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세잔, 맹시다리, 1879년경, 캔버스에 유채 |
[문화뉴스] 작품은 죽었어도, 영혼은 살아있다.
한국에까지 옮겨진 프랑스의 대표 오르세 전 작품들은 고스란히 조용히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고흐니, 밀레니, 고갱이니 하는 작가들은 그 당시에는 몰랐을 그 당시만의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작품에 서있었다.
아무도 없고 컴컴한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빛은 온전히 지킨 그들은 아우라가 대단하다.
▲ 레옹 보나, 빅토르 위고의 초상, 1879, 캔버스에 유채 |
작가는 이래서 '작가(作家)'라는 것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말 할 조차 필요 없는 것이다.
이런 리뷰조차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숨죽여 감탄을 하고 온 몸의 세포가 숨쉬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굳이 무언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조차 필요없고 작품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다!"
비록 자칭 시인이지만, 이 작품들을 보고 이렇게 감히 말한다. "두근 두근, 쿵 쿵 쿵"
▲ 카미유 피사로, 포르-마를리의 센 강가 빨래터, 1872, 캔버스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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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김민경 기자 avi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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