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소시오패스들은 무감정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마디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

'댄싱 9'의 심사위원으로 대중들에게 화제가 된 스타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무용극 '로튼 애플(Rotten Apple)'을 5월 5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올린다.

'로튼 애플'은 2012년 차진엽 안무가가 종합예술을 선보이고자 만든 단체 콜렉티브A의 창단 공연으로 만들어졌다. 2012년 11월, 문화역 서울284에서 초연된 '로튼 애플'은 2012년 한국춤비평가상에서 베스트 작품상, 제18회 2012 춤평론가상에서 춤연기상을 받았고, 2013년 SPAF(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선 국내 초청작으로 공연됐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으로 '로튼 애플'은 기존의 극장 무대와 객석 간의 경계를 벗어나 관객과 공연자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관객은 마치 여행자나 순례자처럼 퍼포먼스의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의 발걸음에 하나가 아닌 다양한 공연의 순서가 정해지게 된다.

차진엽 안무가는 이를 '어 댄스 익스피리언스(A Dance Experience)'라고 말했다. 관객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뜻이다. 이번 공연엔 차진엽 안무가가 직접 출연도 하며, 연극 '빛의 제국'에 출연한 배우 지현준, 무용수 김동욱, 정주령, 박민영, 김성현 등이 등장한다.

27일 오후 대학로에 있는 가프스테이지에서 연습이 한창인 차진엽 안무가를 만나 작품의 제목을 '로튼 애플'로 설정한 배경과 그 의미, '어 댄스 익스피리언스'를 하고자 한 이유 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평소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공연 제목이 '로튼 애플'인 이유는 무엇인가?

ㄴ 처음 공연할 땐 제목이 나중에 만들어졌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고민을 하고 싶고,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결정했다. 당시 심리 상태나 관심사 같은 개인적인 것이 작품에 녹여진다. 당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힘들었다. 인터넷과 신문을 들여다보며 내 일이 아닌데 힘든 것을 접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뉴스 속 사회는 씁쓸하고 안타까웠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방관자여서 답답했다. 그들에 대한 연민, 동정심, 억울한 것에 대한 울분을 토해낼 수도 없었다. 그런 시기의 사회적인 이슈들로 작품을 다루게 됐다. LDP무용단 단원 생활할 때와는 마음이 달라졌다. 작가로 내가 작업 방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 더 시야가 넓어졌다. '나'부터 시작해, 나와 관계되는 2인칭의 상대, 내가 겪는 주변의 일들, 내가 몸을 담지 않은 사회에 문이 열렸다. 그때 '썩은 사과'가 이슈가 됐다. 기사들에서도 세계를 바꾼 3대 사과로 뉴턴의 만유인력 사과, 스티브 잡스의 애플,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등 여러 사과가 언급됐다. 이 사과가 우리 인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한텐 이 사과가 어떤 것인지 고민했다.

처음 공동제작을 같이했던 대표와 함께 제목을 고민할 때, '썩은 사과'는 단편적일 것 같았다. 그런데 '로튼'이라는 것에 여러 의미가 담겨질 것 같아 영어를 선택해 '로튼 애플'로 하게 됐다. 작품을 만들다 '썩은 사과'라는 경영책이 있어서 참고도 했다. 썩은 사과가 이 사회에 많았다.

내가 썩은 사과의 입장인 경우도 있었다. 겉은 멀쩡하게 보이는 맛있는 사과박스로 포장되어 있어도, 하나만 썩은 것이 있으면 곧이어 전염이 되어 회복될 수 없고 다 썩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기업이나 무리가 있다면, 썩은 사과가 있으면 그곳은 밑이 썩은 곰팡이처럼 무너지게 된다.

   
▲ 차진엽 안무가(오른쪽)가 대학로 가프스테이지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또한, 소시오패스들이 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겉으론 멋있는데, 뒤에선 조종하고 피해를 주고, 피해를 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정한 사람들을 생각해 배경은 '화이트'로 줬다.

'썩은 사과'를 주제로 잡고나니 이처럼 매우 많은 이야기가 내포됐다. 초연 때는 성경에 나온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통해 쾌락 등 고통을 느끼게 했고, '백설공주'를 유혹한 독사과를 통해 젊음과 아름다움을 쟁취하기 위한 여성의 본질적 문제 등 여러 사과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게 됐다.

이번에 세 번째 하면서 이전 작품에서 좀 더 덧붙여진 이야기는 '사과하다'의 사과였다. 이전 작품엔 그런 사과가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소시오패스들은 무감정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마디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

여러 사건들이 있다. 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여러 사고를 당한 유가족들이 보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진실한 사과 한마디이고,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한마디 들으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스탠딩 공연으로 진행되는데, 정확히 관객들이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인가?

ㄴ 관객이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작품을 보는 형식이 언젠가부터 지루해졌다. 주변 지인들의 관심 있는 공연을 평소에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런데 작품이 좋아도 형식이 지루해졌다. 그래서 내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들은 좀 더 능동적으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전시를 보러 갈 때, 작품들이 있으면 관객들이 돌아다니면서 보고 싶은 걸 본다. 그리고 오래 보고 싶은 건 더 오래 본다. 전시는 관객이 더 능동적이어야 한다. 공연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봤다. 그래서 전시형태처럼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놓고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본인들이 자유롭게 동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입부가 진행되다가 공연 형식으로 통합되면서, 작품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관객들이 어떻게 이번 작품을 받아들이면 좋은가?

ㄴ 사실 이 작품이 연극이나 영화가 아니어서 이런 이야기들이 시나리오대로 나열되는 기승전결 구조는 아니다. 연극이나 영화가 소설에 가까우면, 무용은 시에 가깝다. 내용은 똑같아도 표현 방법은 사실적이 아닐 수도 있다. 독자가 자기 방식대로 누구나 아는 언어대로 쉽게 설명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의 대중성도 사실 모호한 이야기다. 나는 내 방식대로 펼쳐놓는데, 내 스타일이나 코드를 이해한다면 분명 공감이 갈 것이다. 아무리 잘 차려놔도 거부감이 들을 수 있는 분도 있다. 대중음식점이 아닌 단출해도 내 레시피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와주셔서 먹어줬으면 한다.

대중음식점처럼 여기저기에 차려서 많은 이들의 입맛을 평균적으로 두루두루 할 수 있는 요리법 찾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먹어주면 좋은데, 내 레시피를 명확하게 하고 다른 데서 맛볼 수 없는 내 음식을 차리려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내가 어떤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 건지, 나의 방향이 뭔지를 연구해야할것 같다.

   
▲ '로튼 애플' 과거 공연 장면. ⓒ 콜렉티브A 홈페이지
평소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나?

ㄴ 일상 관심사, 나만의 심리상태 등을 통해 호기심이 발동한다. 계기도 생기는데, 그때마다 다른 것 같다. 다른 아티스트와 공동작업도 하는데, 장르가 흥미로운 게 아니라 내 춤에 그것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춤을 하고 들어왔을 때 그 주제가 더 명확해진다.

예를 들어, 시대의 트렌드니까 미디어아트나 도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나 영감이 춤에서 시작된다. 이 춤이 나에겐 어떤 식으로 보이게 할 건 지인데, 그러기 위해선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아이디어를 찾게 된다. 다른 매체나 장르들이 들어왔을 때도 그러했다.

융복합에 말이 많고, 누구는 본질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내 춤을 확장하고 더 완성도 있게 보이기 위해 융복합을 사용한다. 라이브 음악이 들어와야 춤이 살거나, 무대세트에서 이 춤이 확실해진다면 세트가 필요한 것이다.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춤 동작만 안무가 아니다. 춤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이런 것을 하나에 완성된 작품으로 보여주는 게 내가 하는 안무의 개념이다. 춤이 보이는 공간부터 이 춤을 위해 뭘 보여줄지, 장르를 안무한다. 그래서 외국엔 시노그라피라는 전문 과정이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엔 그것이 없어서 안무 및 시노그라피를 써놨다. 연출이라고 하기엔 느낌이 다르다. 

▲ 안무가 차진엽이 작업한 '가온: 세상의 시작'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최근 정동극장 작품인 '가온: 세상의 시작' 안무를 맡았다.

ㄴ 제안이 먼저 들어와서 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전공했고, 중·고등학교 때 세 가지 장르인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다 배웠는데, 특히 한국무용을 좋아했다. 나도 몰랐는데 그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국 활동할 때 내가 남들과 다른 차별점이 무엇일까 했는데, 한국무용이 큰 메리트가 됐다. 영국에서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쓸 때도 한국춤을 통해 나의 컨템포러리 댄스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다. 나는 한국춤이 서양춤과 만나 어떻게 내 스타일로 만들지 연구했고, 본격적으로 작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기회가 생겨 행복했다.

동생 차민엽 연출과 인터뷰하면서, 언니와 가족 융합 공연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ㄴ 그러면 싸우고 난리 난다. (웃음) 이런 공연 작업을 연출 데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춤에 대해 어깨너머 배워갔는데, 큰 공부가 될 것이라 본다. 본인도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동생이 연출한 것을 보면 무용수도 나오고, 움직임 접목도 같이했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다. 내가 고민 있을 때, 동생과 의논하면서 좋은 의견도 듣는다. 서로 동료 같은 관계로 의지할 수 있다. 서로 하는 장르가 다르니, 내가 모르는 것을 동생이 알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많다고 본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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