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문화뉴스] 오래간만에 극장가에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고 있다. 작년 일본을 강타했던 '너의 이름은'이 지난 4일 한국에 개봉함과 동시에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100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너의 이름은'의 신드롬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며, 설 연휴 전까지 이어져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진 관객들에게 권장하는 작품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다.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동화를 배경으로 그 동화에 우리의 인생관을 녹여내 '어른동화'로 불린다. 그중 최고 역작이자, 아카데미 상까지 받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이번 주인공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영화의 주인공인 '치히로'의 나이 또래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친구 딸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이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런 과정이 지나지 않으면 그 다음은 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단순히 '치히로'의 성장만을 담은 전체관람가용 애니메이션으로 보면 곤란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또한 '너의 이름은'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현대 사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온천여관은 오늘날 현대 사회를 압축시켜 놓은 공간이다. '가마 할아범'을 비롯한 직원들은 온천 운영을 위해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치열하게 일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합당한 대가나 보상은 없다.

얻은 이익은 오로지 '유바바' 한 명의 부 축적으로 이어져 그녀의 방은 금붙이와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 차지만, 직원들은 노동에 대한 인식이 무뎌지고 있었다. '가오나시'가 여관직원들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해 사금을 꺼내 들었을 때, 여관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든 것도 이 때문이다.

돈의 맛에 빠진 '유바바'는 '치히로'와 노동 계약서를 작성할 때, 그녀의 이름보다도 '치히로'가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일하는 데 이름은 필요 없다며 '치히로'의 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다른 이름을 부여했는데, '치히로' 뿐만 아니라 온천여관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자신의 이름이 없다. 오늘날 자기 이름 대신 계급과 직책 등으로 불려 몰개성화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 여관직원들인 셈이다.

   
 

황금만능주의와 오로지 자본으로 돌아가는 사회 때문에 힘을 잃어가는 노동의 순수함과 가치,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가는 인간의 정체성, 그렇게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이들…. 우리는 '오물 신'처럼 더럽혀진 게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 역시 영화 속에서 꺼내 보였다.

이전 작품 등에서 보여주었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메시지가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된다.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가 마법 없이 순수하게 터전을 가꾸고 그로 인해 비로소 얻게 되는 노동의 가치, 이것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그의 인생관의 상징물이다.

다른 시각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버블경제'로 인해 노동의 가치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일본 청년들에게 바친 헌사라고도 해석하기도 한다. 극 초반에 '치히로'의 아버지가 허물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90년대에 많이 계획되었다가 버블경제로 무너지면서 모두 망해버렸지"라며 남긴 말이 그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성장한다'는 표현이 어쩌면 이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현재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위기를 딛고 일어서고, 극복한다면 비로소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하는 게 아니겠는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
2시간 6분, 평점 : 4.3 / 5.0(왓챠 기준)

문화뉴스 석재현 인턴기자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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