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당신을 100분 간 놔주지 않는 작품이 있다.

연극 '도둑맞은책'은 남성 2인극이지만 '스릴미'같은 잔혹한 작품도, '마이 버킷리스트'같은 따스한 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과도 다르게 잔인한 장면 없이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현실을 알맞게 꼬집는 이야기와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블랙코미디가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본 리뷰는 연극 '도둑맞은책'에 대한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명의 원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극화한 '도둑맞은책'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는 '서동윤'과 그의 보조작가 '조영락'이다. 서동윤은 자신의 각본으로 만든 영화가 천만 명을 돌파하고 그 결과로 참여한 영화제 시상식에서 납치당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의 작업실과 똑같이 만들어낸 한 지하창고 밑에서 5년간 함께한 조영락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 그는 조영락이 던져주는 아이템을 받아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연극 '도둑맞은책'에서 얻는 관람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위트 있는 패러디다. 극 중에서 보조작가 조영락은 동료, 후배들의 아이템을 빼앗아 성공한 작가 서동윤을 심판한다. 서동윤은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공동 창작을 운운하거나, 동료 교수를 통해 암호를 풀어내 불법적으로 남의 창작물에 접근하는 등, 비열한 수법을 총동원하는 인물로 나타나는데 그의 행위는 현실에서도 어딘가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훌륭한 이야기는 현상에 매몰되지 않으며 본질적 호소력을 지닌다고 했다. '도둑맞은책'은 굳이 시나리오에 접근한 관계자가 아닌 다른 직종의 이야기로 바꿔도 같은 힘을 지닌다. 회의 시간에 나온 후배의 아이템을 빼앗아 제출한 선배의 이야기는 흔한 레파토리에 불과하다. 그런 일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금 재연될 때 '도둑맞은책'의 특별한 순간으로 재탄생된다.

   
 

두 번째는 '시나리오'라는 아이템을 극대화한 장르적 완성도에 있다. 조영락은 극 중에서 끊임없이 서동윤에게 자신이 배운 것들을 가르친다. 그런 아이러니함 속에서 '도둑맞은책'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밀도를 높인다.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과정을 시나리오라는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내는 서동윤이 어느새 '스톡홀름신드롬'에 빠진 듯 처음의 괴로움에서 글을 만들어가는 환희로 감정이 변해갈 때 관객은 극 초반 조영락이 친절히 설명해준 대로 '너무 흔하지도 않고, 있을법하지만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며 인물들의 행위에 어색하거나 거부감 없이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적 인식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아이템이 '도둑맞은책'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환상적인 수준의 초반부와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은 뻔하게 커피를 통한 복수를 한다는 지점은 조금 빛이 바래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시나리오'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평소 늘 번뜩이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 작가란 사람들의 복수 방식과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아이러니한 재미를 준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론 '연극적 재미'가 있다.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도둑맞은책'이지만 무대를 효과적으로 바꾸거나, 서동윤의 작업실과 납치당한 지하 창고의 배경이 같을 수밖에 없는 점을 오히려 조영락의 집착적 성격을 드러내며 웃음 포인트로 활용하고, 조영락 역의 배우가 여러 인물을 연기하게끔 만드는 지점에서 결코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연극만의 재미도 전달한다. 연출적인 면에선 영화처럼 암전을 통해 장면 전환을 많이 활용하고, 웹툰과의 연계를 통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하면서도 이런 본연의 연극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밀도 높은' 스릴러를 감상하고 싶다면 연극 '도둑맞은책'이 어떨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에서 25일까지.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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