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전당

[문화뉴스] 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시대성을 지닌 작품이 아닐까.

10일부터 12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페리클레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후기 낭만주의의 첫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리차드 3세', '햄릿' 등의 작품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시대 가장 인기 있던 레퍼토리였지만, 그러나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과 시대의 언어로 풀어내기 어려운 연출적 난제로 공연된 예가 많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예술의전당은 2015년 고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독창적으로 무대화하는 SAC CUBE X CLASSICS 으로 연극 '페리클레스'를 선보였고 큰 사랑을 받아 이번에 재연에 들어왔다.

   
 

연극 '페리클레스'는 타이어 왕국의 왕자 페리클레스가 겪는 삶의 이야기를 170분간의 공연 동안 음악과 춤을 곁들이며 풀어놓는다. 그가 겪는 고난과 행복 속에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50톤의 모래가 깔리고, 무대의 깊이를 최대한 활용하며 선보이는 압도적인 미장센,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시의성이 담긴 작품으로 관객에게 웃음과 고뇌를 동시에 던진다.

'한여름밤의 꿈', '십이야', '로미오와 줄리엣' 등 감각적이고 흥겨운 셰익스피어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국내의 독보적 셰익스피어 연출가 양정웅이 연출을 맡았고, 작년과 마찬가지로 유인촌과 그의 아들 남윤호가 주인공 페리클레스의 노인과 청년 역을 맡는다. 페리클레스의 딸인 마리나 역은 작년의 최우리에 이어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고 있는 배우 전성민이 맡았다. 양정웅, 유인촌, 남윤호, 전성민이 함께한 '페리클레스'의 기자회견을 살펴본다.

   
 

'루피'를 연상시키는 등 작품에 만화적 요소들이 들어갔다.

ㄴ 양정웅 연출: '페리클레스'가 '리차드 3세'등과 더불어 가장 흥행한 작품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고전 연극은 우리가 점잖은 것만 상상하는데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귀족과 서민과 음악과 춤과 그런 게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그런 부분이 많다. 작품 자체도 관객과 굉장히 많이 어울리고 어부나 사창가 등 서민들의 삶에 관여된 요소들이 많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인데 그가 다시 현대에 태어났다면 현대적인 요소와 소통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고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배우들도 그런 부분의 아이디어가 뛰어나서 관객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 재밌지 않을까 했다.

   
▲ ⓒ예술의전당

페리클레스가 인기 있는 이유와 새로 합류한 전성민 배우와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ㄴ 유인촌: 걱정을 좀 했다. 워낙 큰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이런 공연이 과연 잘될 수 있을까 했는데 티켓이 기대 이상으로 잘 팔린다더라. 굉장히 안심하고 그렇다. 작년 5월에 공연할 때 관객들이 많이 좋아하신 것 같다. 그때 못 보신 분들, 보셨지만 한 번 더 보시려는 분들이 잘 상승 작용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초연 때 사실은 많이 작품이 벌어져 있고 규모도 크고 무대도 활짝 열어놓고 하는 작품이라 긴장도 하고 걱정도 됐다. 다양한 장면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 걱정했는데 관객을 잘 만난 거 같고 작년에 좀 아쉽다 싶던 부분이 바뀐 것 같다. 저희에겐 차이가 큰데 관객이 보기에 차이는 잘 없을 수도 있지만, 저희는 작년보다 더 풍부한 연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팀웍 맞춰 마지막까지 좋은 작품 만들겠다. 작년엔 최우리 배우가 마리나 했는데 작년과는 색깔이 아주 다르다. 성민 배우만의 본인의 새로운 마리나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굉장히 열심히 했다(웃음).

   
▲ 노년의 페리클레스 역 유인촌 ⓒ예술의전당

'페리클레스' 초연 때보다 성장한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출연하는데 부담감은 없는지.

ㄴ 남윤호: 작년 초연 이후 좋은 작품에 캐스팅돼서 너무 좋은 경험을 많이 했고 1년간 쌓인 배우로서의 경험이나 느낀 점을 이번 재연 때 배우로서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다. 그걸 봐주셨다면 감사하다. 작년 프레스콜 때는 제가 홍길동도 아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선생님이라 부르며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다. (유인촌 배우 가리키며)저희 아버지다(웃음). 속 시원하다. 부담감을 좀 떨쳐낸 것 같다. 남윤호란 배우로 1년 간 열심히 활동했지만, 아직 따라가기 너무나 힘든 선배님이시고 선생님이신데 저 나름대로 열심히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같이 작품 하는 것은 제게 도움이 되고 가르침이 많다. 그런 부담감을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려고 ○○했나 자괴감 든다' 같은 재밌는 말도 많은데 각색 작업에서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ㄴ 양정웅 연출: 아무래도 나라 안팎으로 큰일이 많고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시대성 시의성 풍자 이런 장면이 어부 장면에 있고 그렇다. 그래서 앞에 젊은 왕과 펠리카누스 장면에서도 어진 왕이란 게 어떤 거고 아첨, 아부가 어떻게 왕과 국가를 망치는지 원작에 나온다. 작년엔 그런 부분에 힘을 주지 않았지만 많은 뉴스를 접하다 보니 이번엔 자연스럽게 저절로 강조하게 됐다. 어부 장면에서도 백성들이 나라와 정치인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풍자하게 된 것 같다. 다른 부분은 배우가 바뀌다 보니 전성민 배우의 색에 맞는 마리나가 탄생 돼서 좋고 출연 배우 중에도 여자 단원이 한 분 바뀌었다. 작품은 디테일인 것 같다. 작년에 아쉬웠던 부분을 좀 더 다듬고 일련의 세월이 흐르니까 안 보이던 부분들이 보이더라. 그런 부분들을 손보면서 배우들과 만들어 나갔다. 출연진들이 작년과 비슷하면서 다른 각오를 하고 작품을 하게 된 것 같다. 스탭들도 그렇고.

전성민 배우는 최근 했던 역과 결이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거 같다. 작품에 임하는 소감과 마리나의 어떤 부분에 집중했는지 궁금하다.

ㄴ 전성민: 처음 연습실 오기 전부터 초연이 너무 성공적으로 잘됐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기대감이 크기도 했지만, 부담감이 많았다.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고 연습 기간도 개인적으론 촉박하단 생각이었다. 사실 지금도 내일(10일) 오픈인데 아직 찾지 못한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생각하고 공연하면서부터 무대에서 더 찾는 게 많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연출님과 선생님 같이하는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정말 많이 도와줬고 잘 해결된 부분도 많다. 감사하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 마리나 역의 매력은 사실 제겐 좀 어려웠다. 저한테 특별하면서도 어렵게 다가온 부분이 마리나라는 인물이 말과 노래로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교화시키는 역이다. 그게 크게 와 닿지 않아서 연습과정에서 그 부분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마리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없이는 타락한 도시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게 쉽지 않기에 그 부분을 가장 생각했고 인간적인 모습을 추구하려 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뭐가 있을까 했을 때 요즘 폭력이 난무하고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시대다. 연출님이 말씀하신 예수나 간디도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의 힘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노력했다. 

   
▲ 젊은 페리클레스 역 남윤호 ⓒ예술의전당

아들과 두 번째 작업이다. 선배로서 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ㄴ 유인촌: 작년에 처음 사실 아들하고 같이 연극을 한다는 거 자체는 심적인 부담이 많이 있었다. 연기하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크게 그런 거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어차피 제가 겪어왔던 길이긴 하지만 본인이 책임지고 이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땐 뭔가 단순히 재주나 탤런트적인 요소로 이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 일을 시작하면 평생을 해야 하는데 다른 이런저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좇지 않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들이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이건 해답이 없고 또 언제 자신에 대한 완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끝까지 지치지 않고 자신에게 부족한 뭔가를 채우기 위해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자기 자리가 생긴다. 긴 항로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이미 이야기해줬다. 실제로 연기할 땐 사실 도와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본인이 깨닫고 느껴야지. 많은 후배와도 늘 같이 작업을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서로 생각과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고. 연기 자체는 항상 보면 가르칠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며 본인이 깨닫고 느끼고 그러면서 하나씩 쌓아가야지. 저는 옆에서 꾸준히 기다려주고 잘 봐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문체부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밝혀지고 있는데 전 장관으로서 한 말씀 해달라.

ㄴ 유인촌: 요즘 사태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정부부처에서 문화부가 가장 피폐해졌다고 할 수 있다. 문화부에서 일했던 공무원들이나 지시받고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공무원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받은 자존심에 대한 상처나 그런 건 보상이 안될 거다. 국민의 마음도 그렇다.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너무 힘들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대충 걸러지고 견제되고 그렇게 되는 일인데 그런 게 하나도 걸러지지 않았고 진행됐다. 관계된 모든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거고 그 결과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웃음).

   
▲ 마리나 역 전성민 ⓒ예술의전당

'이 희망 속에서 나는 살아간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려운 나라 상황에 모두 힘들어하고 있는데 관객들이 살아가야 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ㄴ 양정웅 연출: 각자가 생각하는 희망이 다 다르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이나 꿈은 다르겠지만. 작품은 보셨다시피 1부에선 있을 수 없는 절망을 겪는다. 부인을 잃고 자식을 잃고 조국을 잃고 떠돌아다니며 겪는 수모와 고난. 그러나 거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나간다. 2부에서도 마리나가 똑같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인신매매 당하며 수많은 위험을 겪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일지 않고 살아간다. 어떤 고통과 고난의 운명적 파도와 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니까. 저희 테마의 키워드를 '나는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목숨이 존재하니까 사는 게 아니라. 그런데도 마지막에 이상적인 엔딩으로 끝난다. 셰익스피어 말년의 작품은, 아니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가 거대한 주제였던 것 같다. 우리 삶의 분노와 증오, 미움이 존재하지만, 또 사랑이 있고 결국엔 용서와 화해를 꿈꾸고 시간이 치유해주고. 그게 자연의 질서고 치유의 힘이고, 그런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런 깨달음이나 질문을 실제로 많이 던졌고 작업 준비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겪어가야 하는, 깨달음과 메시지를 주는 이 작품의 거대함. 그런 것을 느낀 것 같다. 관객들도 이건 제 삶의 방식에서 느끼는 희망이지만 제가 말씀드린 주제 말고도 각자가 얻을 수 있는 주제를 다의적으로 가진 작품이기에 많이들 가져가실 수 있지 않을까. '페리클레스'가 희망의 씨앗이 되면 좋겠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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