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저기압이면 고기 앞으로 가라'는 유행어가 있다. 그 유행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진짜 '요즘 연극'을 보고 싶다면, 연극 '킬롤로지' 앞으로 가라.

연극 '킬롤로지'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연극 브랜드인 '연극열전'의 7번째 시즌 첫 작품으로 오는 7월 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영국 작가 '개리 오웬'의 원작을 '터키 블루스', '밀레니엄 소년단' 등 남성 중심 작품에서 독보적인 연출력을 발휘한 박선희 연출이 맡았다. 다만 이 작품은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남성적인 작품은 아니다. 박선희 연출이 동년배 남성들의 관계를 그려내는데 능하다는 인식을 한방에 바꿔줄 수 있는 작품이다. 왜냐면 남성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구조를 짚어내고 있기에 성별과는 관계 없이 인간의 연약함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의 이야기로 표현한다면 더 좋은 의미를 지닐 수도 있겠지만, '킬롤로지'는 현재 자체로도 훌륭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살인을 만드는 미디어, 살인을 실행하는 사람, 살인을 조장하는 사회. 세 가지가 얽혀 누구도 단수가 아닌 복수의 얼굴로 관객을 만나는 연극 '킬롤로지'는 그야말로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다'라는 낡은 구호를 아주 세련된 의미로 탈바꿈하는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다.

자극적인 미디어가 사람을 살리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는 21세기의 '온라인 지구촌'에서 이 작품의 영향을 빗겨나갈 순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아직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곳이라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킬롤로지'가 그곳에서 반드시 유효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킬롤로지'는 진짜 '동시대성'을 담아내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게임과 똑같은 방법으로 아들이 살해당했다.

이 심플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무얼 던져줄 수 있을까? 물론 '뭐든지 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아들이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스릴러, 서스펜스, 혹은 범인을 찾는 미스테리 등을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킬롤로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속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역설적으로 '인간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이건 화가 난다고 해서 아들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는 '그런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의미'다.

그리고 그 '공통점'으로 인해 '킬롤로지'의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세 인물의 모든 이야기는 곧 저마다의 이야기면서 상대의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분명히 드러낸 시놉시스, 그 안을 한참 헤매다 엔딩에 도착했을 때 분명해지는 메시지도 그렇다. '알란'도 '폴'도 '데이비'도 구조 속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이것이 극적인 효과를 관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덧씌워지는 프레임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각 인물들의 독백으로 풀어내는 연극성이 너무나도 돋보인다.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세련된 방식은 '연극'이 어째서 시대의 정신이 될 수 있는지도 입증한다. 다만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가 도처에 존재하는데 이 역시도 너무나 연극적으로 잘 풀어내 직접적인 표현 이상의 정신적 충격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연극 최대의 문제점이다.

하지만 '킬롤로지'는 그러한 문제점을 넘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꼭 봐야할 작품이 아닐까. '폴'처럼 자신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은 화면에서 눈을 돌리기엔 이미 현실은 '킬롤로지' 이상으로 얼룩지지 않았나. 극을 보고 나오면 그간 봐온 많은 SNS, 유튜브, 포털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 것이다. '돼지가 하늘을 날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주 조용히 숨어있는 그곳들을.

 

이렇게 훌륭한 작품에 캐스팅은 거들뿐이지만, 알란 역에 김수현, 이석준, 폴 역에 김승대, 이율, 데이비 역에 장율, 이주승이 출연한다. 이들의 연기력 자체도 극과 별개로 훌륭한 관람요소가 된다. '킬롤로지'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재관람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을 것이다. 텅빈 듯하면서도 꽉 찬 무대서부터 한 인물의 독백 때 다른 두 인물의 작은 움직임, 대본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대사 한 줄까지 곱씹어볼 요소가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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