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여배우의 전성기…여성의 시선과 '족구왕'의 만남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대한민국 우주 대스타라는 자부심이 있는 주연(김혜수). 엄청난 인기만큼이나 화려한 사생활을 자랑하던 그녀는 남자친구의 배신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와 함께 떨어지는 인기와 대중에게 외면받는 것에 충격을 받은 주연은 한결같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준비한 상상도 못 한 중대발표. "임신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철이 덜 든 그녀의 막무가내 임신 발표는 예상치 못한 대중의 관심을 가져온다. 아이의 아버지를 향한 궁금증과 미혼모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주연. 이를 수습하기 위해 묵직한 스타일리스트 평구(마동석)와 회사 식구들은 분주해지는데….
 
   
 
 
김혜수의 스펙트럼
김혜수는 건강미와 섹시미의 아이콘이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배우다. 그녀의 이미지는 영화의 캐릭터와 만나 '타짜', '도둑들'의 흥행작에서는 팜므파탈적인 선 굵은 연기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작년엔 '차이나타운'을 통해 여성 갱스터라는 한국에서 낯선 인물은 연기했고, 올해에는 한국 드라마의 장르적 진화를 이뤄 낸 '시그널'까지 출연했다. 그녀는 40대 중반에 접어듦에도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다.
 
어두운 장르에서 빛을 뿜어낸 배우 김혜수. 그런데 '굿바이 싱글'은 근래 '이층의 악당' 이후 잘 볼 수 없던 김혜수의 무장해제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코미디의 기근, 그리고 여성 원톱의 영화가 드문 열악한 환경에서 그녀가 '굿바이 싱글'을 선택했다는 것은 의외다. 하지만 이 선택이 관객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차이나타운'에서 없던 길을 걸었던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기존의 틀을 부숴버리는 흥미로운 코믹한 여배우 역할을 소화했다.
 
자신의 실제 이미지를 전유한다는 점이 유독 흥미롭다. 김혜수는 자신의 관능적인 이미지를 극 안으로 가져와 주연에게 입힌다. (영화에서 실제 김혜수와 역할 주연의 교집합을 찾아보면 재미있다. '도둑들'이 언급되기도 하고) 그런데 섹시 이미지는 팜므파탈적 이미지가 아닌 순수해서 어딘가 철이 없어 보이는, 푼수 같은 이미지로 전복된다.
 
여기서 관객은 예상하지 못한 간극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고, 기대하던 김혜수의 모습을 배반하는 주연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충격적이고, 재미있으며 코미디에 특화된 캐릭터다. 김혜수는 차분히 쌓아온 중년 여배우의 고혹적인 이미지를 내려놓으면서, 어디로 튈지 모를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 캐릭터를 완성했다.
 
   
 
 
여성의 시선과 '족구왕'의 감성
'굿바이 싱글'은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이며 덕분에 여성의 시각이, 여성 인물을 통해 잘 표현되어있다. 이 영화엔 사회의 시선이 여성에게 던지는 폭력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있고, 여성 간의 연대를 통해 자신을 버린 무책임한 남성에게 복수하는 통쾌한 플롯도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존재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남성에게 배신당한 이후,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기에 '굿바이 싱글'은 가벼운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더불어 여성의 연대를 통해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굿바이 싱글'의 연출은 '족구왕'의 각본을 썼던 김태곤 감독이 맡았다. '족구왕'은 거대한 영화 산업 앞에서도 묵묵히 그 영화만의 독특한 색과 마이너한 감성을 뿜어냈던 톡톡 튀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김태곤 감독이 '굿바이 싱글'을 맡음으로써, 이 영화가 시도한 생소한 조합과 독특한 시선이 담긴 플롯은 맛있게 완성된다. 김태곤 감독 덕에 '굿바이 싱글'은 한국 영화의 공식· 정형화된 틀을 벗어날 가능성이 양껏 담긴 영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독특한 상황과 개성 있는 캐릭터가 '굿바이 싱글' 전·중반부가 지나면, 익숙하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매듭 지으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혜수가 자신의 이미지를 전유, 전복시켜 개성과 리얼리티를 완성했고, '족구왕'의 독특한 영화적 힘이 조합되었지만, 그 결과물은 전형적인 전개에 얹혀 개성을 잃는다.
 
중반부 이후 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작위적 설정과 익숙한 전개에 묻힐 때, '굿바이 싱글'의 배우와 감독을 향한 설렘과 기대가 조금은 배반당하고 마는 것이다. 상업영화에 등장한 새로운 스토리텔러의 등장을 반기는 한편, 그가 영화 산업에 잠식당하지 않는 신선한 영화로 매번 찾아오길 기다린다.
 
   
 
 
'델마와 루이스', '아가씨', 그리고 '굿바이 싱글'
두 명의 여성이 사회의 시선, 편견과 대면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고전 '델마와 루이스' 등의 영화를 직·간접적으로 소환한다. 오마주로 봐도 좋을 드라이브 씬도 있으니 '델마와 루이스'는 어떻게든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러니 '굿바이 싱글'의 드라이브 씬을 보며 이들이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지, 무엇에 맞서 대립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두껍게 읽는 방법이 될 것이다.
 
앞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남성의 억압과 여성의 탈주를 보여주며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이렇게 여성혐오, 여성영화, 그리고 페미니즘까지 여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현시점에, '굿바이 싱글'은 독특한 위치에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델마와 루이스'는 두 여성이 존재하는 세상으로부터의 탈주를, '아가씨'는 다른 세계를 찾아 물 위를 떠도는 두 여성을 보여주며 영화를 닫았다. '굿바이 싱글'의 여성들이 도달하는 결말은 무엇일까. 이를 비교하며 여성들이 찾은 길을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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