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득 송지선 아나운서, 호세 리마 5월 23일 '기일'

▲ 11년 전 오늘은 송인득 캐스터(사진 좌)가, 8년 전 오늘은 호세 리마(사진 우)가 별세한 날이다. 사진제공=MBC/KIA 타이거즈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고, 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길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5월은 참 특별한 달이다. 그래서 가정의 달 5월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모두 5월에 있고, 이 때문인지 결혼 시기도 주로 5월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5월에는 실제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출발한 프로야구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좋은 일만 넘쳐나도 모자를 5월에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탈 소식이 전달된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원정길에서 '술'로 비롯된 일이 발생했고, 그것이 경찰 조사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펙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조사 결과가 무혐의로 드러나 KBO 징계까지 피해갈 수 있다 해도 '술에 의해 프로 선수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라는 비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다수의 팬들 역시 성폭행 여부도 그렇지만, 프로답지 못했다는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송인득 송지선 아나운서, 호세 리마 별세까지
유난히 잔인한 5월 23일의 기억

그런데 이러한 일이 공교롭게도 5월 23일에 일어났다. 23일은 야구계에 유난히 많은 조사(弔詞)가 일어나 적지 않은 야구계 인사들과 야구팬들이 무거운 마음을 안았던 날이기도 하다. 2007년에 송인득 아나운서가 간경화로 인한 뇌출혈로 별세했고, 2010년에는 빅리그에서 '리마 타임'으로도 유명한 호세 리마(前 KIA 타이거즈)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에는 KBSN과 MBC SPORTS+에서 몸담았던 송지선 아나운서가 유명을 달리했다. 서로 분야는 달랐지만, 야구라는 공통분모 내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들의 별세 소식은 매년 되뇔수록 가슴 아픈 법이다.

허구연 해설위원과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면서 야구를 가장 편안하고 차분하게 전달했던 송인득 아나운서는 1982년 MBC 입사 이후 굵직한 스포츠 중계를 담당했던 베테랑이기도 했다. 2006년 6월에는 차범근 해설위원, 김성주 아나운서와 함께 독일 월드컵 캐스터를 역임하면서 시청자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멘트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특히, '카타르 도하 참사'로도 알려진 2006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야구팀이 실업야구가 주축이 된 일본에 패하자 "혀 깨물고 죽고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라는 멘트로 야구팬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도 했다. 또한, 야구 분석에도 정통하여     그가 기록한 경기 메모는 KBO등 공식기관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평소 좋아했던 술/담배를 줄이고 본인의 건강을 조금만 더 챙겼다면, 지금 59세의 베테랑 아나운서로 여전히 그라운드를 드나들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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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N과 MBC SPORTS+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최선을 다했던 송지선 아나운서의 기일도 5월 23일이다. 사진제공=MBC SPORTS+

그로부터 3년 후 같은 날, 호세 리마의 심장마비 사망 소식이 전달됐다. 뉴욕 메츠에서 퇴단한 이후 KIA 타이거즈를 찾으며 익살스러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했던 리마는 빅리그 통산 89승을 기록했던 이였다. 비록 국내 무대에서는 A급 선발 투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퇴단해야 했지만, KIA 선수단 사이에서는 꽤 존중을 받았던 베테랑 선수였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망한 이후 양현종이 그 해 6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면서 승리 소감을 말할 때 리마를 언급했던 것도 꽤 유명한 일화다.

리마의 사망 소식이 전달된 이후 이듬해, 또 다른 이가 하늘의 별이 됐다. '스포츠 여성 아나운서' 1세대 격인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당시 송지선 아나운서는 본인보다 나이가 어렸던 유명 프로야구 선수와의 연애 사실을 언급, 본인의 SNS를 통해서 길고도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또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많이 얼굴이 알려진 아나운서로서 이는 대단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당 선수는 연애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좋지 않은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결국 좋지 않았던 예감이 틀리기 바랐던 작은 소망을 뒤로한 채 송 아나운서는 해당 선수의 인터뷰가 나간 바로 다음 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해당 선수 역시 현역으로서는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잊혀질 이름이 될 수도 있지만, 유난히 슬픈 일이 가득했던 5월 23일, 기일을 맞이한 세 명의 이름만은 다시 떠올렸으면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ugenephil@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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