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델로 - oh the yellow' 리뷰

 

   
 

[문화뉴스] '차별'이라는 단어가 현존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평등'한 사회가 도래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얼마 전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보며 '혐오' 혹은 '차별'이라는 단어로 우리 사회의 곪은 환부를 조명하고 있다.

2016년 5월의 대한민국이라는 시공성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연극이 있다. 17세기 영국에서 창작된 셰익스피어의 '오델로(Othello)'를 현재의 시공성에 맞게 각색한 '오델로 - oh the yellow'다.

 

   
 

많은 이들은 오델로를,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다가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로 기억한다. 그러나 김현탁 연출가가 이번 공연에서 초점을 맞춘 부분은 오델로가 '흑인'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외국인, 오델로. 그리고 외국인이 바라보는 우리, 오델로”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오델로'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의 시선이 들어간 작품 혹은 인물들을 재조명해, 우리의 만연하고 안일했던 시선을 상징적으로 구현해낸다.

 

   
 

'오델로를 혐오한 이아고'에서부터 비롯되는 연극은,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마이클 잭슨의 'I'll be there',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등을 함께 불러내고 있다. 이 모티브들은 각각의 파편으로써 산발된 채 관객들의 '인식'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각각의 장면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시각, 청각, 촉각 등)들을 통해, 보는 이의 견고하고 고정적이었던 인식체계에 균열을 일으키곤 한다. 이번 연극 또한 그런 방식으로 인종차별이 백인들만의 향유물이 아니라, 교묘하고도 관습적으로 실천되어온 우리의 차별적 시선, 이중적 잣대임을 폭로한다.

 

   
 

실제로 오델로 역은 Anupam Tripathi라는 흑인 배우가 맡았다. 연극 무대에서 자막 없이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매우 생소한 일이다.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이 극히 드물뿐더러, 우리가 통상적으로 그리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 무대는 '한국인'들로 구성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흑인 장군 오델로의 역할일지라도, 흑인 역할을 맡은 한국인의 연기를 보는 것이 익숙하다.

이에 대해 김현탁 연출가는 "능숙하지 못해 어눌한 한국어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그(Anupam Tripathi)의 자국어는 셰익스피어의 문장들을 생경하게, 의미보다는 감각 자체로서 전달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극이 진행될수록 느껴지는 크고 작은 혐오감들이 쉼 없이 우리의 감각을 건드릴 때, 관객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유색인종을 대하는 백인들의 차별적 시선과 일치되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연출가의 의도적인 캐스팅에 의하여 관객들은 차별적 시선을 실현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유색인종을 향한 차별적 태도를 거둬야한다고 굳세게 주장하는 우리는, 동시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전도된 차별주의자'로서의 본인의 시선은 망각하고, 스스로 차별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인 양 인식하던 우리에게, '오델로 – oh the yellow'의 관극 체험은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아무리 한국인 배우가 밀도 높은 연기력으로 흑인 오델로 역할을 맡아 우리 스스로에 대한 차별주의를 지적하고자 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실체적인 공감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실제 감각적으로 본인의 '전도된 차별주의'적 시선을 경험한 관객들은, 쉽사리 자신의 이중적 면모를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혐오 혹은 차별이라는 날선 키워드에 집중된 현재 우리 사회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이라는 민감한 단어를, 우리 스스로가 자행해왔다고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무마하거나 왜곡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이라는 상태를 객관화시켜, 제대로 파악하고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극 '오델로 – oh the yellow'는 그런 작업이 되고 있으며,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어야 내재된 차별적 시선을 스스로 시인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자성적인 고백들이 더 늘어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극단 성북동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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