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의 연기 버전…유해진의 절제하는 코미디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모처럼 등장한, 잘 만든 코미디 영화 '럭키'의 흥행 돌풍은 단순히 '운'이 작용한 결과일까. 추석 이후, 그리고 마블의 본격적 침공('닥터 스트레인지')이 있기 전, 극장가의 주인은 놀랍게도 주연 유해진이였다. 올 초 '대배우'로 첫 주연작을 맡은 오달수와는 다른 행보이며, 유해진의 또 다른 주연 작품 '미쓰GO'의 기억을 지워도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아수라'의 흥행을 곧 뛰어넘을 것 같은 '럭키'. 흥행이란 팩트만 보자면, 유해진의 얼굴이 정우성의 얼굴을 이겼다. 지금 관객에겐 상처로 얼룩진 정우성의 절망적인 얼굴보다 푸근함과 친근함이 있는 '참바다'씨의 얼굴이 필요했던 것 같다.
 
   
 
 
킬러와 코미디 장르의 만남
코미디 영화와 피, 살인, 킬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코미디에서 기대하는 가벼움과 즐거움, 그리고 긴장의 완화를 청부살인업자에게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장르에 어울리는 소재가 있듯, 장르를 선택하는 관객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킬러에겐 스릴러나 액션물(아저씨) 혹은 로맨스(레옹)가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코미디 영화 '럭키'의 주인공 형욱(유해진'은 킬러다. 차갑고 절제된 형욱이 기억을 잃고,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사람 냄새나는 유해진이 된다. 이러한 '킬러'-'사람 냄새' 간의 간격이 충돌을 만들고,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를 코미디로 요리했는데, 그래도 이 영화는 자신의 뿌리가 코미디 영화에 있음을 잊지 않았다. 킬러가 가진 사연이 어떻게 코미디 영화의 톤 앤드 매너로 녹아들 수 있을까. 아무튼, 색다른 조합이자 좋은 시도였고, 성공한 결과물임이 연일 증명되고 있다.
 
   
 
 
왕자와 거지의 배우 버전
동경하던 타인의 삶을 살면서 장애물을 만나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왕자와 거지'라는 원형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광해' 등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변주되고 있다. '럭키'엔 기억 상실을 매개로 두 남자의 인생이 바뀐다, 비루한 남자는 부유하면서도 비밀스러운 킬러의 삶을, 고급스러운 삶을 살던 킬러는 전 재산이 2천 원인 배우지망생의 삶을 살게 된다.
 
서로의 삶을 알기 위해 하나씩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럭키'의 재미는 '연기'라는 데 있다. 연기자가 되고 싶던 배우 지망생은 진짜 인간을 속이는 연기를 하고, 비밀스럽게 세상을 속여 온 남자는 허구의 이야기 속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 엇갈린 서로의 역할 때문에 서로가 추구하던 '연기'라는 행위의 목적이 전치된 것이다. 이 아이러니 속에 두 남자가 아등바등하며 힘들어하고, 그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다.
 
   
 
 
차분한 유해진이 만드는 코미디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는 코미디 영화에서든 아니든 늘 관객을 기대하게 한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의 연기는 늘 조명받았다. 그 정점에 있던 영화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었고, 그의 애드립은 따로 영상 클립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였다. (음~파 음~파) 이번 '럭키'의 연출이 돋보인 이유는 유해진이 보여주던 익살스러움을 덜어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수많은 표정과 과장 등의 돌출을 자제했다. 연출자로서 보장된 재미를 참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계벽 감독과 유해진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럭키'의 유해진은 킬러의 무드를 깨지 않고, 온전히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만든 틈으로 웃음을 불어 넣는다. 상황은 점점 꼬이기만 하는데, 그 와중에 유해진은 중심을 잡고,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뜨거운 상황과 차가운 유해진의 조화가 만드는 웃음. 그리고 그의 차가움이 하나씩 해제되어 갈 때, 코미디가 생긴다. 유해진은 이번 영화에서 어떤 애드립보다도 친근한 표정으로 관객을 웃게 했다. 참바다씨가 보여준 담담한 웃음이 영화에도 옮아온 것만 같았다. 아, 물론 아재 개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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