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과 혼동한 '영화계 인권 유린'

[문화뉴스]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19일에 개봉한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두 배우가 리얼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화제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전신 마비인 어머니를 돌보고 나쁜 아버지와 사는 이벤트 도우미 '정원'과 자기 연민에 빠져 나약한 삶을 사는 경찰관 '수완'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각자 '흰 새'와 '검은 새'라는 닉네임으로 만나 동반 자살을 계획하는 내용이다.

 

* 본 기사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연탄

차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시도하는 '정원'의 장면이다. 최근 보도된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빼고 스태프가 다 회의를 하더라. 감독님이 혼자 주춤주춤 오시더니, 혹시 연탄가스를 실제로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너무 당황했다"고 서예지가 밝히며 당시에 알려지지 못한 큰 문제점이 드러났으며, 그로 인해 서예지가 직접 '연탄가스'를 마시며 연기를 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일 진행되었던 왕십리 CGV 언론시사회에서는 "수완이가 얼음 위에서 고통스러웠다면 정원이는 차 안에서 고통스러웠다. 연탄을 CG로 처리해주실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진짜 연탄을 마시면 안 되냐'는 말에 큰 결심을 하고 정말 정원이가 돼서 연기했다. 감독님께서 '컷'을 안 해주셔서 진짜 죽을까봐 불안했다. 다행히 '컷'해주셨다(웃음)."라고 말한 바 있다.

2. 차량 중앙선 침범

이어진 스타뉴스 인터뷰 내용에서 서예지는 "감독님이 위험하게 운전하는 장면을 찍고 싶어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해보겠다'라고 하고 과감하게 중앙선을 침범하는 장면을 찍다가 충돌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며 또 다른 에피소드를 밝혔는데, 스턴트 전문 배우 대역이나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자동차 운전 연기가 진행되었다.

3. 얼음판

10일 오후 왕십리 CGV에서 진행된 '다른 길이 있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김재욱은 얼음 위에서의 촬영에 대해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다. 날씨가 돕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감독님은 말씀보다 행동으로 설득해주셨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밤만 되면 사진이 왔다. 얼음 한복판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감독님께서 '오늘은 여기까지 얼었다. 괜찮다'고 계속 세뇌 시켰다. 그래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게 배우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에라 그냥 하자'고 했다. 막상 올라가면 굉장히 안정감이 든다. 감독님께서는 살려고 누웠다고 했지만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면서 누워서 밤하늘을 봤다. 한강 한복판에 누워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고요함 속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 좋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춘천의 얼음이 더 불안해서 목숨 걸고 찍었다."라고 전했다.

4. 차량 유리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수완'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있는 '정원'을 구하기 위해 차 유리를 깨는 장면이 있는데 이에 배우 김재욱은 "정원이를 연탄에서 구하는 게 수완이다(웃음). 그게 3일차였던 것 같은데 아마 촬영 초반에 찍었다. 해가 지고 있어서 급하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차 유리가 진짜 유리라는 이야기를 안 해줬다. 촬영 끝나고 손을 보니 엉망이 돼 있었다."라고 위험한 에피소드들에 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창호 감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웃음). 굉장히 아프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캐릭터를 영화로 만들 때는 감독의 윤리적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내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고 실제 얼음 위는 직접 경험을 해서 '최소한 사고가 발생했을 시 건질 수 있다'라는 확신을 주며 촬영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는 스태프 둘이 물에 빠졌지만 '절대 수완에게는 알리지 말라'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감독이다. 차 유리는 내가 어린 시절 많이 깨봤기 때문에 잘 다치지 않았는데, 재욱 씨는 잘하지 못해서 다쳤다. 예지씨의 연탄가스는 미안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웃음)."라고 전한 바 있다.

최근 몇몇 작품들에서 예술 행위로 포장한 영화계 성폭력이 화제가 되어 충격을 자아냈다. 이수성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집'에서는 배우 겸 개그우먼 곽현화가 등장한다. 이수성 감독은 '일단 찍어놓고 현화씨가 빼달라고 하면 빼줄게. 현화씨고 나중에 찍어놓지 않은 것 후회할 거야. 다 작품을 위해서야'라는 말로 설득하여 찍은 후 본인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배포했다. 이에 곽현화는 이수성 감독을 소송 중이며 현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상태이다. 1972년에 개봉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 동의 없이 강간 신을 촬영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논란이 되었다. 

2010년 개봉한 조창호 감독의 영화 '폭풍전야'에서 역시 배우 황우슬혜가 "추운 바닷가에서 뜨거운 물통을 옆에 갖다놓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몸이 많이 힘들어져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는 사연이 공개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예술을 가장한 배우, 엑스트라, 스턴트맨에 대한 학대는 금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진짜 같은' 뭔가가 보고 싶으면 배우를 왜 쓰는가?", "제 지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평생을 치명적인 후유증에 시달렸어요." 등 비판적인 의견이 다수이다.

"제 표현이 잘못되었습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문제가 맞으며 안전을 비롯해 조심하고 점검하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먼저 밝히고 추후 자세한 말씀을 드릴게요."

— 조창호 (@flyflyblackbird) 2017년 1월 19일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조창호 감독은 19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오전에 "모든 정황설명에도 그렇게 하란다면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다가 해당 트윗을 지운 뒤 "우리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밝히고 추후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가 의도치 않은 논란과 안전 부주의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감독, 배우진, 제작진, 스태프 일동의 공식입장이 발표되었다.

먼저 “배우를 배제하고 회의를 진행한 후 실제로 가스를 흡입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으며, 일동 모두 사실과는 다르게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들로 인해 논란이 커지고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서예지는 공식입장을 통해 "인터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고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발생해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다. 특히 작품이 폄훼되고 감독님이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으며 김재욱 또한 "촬영 현장에서 감독과 제작진의 어떠한 강요도 없었다. 논란이 커져 안타까운 마음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리스크가 있는 촬영이 진행될 때에는 사전에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리허설을 꼼꼼하게 거쳤고, 배우들 역시 그 과정을 함께했다"라고 해명했다.

조창호 감독은 "연탄가스 흡입 장면은 모조 연탄 제작에 실패해 실제 연탄을 사용하긴 했지만 대부분 특수효과로 연기를 생성했다. 미량의 연탄가스가 흘러나왔음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고 질타를 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 다시 한번 서예지 배우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사과했으며 이어 얼음 위 신 촬영과 관련해서도 "안전사고를 대비해 무술감독팀과 함께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충분했는지, 옳은 판단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인 나에게 있다. 사과드린다. 차후에도 이 건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하는 전문이다.

<‘다른 길이 있다’ 조창호 감독의 입장 전문>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감독 조창호입니다. <다른 길이 있다> 촬영과정에서 발생한 서예지 배우의 실제 연탄가스 흡입 논란에 대한 감독의 입장을 밝힙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감독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야기된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먼저 촬영 현장에서 진행된 모든 장면에서 위계에 의한 강압적 지시가 없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연탄 가스 흡입 촬영 장면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모조 연탄 제작에 우선 실패하였습니다. 제대로 구현이 안됐습니다. 특효팀, 무술팀이 등이 준비된 촬영 일정을 변경하기가 곤란한 상황에서 논의 끝에 실제 연탄을 사용했지만 대부분 불이 붙지 않은 생 연탄에 나무가지나 나뭇잎을 태우거나, 특효팀에서 준비한 (실제 이러한 상황에서 많이 사용되는) 검은 천, 그 외의 특수효과로 연기를 생성했고 부족한 부분은 후에 c.g로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2개의 컷이 있습니다.  

연탄 전체가 클로즈 업 되거나 배우와 함께 잡히는 풀숏에서 하단에 아주 조금 불이 붙은 연탄을 사용했습니다. 연탄에 불이 붙지 않은 가짜임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텝과 촬영 방법을 논의, 배우의 의견을 묻고 동의를 얻었으며 예상 숏의 길이 등을 설명 후 촬영을 했습니다. 이때도 연기는 대부분 다른 물질의 도움을 받았으며 실제 영화에서 보이는 붉은 빛의 연탄은 c.g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촬영 준비를 세팅한 후 슛 싸인과 함께 연탄을 차 안에 배치했으며 컷 싸인과 함께 배우와 연탄을 차 안에서 빼내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해당 씬의 위험 장면 촬영을 위해 전문적인 스턴트도 대기시켰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조건과 관련된 것이었지 배우의 연기를 위해 실제상황을 연출한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연기가 연탄 가스가 아니었으나 미량의 연탄 가스가 흘러 나왔음은 변명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당연히 제가 질타를 받아 마땅한 부분이며 배우의 동의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음을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한 번 서예지 배우에게 공식적인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연탄가스와 다른 연기들이 배우에게 유해했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이번 논란으로 불쾌함을 겪은 많은 분들께도 깊이 사과드립니다. 

함께 논란이 되고 얼음 위 씬의 촬영에 대해서도 말씀드립니다. 위에서 언급된 차량 씬은 물론 얼음과 관련된 모든 촬영시에는 안전사고를 대비해 무술감독팀이 함께했습니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는 무술감독과 제가 먼저 얼음의 상태를 체크 한 후 촬영 지역을 결정하였으며 얼음 위에 오르는 스텝을 최소화하여 구명조끼를 착용케 하였고 배우에게는 슈트를 입힌 후 구명 보트가 대기 된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롱숏에서는 무술감독이 프레임 안에, 근접 촬영에서는 프레임 밖에 대기한 상태였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예산을 오버해 가며 안전사고에 대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논란으로 과연 충분했는가, 당시의 판단이 옳았는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진행된 많은 영화제 gv,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 개별 인터뷰 등에서 서예지, 김재욱 배우는 위 촬영의 경험에 대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조금은 과장된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였고 저도 때로 분위기에 따라서 가담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큰 논란이 야기 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촬영 당시의 배우의 열정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배우가 영화에 갖는 커다란 애정으로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크게 논란이 인 이후 저는 배우들을, 배우들은 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영화의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감독인 저에게 있으며 잘못된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언론, 그리고 관객 여러분께 염치가 없지만 감히 부탁드립니다. 제 글로 논란이 종식될 순 없겠고 여전히 질문이 존재할 것입니다. 차후에도 이 건에 대해서 책임을 가지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영화에 열정을 쏟아 붓고 지금도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서예지, 김재욱 배우 분에게 큰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문화뉴스 이민혜 기자  pinkcat@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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