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리뷰

 

[문화뉴스] 공연 내내, 고단한 민생들의 입가에 조소나 비소가 아닌 청정한 대소(大笑)가 떠나지 않았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색(色)'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공연이다. 청상살, 상부살 때문에 만나는 남편마다 장례를 치러야 했던 옹녀와 정력이 넘치는 변강쇠. 이들의 만남부터가 심상치 않다. 청석골로 향하는 어느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옹녀와 변강쇠는 "서로의 중간이 스쳐 춘한 것이 동하"며, 만난 날 즉시 첫날밤을 치른다.

 

 

고선웅 연출가가 맡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창극 최초로 '18금(만 18세 이하 관객 관람불가)'을 내걸며, 어른들의 진한 농(弄)의 세계가 무엇인지 단단히 보여줄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공연은 지난 달 14일부터 17일까지 프랑스 테아트르 드 라 빌의 2015-2016 시즌 프로그램으로 정식 초청되기도 했다,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 극장장은 공연에 대해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과 극 장르에서도 코믹함과 섹슈얼리티가 이렇게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한국어의 발성이 갖는 고유성, 판소리만의 발성은 다양한 예술장르를 접하고자 하는 프랑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는 극찬을 내놓은 바 있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외설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해학의 중심에는 창극이 있다. 신명나고 유쾌한 리듬, 그리고 구성진 소리가 만나 자칫 민망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흥겹게 꾸며주고 있다. 

특히 구수하고 천연덕스러운 노랫말이 기가 막히다. 의인화된 장승들은 옹녀와 변강쇠의 강렬한 정사를 두고 "장렬히도 회포를 푸는구나. 그것도, 그것도 몇 번씩이나!"라 부러움 섞인 분개를 쏟으며, "아아, 장생의 고단한 삶이여"라 애달파한다. 또한 변강쇠의 교만한 행위에 분노한 장승들이 그에게 어떤 질병을 가져다줄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질병을 박자에 맞춰 읊어대기도 한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우리의 전통을 모던하게 만들어주는 무대미학에 있다. 스크린에 비춰진 모자이크는 옹녀와 변강쇠의 정사를 익살스럽고도 은밀하게 표현하며, 조명이나 이미지의 사용도 우스움과 야릇함의 경계를 넘나든다. 더욱이 옹녀가 원한을 품고 장승들에게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프레임의 설정을 통해, 세련되고 임팩트 있는 복수 장면을 연출해낸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

웃음에 인색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점차 웃음에도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전제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웃음이 지닌 의미도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가진 웃음의 메커니즘은 어떤 대상이나 의도를 조소 혹은 비소하기 위한 패러디에 있지 않다. 웃음을 위한 웃음, 웃음이 자아내는 즐거움, 온전한 '재미'에 그 기치를 두고 있다. 다만, 이들의 웃음은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본능을 저속하고 값싸게 포장해온 현대의 여타 외설물에 대한 공격이자, 호통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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