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단거리패의 故 채정례 원형 이윤택 대본구성 연출의 씻금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씻김굿은 굿의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상가에서 하는 굿은 '곽 머리 씻김굿', 날을 받아서 하는 굿은 '날 바지 씻김굿', 물에 빠져 죽은 혼을 건지기 위한 굿은 '혼 건지기 굿', 미혼으로 죽은 이를 위한 굿은 '저승 혼사 굿'이라고 한다.

씻김굿의 절차는 상황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기도 한다. 수사자(水死者)를 위한 굿에서는 물가에서 혼 건지기 굿을 한 후에 집 안으로 영혼을 모셔와 굿을 하며, 객사한 영혼을 위한 굿에서는 안당 굿을 한 후 골목 어귀에서 혼마지 굿을 해 불러들인 후 본격적으로 굿을 한다. 미혼으로 죽은 영혼을 위해서는 혼마지 굿과 결혼 굿을 한 후 씻김굿을 한다. 한편 어떤 경우 '진 굿이 아니다'는 관념적 구분에 의해 조왕 굿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무계에 따라 굿의 절차가 달라지기도 한다. 박병천· 정숙자의 씻김굿과 채정례 무녀의 씻김굿 절차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씻김굿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전반부-중반부-종반부 구성이 그것이다. 안당부터 선영 모시기까지의 과정은 산 사람들의 복덕을 축원하는 전반부에 해당하고, 그 뒤부터 길 닦음까지는 망자를 천도하기 위한 중반부이며, 마지막 중천은 굿을 마감하는 종반부다. 전반부는 산 사람들의 복락을 축원하기 위한 굿거리들이다.

처음에는 건물 안에서 굿을 하다가 마당으로 공간이 옮겨진다. 굿 청은 마당에 차일을 치고 삼 면을 포장으로 막아 놓은 임시 천막으로, 그 안에 병풍을 세우고 굿상을 차려 놓는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중반부부터 굿 청에서 하며, 진도에서는 초가망석 이하의 굿을 굿 청에서 연행한다.

조왕 굿은 부엌의 조왕님 전에 부정을 아뢰어 그것을 물리고자 하는 굿이다. 무녀 혼자 앉아 징을 치며 무가를 부른다. 무가내용은 부정을 물리고, 집안의 우환을 제거하고, 가족의 재수를 비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안당은 집의 최고신인 성주 신에게 굿을 하게 된 내력을 아뢰고, 성주 신을 청해 들이는 거리다. 여기서 모셔지는 성주신은 집안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신격이다. 이외에도 조상·지신·조왕·삼신·철룡 등도 청배되며, 이들 모두 가택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안당은 성주를 비롯한 가택 신을 청해 들여 축원하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초가망석에서 모셔지는 신격은 조상이다. 그리고 최근에 죽었다고 하여 신망조상이라고 부르는 망자도 청배된다. 영암·목포·광주의 선 부리, 순천·화순 등지의 조상굿이 같은 성격의 굿이다. 손님 굿의 손님은 일반적으로 천연두를 옮긴다는 마마신이라고 비정되며, 대개 객귀 적 속성을 지닌 신격으로 묘사된다. 이 거리에서는 손님노정기를 통해 손님을 청해 해를 끼치지 말고 좋게 해주고 가시라는 축원을 한다.

제석 굿은, 가정의 번창과 자손의 수복(壽福) 및 재수를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겨지는 제석 신을 청배해 복덕을 축원하는 거리다. 이 굿에서 무녀가 한복 위에 장삼을 걸치고, 목에 염주를 걸치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굿을 진행한다. 다른 굿거리들에서는 일반 한복만을 입고 굿을 하다가 이 굿에서 이러한 복색을 갖춰 굿을 연행한다. 제석 굿에서는 서사무가 제석풀이와 집안의 복 및 재물을 축원하는 다양한 무가가 불려진다. 조상굿은 조상에게 복덕을 축원하는 굿거리다. 다른 지역에서는 제석 굿에 첨부되어 있기도 하다.

액풀이는 대개 제석 굿 말미에 복합되어 있지만 독립된 굿거리로 취급하기도 한다. 중반부는 모두 망자와 관련되어 있어 망자 굿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내용의 굿거리들을 연행한다. 다른 지역에는 서사무가인 바리데기가 들어 있는 오구굿이 있지만 진도에서는 전승되지 않는다. 고풀이는 긴 무명베를 일곱 매듭으로 지어, 굿 청의 명두대나 차일 기둥에 맨 다음 그것을 잡고 풀면서 무가를 부르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고는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구상화(具象化)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가 잘 풀려야 망자의 원한이 풀린 것으로 간주되며, 그렇게 되었을 때 망자가 순탄하게 저승길을 갈 수 있다고 여긴다.

   
 

씻김은 망자가 저승으로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깨끗이 씻기는 정화의례로서 씻김굿의 핵심적인 굿거리다. 그래서 이 거리의 이름이 굿 전체의 이름이 되어 있기도 하다. 씻김은 망자의 육신으로 간주되는 영 돈을 말아서 씻는다. 영 돈은 대개 다음과 같이 만들어진다. 먼저 돗자리를 깐 후 그 위에 망자의 옷을 놓고 돗자리를 둘둘 말아 세 매듭으로 묶는다. 이렇게 말린 돗자리를 세워 넋을 담은 밥그릇을 얹고, 그 위에 누룩을 놓고, 마지막으로 솥뚜껑으로 덮는다. 무녀는 영 돈의 솥뚜껑을 숟가락으로 두드리거나 물로 씻으면서 무가를 부른다. 씻김에서 사용되는 물은 향물, 쑥물, 맑은 물이다. 이 물을 차례로 빗자루에 적셔 위로부터 아래까지 골고루 씻겨 내린다.

무녀는 씻김을 하면서 망자의 천도를 비는 무가를 부른다. 넋 올리기에서 사용되는 넋은 한지를 사람 모양의 형상으로 오려 만든 20cm 정도 크기의 무구이다. 무녀는 이 넋을 망자의 옷가지 위에 놓고 지전(紙錢)이나 신 칼의 꽃술로 들어 올리면서 무가를 가창한다. 이 절차는 망자의 영혼을 굿 청에 모셔서 위로하고 달래기 위한 과정이며, 망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희설은 무녀 혼자 망자 상 앞에 앉아 무가를 부르는 방법으로 연행된다.

내용은 망자가 극락에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관문을 통과하기를 바라는 축원으로 되어 있다. 이 무가에는 불교적 저승세계가 자세히 묘사되고, 망자의 60갑자에 따라 통과하는 시왕 문이나 불교적 신격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문자(文字)가 있는 어려운 무가라고 얘기되며, 큰무당으로 칭송받는 노무들이 주로 가창한다. 요즘 들어서는 잘 연행되지 않는 편이다. 길 닦음은 망자가 가는 저승길을 닦아주는 거리다. 고풀이나 씻김 등을 통해 이승에서의 한이 풀렸으므로 이제 망자의 넋이 극락왕생하도록 길을 닦아 주는 것이다.

길은 안방에서부터 마당으로 길게 펼쳐 놓은 무명베이다. 이 때문에 질 베(길 베)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길 베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 또는 다리를 상징한다. 이 길을 지나 망자가 저승에 들어가게 된다고 여긴다. 질 베 양쪽 끝을 가족들이 붙잡고 서면 무녀는 넋을 담은 넋 당석을 질 베 위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길을 닦는다. 망자여의기는 망자의 옷을 들고 축원하는 굿거리다. 길 닦음 뒷부분에 결합되어 연행되는 경우가 많다. 종반부는 대문간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이루어진다. 굿 청에 모여든 여러 신을 배송하는 부분이다. 중천은 잡귀와 잡신들을 잘 달래 풀어먹이는 굿거리다.

굿판에는 정식으로 초대받은 신격 말고도 머물 곳이 없어 떠도는 객귀들이 굿하는 소리를 반겨 듣고 몰려와 있다. 바로 이 객귀들을 잘 풀어 먹여 보내는 배송 굿이 종천이다. 여기서의 잡귀는 대개 비정상적인 죽음 때문에 한을 품은 원혼들로서 정식 신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무속에서는 이런 객귀마저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객귀들은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땅히 대접을 해서 보내거나 축귀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무대는 진도 해안가다. 바닷가 바위가 실제처럼 만들어져 파도소리만 들렸다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낚시를 하는 남자와 전복을 캐는 여자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백발의 여인이 그들 주위를 배회하다가 낚시하는 전복 캐는 여자와 함께 낚시하는 남자의 김밥을 얻어 바위 위에 앉아 먹다가 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남녀는 사람이 바다에 빠졌노라고 소리를 지른다.

장면이 바뀌면 남녀 악사와 무녀 채씨가 자리를 잡고, 동네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은 백발여인의 이름이 순례라고 알린다. 어촌 책임자가 고인의 주소가 목포라서 이곳에서 초상을 치룰 수가 없다고 하니, 원래 이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고향에 돌아와 죽은 것이라며, 망자의 원혼을 달래줘야 바다가 잔잔해지고 고기도 잘 잡힌다고 하니, 책임자는 굿판을 벌리도록 내버려둔다. 장고와 징을 치며 굿판이 벌어진다.

무녀 채 씨의 굿 모리 장단과 함께 주문을 외우니, 돌연 바위 위로 죽은 순례의 모습이 나타난다. 순례 여인은 처음에는 굿 구경을 하다가 자신을 위한 굿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비로소 자신이 생존인물이 아님을 알아차린다. 그 때 또 한 명의 여인의 혼령이 등장하며 "순례야" 하고 부른다. 순례가 놀라며 누구냐고 물으니, 국악을 함께 배우던 관우라고 대답한다. 두 혼령이 만나 반가움의 표현이 소리로 이어진다. 인간문화재까지는 아니 되어도 그에 못지않은 노래솜씨에 관객은 갈채를 보낸다.

젊은 남녀 혼령도 등장해 소리 동참을 한다. 제석 굿으로 바뀌면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원형의 고리에 살색의 의상을 입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저팔계 같은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본 당골 청년이 저승사자에게 막걸리를 권하지만 마시기를 꺼리니, 술대신 칠성사이다를 권한다. 저승사자가 사이다를 마시고 취하듯 쓰러진다. 그리고 사자탈을 벗어버린다. 무녀 채 씨가 그 모습을 보더니 할아버지 하고 달려든다. 저승사자가 놀래 누구냐고 물으니, 채 씨는 '상배 할아버지 맞죠?' 한다. 등판에 새긴 문신을 보고 알았다고 말하니, 저승사자는 비로소 죽기 전 자신의 이름이 상배였다는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만남에서 구성진 장단에 소리가 어찌 아니 나올 수 있으랴? 저승사자는 옛 모습으로 돌아가 멋진 춤사위까지 벌이며 갈채를 받는다. 악사 한 명이 저승사자의 본 모습을 본 후 자신은 증손자임을 밝히며 큰 절을 올린다. 바위 위로 여자혼령이 등장한다. 씻김굿을 하는 소리에 바다 속에서 뛰어 올라온 것이다. 가슴언저리가 온통 썩은 모습이다. 그 혼령도 노래솜씨가 만만치 않다. 진도는 생존 시나 사후에나 소리꾼의 고장임을 드러내는 광경이다. 그러면서 귀신 각자의 생애가 소개가 되면서 씻김굿을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때 백색의 배 형태의 조형물에 수많은 학생인형을 실은 선박이 등장을 한다.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영령들이 씻김굿판에 등장을 한 것이다. 출연자나 관객의 눈망울에 안개가 쌓인다. 젊은 영령을 위한 합창이 그들의 혼령을 달래듯 울려 퍼진다. 동네사람들과 무녀 그리고 악사들이 젊은 영령을 배웅을 한다. 백색의 배의 조형물이 배경으로 해서 사라진다. 그 뒤로 죽은 혼령들이 뒤따라 퇴장을 하면서 공연은 끝이난다.

   
 

김미숙이 순례할미로 등장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해 보인다. 김현정의 채 씨 당골 역도 실제 무녀가 등장한 듯싶은 느낌의 호연을 보인다. 정연진, 서민우, 박정우, 문성룡, 김갑연, 설창호, 황은미, 이현지, 신다영, 양유철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과 연주는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자료제공 남도국립국악원, 주제가 작곡 故 고명욱, 음악감독 김시율, 무대 김경수, 조명디자인 조인곤, 무대제작 월산프로젝트, 기획 홍보 오동식, 홍보디자인 심혜림 전소현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드러나, 연희단거리패의 故 채정례 진도 씻김굿 원형, 진도 어르신들 구슬, 이윤택 대본구성 연출의 <씻금>을 기억에 길이 남을 명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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