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2016년은 '박정민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주'에서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를 연기해 대중은 그동안 몰랐던 송몽규 열사를 재조명할 수 있었고, 송몽규로 박정민이라는 훌륭한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대중의 관심과 찬사는 각종 시상식에서도 드러나, 박정민은 그 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며 '충무로가 찾는 배우'가 되었다.

 박정민을 원하는 관객들에겐 2018년이 행복할 것이다. 지난 17일 개봉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시작으로 1월 말에 개봉 예정인 '염력'과 이준익 감독과의 또다른 작품 '변산',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사바하'와 '사냥의 시간'까지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진태'를 연기한 박정민은 대단했다. 대역없이 완벽하게 소화해 낸 피아노 연주는 물론이겠거니와, 시선처리와 세세한 손동작 등 괜히 '떠오르는 연기 신'이라는 수식어를 증명해냈다.

문화뉴스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 개봉하기 이전인 4일 늦은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 어느 카페에서 박정민과 인터뷰를 가졌다. 박정민이 말하는 '그것만의 내 세상'은 어떤 영화였고, 오진태는 그에게 어떤 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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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내 세상' 완성본을 본 소감은 어떤가?
└ 내가 나온 영화를 처음 볼 때마다, 내가 한 연기에서 실수를 찾아내는 버릇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질 못한 채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 언론 시사회 또한 어김없이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1시간 30분쯤 지나서부터 아는 내용임에도 영화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눈물 날 정도로 슬펐다. 영화가 끝난 후, 옆에 같이 봤던 윤여정 선생님이 연기 잘했다고 격려해주셨고, 여느 때와 달리 보람 있었다.

이번 영화에 출연 결정한 후,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3개월 주어졌던 걸로 안다. 이번 역할 준비 때문에 상당히 바빴겠다.
└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를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했고, 촬영 후에도 계속 배웠다. 그리고 역할 때문에 나 스스로 고민했고, 실제로 촬영 중에도 특수학교 자원봉사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잘하고 싶었고, 잘 해내야 하는 연기였다. 어설프게 연기한다면 불쾌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기에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이번 영화 때문에 자원봉사까지 했다고 말했는데, 얼마나 참여했던 것인가?
└ 한 학기(4개월) 참여했다. 1주일에 한 번 8시간씩 특수학교에 방문했다. 그곳에 근무하시는 복지사들이 영화를 본 후, 잘 표현해줬다며 칭찬하셨다. 그분들의 칭찬이 유독 크게 와닿았고 감사했다.

자원봉사하면서 내가 맡았던 학생들이 5명이었다. 최대한 그들의 개인적인 특징을 따라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학교 측에도 그 점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해줬다. 하지만 사람이 보고 듣는 게 대부분이기에, 집에서 연기를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의 특징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버릇을 지웠다.

준비하면서 마음고생 심했을 것 같다.
└ 아무리 표현이 좋더라도, 그들을 향한 존중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 ⓒ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사실 진태라는 인물이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역할이기에, 배우 입장에서 연기로 끌어내기에 힘들었을 것이다.
└ 그렇다. 많이 본 듯한 전개나 감정일 수 있는데, 하지만 영화를 처음 보고 느꼈던 건, 허전하거나 미흡한 부분들은 특별한 CG나 앵글 없이 선배 및 다른 동료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잘 메꿔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태 같은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소재는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다른 분들이 하신 훌륭한 연기와 다르게 하려고 일부러 참고하지 않았고, 참고할 시간도 없었다. 그분들 또한 각고의 노력 끝에 보여준 것이고 내 연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저 사람이 했으니까 따라 하면 안된다고 하나씩 소거했다면 잘못된 연기를 할 것 같다.

같이 출연한 이병헌, 윤여정 또한 다른 작품 등에서 상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배우인데, 이들에 기 눌리지 않고 상당한 연기력을 드러내 인상깊었다.
└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을 뿐이다. (웃음) 모든 이들이 존경해 마다하지 않는 두 분은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건 해봐라'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분들이었고, 어느 순간 나를 후배가 아닌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동료 배우로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라는 보잘것없는 이를 동료로 대해주는 게 놀라웠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맡은 배역을 잘 해내려고 현장에서 노력했다면, 선배님들은 영화 전체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접근했다. 이 점에서 나와는 달랐고, 그 점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두 배우를 극 중 엄마와 형으로 만났는데, 가족으로서 두 선배는 어땠는가?
└ 진태에게 엄마는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촬영현장에서도 윤여정 선생님 옆에 있게 된다. 선생님이 걸크러쉬 같은 면모와 더불어 말을 잘하시는 분이기에 그저 옆에서 듣고 웃기만 하는 데도 편해졌다. 그래서 언론시사회에서도 나에게 "아들로 느껴진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이병헌 선배님은 평소에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였고, 극 중 '조하'와 진태의 관계처럼 뭐 하시나 옆에서 지켜봤다. 엄마와는 사뭇 다른 관계였다. 그리고 선배님이 종종 재밌는 이야기 하면 옆에서 듣고 웃는다. 웃음 코드도 나와 잘 맞았다. 이병헌 선배님이 가장 재밌는 점은, 자기가 던진 이야기에 자기가 웃으신다. (웃음)

진태는 피아노 뿐만 아니라 게임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왜 피아노에 빠진 것인가?
└ 실제로 서번트 증후군인 분들도 특별한 이유 없이 한 분야에 재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엄마가 진태의 재능을 알게 되어 피아노 학원에 보냈고, 진태를 위해 없는 살림으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진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주로 마음의 안정을 얻기 때문이었다. 서번트 증후군 가지고 계신 분들에 관한 글을 보면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나와 있다. 진태가 게임을 하는 화면을 쳐다보는 것처럼 말이다. 진태에게 피아노가 자기 세상이었다.

극 중에서 상당한 게임실력을 보이는 데 실제로는 어느 정도인가?
└ 잘 못한다. (웃음)

▲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그리고 게임하는 장면을 쳐다보면서 피아노 치는 연기가 많은데, 연기할 때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 처음에는 아예 건반을 보지 않고 핸드폰 화면만 보며 연주하는 설정이었는데,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누구나 연습하면 건반을 안 보고도 할 수 있지만, 클래식 곡들은 전혀 그럴 수가 없다. 조성진 피아니스트조차도 건반을 보고 연주하는 데 난생처음 피아노를 쳐본 난 건반만 봐도 못 따라갔다. (웃음)

이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감독님 앞에서 아예 화면만 보고 연주하는 것과 핸드폰 화면과 건반을 번갈아 보면서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드리며 후자가 더 낫지 않냐고 의견을 냈다. 결국, 내 의견이 반영되어 허용범위가 수정되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 ⓒ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의상과 소품에서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인가?
└ 기본적인 콘셉트는 진태는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옷을 사입기 전에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생각해보니까 진태 같은 복장이었던 것 같다. 샌들에 양말을 신고, 반바지 안에 셔츠를 집어넣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 설정으로 의상을 맞춰보는데, 대부분 새 옷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집에서 입던 옷 중에 진태가 입을 만한 걸 가져오라고 해서 집에서 찾아봤다. 내 옷 중엔 없었고, 아버지 방 장롱에 그런 옷들이 많아 몇 벌 가져와 입었다.

시선처리가 평소 연기와 다르다보니, 상대배우와 호흡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아니다, 오히려 편했다. (웃음)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지 않게 되니까 자연스레 산만해지고 진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유용했다. 눈을 마주치게 되면 상대방에 집중해야 하는데, 대강 상대방을 쳐다보더라도 초점이 흐트러지거나 살짝 비껴보면 산만해지게 된다. 그 덕분에 진태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문화 人]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염력'부터 '사냥의 시간'까지, 다작 감사해" ②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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