남자에게 끼친 영향은 마이클 파스벤더의 표정으로 드러난다. 한없이 고독하고 싶던 남자에게 찾아온 하나의 빛, 이자벨. 그녀를, 그 빛을 지키기 위해 톰은 많은 갈등을 겪고, 괴로워야 한다. 신 앞에서 지켜야 할 '신성'한 것과 이자벨이 움켜쥔 '모성'의 충돌 앞에 죄책감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엔 번뇌와 사랑 사이의 혼란이 교차하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 묻은 감정은 호소력이 매우 짙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하나의 선택과 두 가지 결과(빛과 어둠)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서로에게 윈-윈이 아닌 항상 제로-섬으로 귀결된다. 영화에서 딜레마 앞에 선 인물들의 모든 선택의 결과는 제로-섬이다. 하나가 행복하면 하나가 불행하다. 이 제로-섬 게임에 참여한 모든 플레이어가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가여운 운명'을 지닌 인간들이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가 되었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