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간 경기 소요 시간 속에서도 예의를 갖춘다는 점에서 야구와 비슷

▲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팀 킴(Team Kim)'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기세가 컬링의 국민스프츠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사진제공=평창동계올림픽 위원회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지난 2월 25일 저녁, 17일간 선수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해맑은 미소가 오갔던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폐회를 맞이했다. 대한민국 태극 전사들은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캐치 프라이즈 아래, 역대 동계 올림픽 이래 가장 많은 총 17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메달 색깔보다는 지구촌의 축제라는 올림픽 본연의 무대가 충실하게 재현되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져도 좋을 듯 싶다.

이번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평창 동계올림픽 결산 1, 2편'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메달 획득 분야가 꽤 다양했다는 점이었다. 전통 설상 종목(스노우보드)을 비롯하여 썰매 종목에서도 메달이 나왔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도 김연아 키즈들이 버티고 있는 피겨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림픽을 앞두고 특별 귀화를 선언했던 이들이 대부분 국내에 남기로 결정을 하면서 이러한 예상은 4년 뒤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에는 아이스하키의 한라성(영어명 맷 달튼)처럼 한글 이름을 지닌 귀화 선수가 더 많이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신사의 스포츠 컬링,
대한민국 동계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제 올림픽 위원회(이하 IOC)는 지난 2월 28일 평창 동계 올림픽을 빛낸 영웅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남자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을 비롯하여 조국 헝가리에 첫 금메달을 안긴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 대표팀이 히어로 리스트에 오른 가운데, 의성의 '마늘 소녀들(Garlic Girls)'로 소개된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멤버들도 당당히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IOC는 컬링 대표팀에 대해 '세계 강호들을 꺾으며, 조국에 컬링 센세이션을 일으킨 강인한 여성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라는 설명으로 선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영미야~!"로 유명세를 탄 컬링 대표팀은 그 어떠한 태극전사들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컬링 연맹이 관리 단체로 지정되고, 대표팀 전원이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가운데 획득(주 : 컬링 경기장 추가 공사로 인하여 실제 연습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한 메달이었기 때문에 그 감격이 배가 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리는 컬링은 예의와 매너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약 60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쌓아온 컬링 특유의 문화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인 다른 종목과는 달리, 상대팀의 지적이 있으면 합의를 통하여 스톤의 위치를 옮기거나 아예 제거할 수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점수 계산은 물론, 작전 타임도 선수의 판단에 의해 진행된다. 경기 중 선수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제한다. 상대팀이 투구하는 동안 투구하고 있지 않은 팀 선수들은 절대 투구자의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팀을 위압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행동 또한 마찬가지로 금지된다. 상대의 실수에 좋아하는 장면도 컬링에서는 큰 실례로 여긴다. 아니, 경기 중간에는 대부분 무표정으로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가 엔드가 끝나면 서로 격려하는 차원에서 마무리한다.

대부분 스포츠에서 기권은 창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컬링에서만큼은 기권도 훌륭한 매너로 통한다. 특히, 엔드 중간이라도 이미 승패가 결정됐다고 판단되면 "굿 게임(good game)"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먼저 기권을 하는 것이 예의다. 되려 사실상 패배가 확정된 경기를 마지막 엔드까지 끌고 가는 것을 무례한 플레이로 받아들여진다. 보통 7, 9엔드 사이에 점수가 6점 이상 벌어졌을 때 기권을 하기 마련이다. 보통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컬링 경기의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정말 오랫동안 예의를 지켜가면서 경기를 진행하는 셈이다.

장시간 걸리면서도 경기 끝까지 예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컬링의 인기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스포츠에 열광했고, 또 아낌없는 사랑을 줬기 때문이다. 이번 컬링 경기 역시 국민들은 어느 국가가 경기를 하건 간에 성숙한 관람 매너로 해외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받은 바 있다. 국적과 무관하게 선수들이 샷을 하는 순간 경기장은 쥐 죽은 듯 고요했으며, 근사한 샷이 나올 때면 금세 환호와 박수 갈채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이는 4년 전 소치 올리픽에서 러시아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자국 선수들을 응원한 장면과는 명확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1회부터 9회까지 진행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복장을 제대로 갖춰서 시행하는 야구가 대한민국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 바가 크다. 생각해 보면, 1엔드부터 10엔드까지 진행되는 컬링이나 1회초부터 9회말까지 시행하는 야구는 꽤 비슷한 점이 많다. 복장을 갖춘다는 것 역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사실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공고롭게도 두 종목은 삼성 라이온즈가 여자 컬링 대표팀을 홈 개막전 시구자로 초청하면서 묘한 접점을 찾아가기도 했다. 경북 의성을 근거지로 하는 여자 컬링팀은 연고 구단인 삼성의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혀 연관이 없는 듯 하면서도 닮은 야구와 컬링. 그래서 의성 소녀들의 '팀 킴(Team Kim)' 열풍이 지나가는 태풍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특히, 평창올림픽을 전후하여 생활스포츠로 컬링을 즐기는 인구 숫자가 늘어났다(2014년 600명 → 2015년 1,300명)는 국민체육공단의 통계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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