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이기에 시도할 수 있던 룩

   
▲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 전화 한 통을 받고 현장으로 나서는 종구(곽도원). 그는 피로 범벅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몇 차례 살인 사건이 더 일어나고, 사건과 얽힌 기괴한 소문들이 퍼져나간다. 공식적으로는 야생 버섯 중독으로 인한 살인으로 발표가 나지만, 마을엔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종구는 기이한 여인(천우희)의 목격담을 들으며 일본인을 의심하고, 그의 자취를 추적한다. 그런데 갑자기 버섯 중독 증상을 보이는 딸 효진(김환희). 혼란스러운 종구는 급기야 무당 일광(황정민)을 부르기에 이르는데….
 

   
 

어둠을 담다
최근 영화관에서 봤던 한국 영화 중에 이처럼 어두운 영화가 있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다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체적인 빛의 양만 봐도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이 확연히 보인다. 관객이 이 어두운 화면에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하고, 스릴러에서 꼭 보고 싶던 룩이라 반갑고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최근 한국 영화들이 고민한 것 같다면, '곡성'은 '어떻게 어둠을 표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듯, 작정하고 빛을 배제하려 애쓰고 있었다.

근래 상업영화에서 잘 볼 수 없는 빛이라는 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러한 빛을 시도하지 않았거나, 제작사를 설득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예측을 해볼 수 있다. 결국, 이 화면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추격자', '황해'에서 자신의 영역을 쌓은 나홍진 감독에 대한 신뢰 덕분이며, 제작과 배급을 맡은 이십세기 폭스의 넓은 시야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한국 영화의 굵직한 순간을 담고 있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공도 크다. 어떤 영향에서든 '곡성'은 화면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그리고 몰입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는 영화다.
 

   
 

떠오르는 명작
어둠을 잘 표현했기 때문일까. '곡성'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명작 '세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잔혹한 살인 사건과 어두운 화면, 그리고 비가 내리는 현장에서의 도입부, 그 밖에도 살인사건을 거대한 수수께끼로 몰입하게 하는 점까지. 단순하게 '곡성'에서 최초에 느낀 화면의 질감, 한국영화에서 못 보던 그 이질감이 가져온 환상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좋은 스릴러로서 영화를 열고 있었다.

이후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살인의 추억'을 연상하는 부분이 있다. 시골 경찰과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설정에서 오는 유사성도 있지만, 살인 사건을 쫓는 과정에서 보이는 성격도 닮아있다. '곡성'에서 종구가 과학과 미신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살인의 추억'에서 감에 의존하던 박두만(송강호)와 과학적 수사를 추구하던 서태윤(김상경) 대립과 닮았다. 버섯 중독 증상과 미신 사이에 갈등하는 종구는 어떤 진실과 대면하게 될까. 무엇이 무엇을 낚고 있는 걸까.

끝으로 최근의 영화 한 편이 더 연상되었지만, 영화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며, 지금 언급할 수 없는 영화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기를.
 

   
 

진하게 낚이는 영화
"절대 현혹되지 마라", "그놈은 낚시를 하는 거여. 뭣이 딸려 나올진 지도 몰랐겄제"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 영화는 낚시, 즉 낚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 말하고 있다. '곡성'의 전개도 결국 '종구가 낚일 것인가, 혹은 낚을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영화에 낚일 것인가 낚이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팽팽한 낚시터에 갈 준비가 되었는가.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 미끼는 던져졌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