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장르적 쾌감, 우리가 이미 경험한 디스토피아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생일에 엄마가 보고 싶다는 수안(김수안)의 부탁으로 부산행 KTX에 오르는 석우(공유). 출발 직전, 객실로 의문의 여인이 뛰어들어오고, 수안은 열차 밖에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의문의 여인은 몸이 뒤틀리다 의식을 잃고, 갑자기 사람을 물어뜯는다.
 
그리고 물린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물고, 열차 안은 아수라장, 지옥이 되어간다. 열차 밖도 다르지 않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계속 퍼지고 있다. 이 사태로부터 안전한 도시는 열차의 종착지 부산. 석우와 수안은 무사히 부산으로 갈 수 있을까.
 
   
 
 
한국형 좀비물의 탄생
지난 5월, 한국엔 생소한 좀비가 '곡성'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좀비는 기존 좀비의 전통과 특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시체의 부활과 신앙적인 측면을 보여주기 위해 잠깐 등장할 뿐이었다. (잠깐 언급하자면, '곡성'과 '부산행'의 좀비 움직임은 박재인 안무가가 디자인했다. 박재인 안무가가 '곡성'을 준비하며 고안해둔 게 많아, 연상호 감독은 굉장히 편하게 작업했다고 한다) 대개의 좀비 영화는 감염과 확산, 그리고 어마어마한 좀비의 양을 통해 공포를 준다. 이런 특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부산행'은 제대로 된 좀비물이라 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레지던트 이블', '워킹 데드' 등에서 등장해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엔 여전히 낯선 좀비. '부산행'은 이 생소한 대상을 가져오면서, 한국적 특색도 더했다.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인지) 매우 급하고 빠른, 민첩한 좀비가 주는 공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수의 좀비가 몸을 기괴하게 비틀면서 달려오는 장관, 스펙터클은 스릴과 장르적 쾌감을 가져온다. 또한, 총기류가 없는 한국에서 좀비와 어떻게 대결을 벌이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예고편부터 강렬한 남성미를 뽐낸 마동석의 액션이 통쾌하고 시원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장르적 쾌감
'부산행'은 열차라는 폐쇄된, 그리고 달리고 있는 공간에서 감염자가 발생하고, 퍼지며 공포와 긴장감을 키운다. 이 긴장감은 열차에 석우가 열차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관객은 출구 없는 놀이기구에 탑승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좀비의 확산은 주인공들과의 추격전 구도를 만든다. 특히 이 추격전이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 막다른 공간으로 주인공을 내몬다. 이 과정에서 도주, 격투, 탈출, 감금, 붕괴 등의 볼거리가 열차의 칸 마다 준비되어 있다. 지루할 틈이 없는 '부산행'은 여름 극장가를 좀비물의 열풍으로 감염시키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이미 경험한 미래 이야기
'부산행'은 좀비라는 가상의 존재가 등장하지만, 소름 끼치는 현실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좀비라는 얼굴 뒤에, 대한민국이 겪었던 여러 재난상황을 소환하기에 섬뜩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상을 나열한다.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 하는 인물, 죽음 앞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인물, 타인의 위험을 방관하는 인물, 그리고 인간성을 저버리고 이기심을 보이는 인물 등 생존 앞에서 내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는 익숙한 모습이다. 재난 앞에 인간이 선택한 행동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부산행' 열차에 탔다면 어떤 맨얼굴을 보일 것인가. 영화는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재난 앞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의 모습도 흥미롭다. 미디어 및 정치권이 좀비를 대하는 태도, 시민에게 사건을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시민의 행동은 스크린 밖의 세상에서 실제로 목격했던 것들이다. 결국, 확인하게 되는 건 시스템의 오류와 오작동,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의 부재다. 그리고 그 안에 피해자들의 살기 위한 대립, 갈등만 고조된다. 이렇게 '부산행'은 우리가 겪었던 국가의 재난, 참사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극적이지만 현실을 비추는 블랙 코미디가 된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은유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왜, 어떻게 좀비가 되었고, 좀비가 될 것인가. 영화는 개인을 넘어 사회와 역사에 질문을 던진다.
 
 

▲ 정유미가 영화 '부산행' 언론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네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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