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석재현 기자] "우리나라 최초로 달을 밟는 사람이 꿈인 소년이었다. 지금은 달을 가는 우주 비행선을 담는 중년 영화인이 되어간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한 '영화 온라인 제작·배급 전략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콘퍼런스에선 '온라인 영상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새로운 도전', '웹툰, 웹소설 그리고 트랜스미디어 생태계',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이 영화 산업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외 온라인 플랫폼 영화 제작 및 배급 전략 등을 주제로 한 발표가 진행됐다.
 
이중 첫 번째 발제자로 참석한 윤창업 문와쳐 대표는 "도전해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기존 체제로는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영화를 단일 매체로만 보지 않고, 다른 분야로 확장 가능한 하나의 콘텐츠로 넓게 바라봐야 한다"고 이날 열린 콘퍼런스에서 밝혔다.
 
"아주 먼 옛날, 밤이 되면 바위 위에 올라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던 남다른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 원숭이는 도구 하나로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하나의 창의적인 콘텐츠가 인류 문화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콘텐츠가 행복한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바로 '문와쳐'가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믿음입니다"라는 회사 소개글과 발제 내용을 보며, 윤창업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윤창업 대표는 2001년 영화전문투자사인 '아이엠픽쳐스'에 입사한 이후, 2004년 '화인웍스' 기획이사를 거쳐, 2008년부터 현재까지 콘텐츠프로듀싱그룹인 문와쳐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윤 대표는 지난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영화화를 노리고 있는 SF 웹무비 '특근'의 기획·프로듀서를 맡았고, TV 특촬물인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을 기획·제작하면서 EBS 최고 타깃시청률(13.3%)를 기록했다.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의 성공은 지난해 동명 가족뮤지컬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 윤창업 문와쳐 대표가 '영화 온라인 제작·배급 전략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 문화뉴스 DB
 
중국을 오가는 일정 안에서 만난 윤 대표는 약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시간 동안,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다. 지난해 진행한 작품인 '특근'과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이 영화 산업에 미치는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그리고 영화 산업의 확장 가능성도 논했다. 이어 최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인한 중국 사업 진출의 어려움과 그 대처법을 제시했다.
 
영화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ㄴ 2000년 3월 제대한 후 3학년 복학을 하게 됐다. 다들 진로를 걱정하는데,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취미였다. 인디포럼, 서울독립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자원봉사를 계속 진행했었다. 그런 중에 당시 나우누리에서 '시네마켓'이라는 최초의 영화홍보기획 동호회를 알게 됐다. 영화시사 동호회가 많았는데, 영화홍보기획 동호회는 없어서 신선했다. 영화 기획이나 홍보마케팅이 궁금했는데, 영화를 좋아해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학교 동호회는 복학생이라서 받아주지도 않았다. (웃음)
 
경영학과 내에서도 나는 마케팅이 주전공인데, 마케팅 수업을 들으면서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일반 영화 관객들은 감독이나 배우는 알아도 영화 프로듀서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방송 PD와도 혼동한다. 나도 그러했다. 순간 유레카를 외치게 됐다. 제품의 시장을 분석하고, 그것에 맞는 상품을 개발해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을 마케팅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상품이 영화였다. 그래서 두 부분을 합쳐 영화 프로듀서가 되기로 했다. 좋은 영화 프로듀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윤창업 대표는 2001년 '엽기적인 그녀'의 마케팅, 해외세일즈 업무를 하게 됐다.
 
그러다가 2001년에 '아이엠픽쳐스'라는 영화 전문 투자배급사에 취업하게 됐다. 그 회사에서도 사실 아르바이트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대학생의 눈으로 재밌는지 아닌지를 보고 있었다. 마침 만든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였다. 그 작품을 개봉할 때, 마케팅팀에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회사 모니터링 요원을 뽑으라고 해서, 2달 동안 도와주게 됐다. 당시 김민기 이사님이 열심히 잘한다고 평가해주셔서, 결국 4학년 때 취업을 하게 됐다. 이후 투자, 제작, 마케팅, 배급 등 여러 일을 부서를 이동하면서 배우게 됐다.

'아이엠픽쳐스'는 어떤 회사였나?
ㄴ 1990년대 중반에 '삼성영상사업단'이 대규모로 들어왔다. '쥬라기 공원' 영화가 차를 엄청 판 것 이상의 이익을 거뒀다며, 대기업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1999년 '쉬리'를 마지막으로 IMF도 터지면서 '삼성영상사업단'은 막을 내렸다. 그 당시 떠나온 주축들로 만들어진 게 '아이엠픽쳐스'였다. 삼성영상사업단 영화사업부 대표로 ‘쉬리’를 투자제작하셨던 최완 대표님이 아이엠픽쳐스 대표셨다. 당시 아이엠픽쳐스에서 만들어진 게 박상면, 박진희, 이범수가 출연한 보험사기 영화 '하면된다'였다.
 
당시 '아이엠픽쳐스'에선 충무로와 삼성의 마인드가 반 섞여 있었다. 충무로 사람들은 예술로 영화를 사랑해왔지만, '문화 산업'으로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산업으로의 영화를 배우게 된 것이었다. 숫자에만 매몰된 대기업 문화는 잘못된 부분인데, 문화 상품은 데이터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모르는 것을 찾아내 감동하게 하는 점이 있다. 많은 경험과 분석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가지고, 여기에 예술적인 본능을 합치면 그것이 직관이 된다. 두 부분이 중요했다. '아이엠픽쳐스'에서 일하면서 그 두 부분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 '늑대의 유혹'의 명장면인 강동원의 우산 속 미소 장면은 나오지 못할 뻔 했다.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을 시작해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리메이크 담당을 내가 맡기도 했다. 여기에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도 우리 회사에서 했고, '늑대의 유혹'도 했었다. 당시 '신인급'인 강동원의 캐스팅을 모두 반대했는데, 김민기 이사님이 반대를 무릅쓰고 하셨다.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여러 작품의 투자 심사부터, 제작 판권 비즈니스, 외국 세일즈 등 모든 것을 소수정예 회사임에도 담당했다.
 
이후 2004년 부서를 돌면서 이일 저일 다했는데, 프로듀서 꿈을 위해 사표를 내고 나왔다. 나온 지 한 달 반도 안 됐을까? 김민기 대표님이 제작사를 차릴 건데, 거기서 프로듀서 일을 하면 된다고 해 본격적으로 '화인웍스'에서 기획·프로듀서 일을 하게 됐다. 프로듀서 데뷔작은 2005년 준비해 2006년 개봉한 '마음이…'였다. 이후에 '두 얼굴의 여친', OCN 드라마 '이브의 유혹' 4부작 시리즈 등을 만들었다.
 
   
▲ 윤창업 대표의 프로듀서 데뷔작 '마음이…'엔 유승호와 김향기가 출연했다.
 
어떻게 '문와쳐' 회사를 만들게 됐는가?
ㄴ 2008년에 '문와쳐'로 독립을 하게 됐는데, 영화만 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콘텐츠라는 개념으로, 다른 매체 장르들과 어떻게 하면 윈윈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제가 생각하는 비전이 네 가지가 있다. 그 비전을 만들 수 있는 보금자리 터전으로 '문와쳐'를 만들게 됐다. '문와쳐'의 이름엔 '픽쳐스', '필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영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프로듀싱이라는 개념 아래 기획, 제작, 비즈니스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저희는 이 세 가지가 온전하게 잘 연결되어서,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컴퍼니'라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고, 프리랜서 개념으로 일하는 회사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으로 일하는 회사는 되어야겠지만, 대기업처럼 분업해서 '넌 기획, 제작, 비즈니스만 해'가 아니라 그것을 다 연계해서 일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 중간 개념의 의미로 '그룹'이라는 유연한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양미르·석재현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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