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면함 전시 전경 ⓒ 시청각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시청각에서 열리는 전시 '도면함'은 큐레이터들에게 전시 도면(floor plan)을 제안해 모아보자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2011년 초에 생각했던 이번 전시는 강문식, 박길종, 윤지, 박미나 & Sasa[44] 작가들에게 도면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을 전달하며 진행됐다.

 

"도면 전시에 관한 아이디어의 가제로 가지고 있던 제목 '1:1 다이어그램'은 최슬기 디자이너의 작업인 〈샤프 컬러TV 13 NM150〉에서 빌려온 것이다. 최슬기의 〈샤프 컬러 TV 13 NM-150는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와 디자이너가 제작한 텔레비전으로, 텔레비전은 자신에 관한 정보 외에 아무것도 상영하지 않는다. 2011년 (도면) 전시는 기획 초기 단계에서 끝나고 말았다. 전시장 도면을 모은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예산과 구체적인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도면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더 이상 사고할 이유가 없으며 실질적으로 과거 도면을 수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시기획자에게 도면은 여전히 흥미롭다. 이유를 추리하면 이렇다.

첫째, 건축가의 도면에 비해 전시기획자의 도면은 물리적 공간과 더불어 시간 개념 그리고 작가라는 '화자(speaker)'가 개입된다. 즉 여러 개의 목소리가 한데 들어와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작가든 죽은 작가든 간에 도면에 자리를 확보한 작가의 공간이 어떤 식으로 확정될 것인지 전시 오픈 이후가 되어서야 예측의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전시기획자에게 도면은 어느 정도 미지의 것이고 어정쩡한 것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행위 자체가 작가에게 있다고 해도 결국은 작가도 100% 확정 지을 수 없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대상에게 전이됨으로써 도면에 담긴 예측의 역할은 현장이 예상치를 넘어서는 순간, 유명무실한 것이 된다. 전시 기획 단계에서의 도면은 아무것도 없이 치워진 전시공간에 무엇인가 채워 넣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내용물을 채우는 일이 아닌 이상, 다시 원점(다음 전시를 위한 빈공간)으로 되돌려진다는 것을 전제한다. 여러 개의 목소리가 물처럼 한꺼번에 들어왔다가 다시 썰물처럼 나가버리는 것이다.

둘째, 이 유명무실함에서 살펴보면 도면은 매우 확정적이고 논리정연한 형태를 취한듯 보인다. 물리적으로 종이-도면이 갖고 있는 힘은 오늘날 종이를 쥘 일이 별로 없는 인간이 물질을 만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간이 있고 작품 제목이 있고 캡션이 있고 관람객의 동선이 제시되는 것이다. 즉 전시장에서의 도면(핸드아웃 또는리플렛)은 관람자들의 동선을 제안하고 예측하기 위한 것인데 이 역할 또한 반전된다. 공간에 들어온 관람자들은 제시된 도면을 손에 쥐기는 하지만 이 종이라는 물질의 강인함과 취약함이 동시에 작동한다.

셋째, 이제까지 전시 오픈 시점에서 도면의 과거와 현재를 말했다면 전시의 미래, 즉 전시가 끝난 이 후에 도면이 갖는 독특한 위치 또한 흥미롭다. 전시장 기록 사진이 부분적으로 전시된 작품과 그 설치를 기록해낸다면 도면은 유일하게 전체를 담아내는 부감의 기록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 몇 안되는 시선은 전시장 전체에 어떤 작품들이 놓여있었고 이것은 어떤 전시(전시의 시공간을 포함하여) 안에 있었는지 매우 사실적인 기록의 상태로 비약한다. 도면이 미래의 시간을 가진 것이니, 관람객은 이 도면을 배신하여 작품을 다 안 볼 수도 있고 동선의 순서를 거스를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 전의, 100년 전의 전시를 기록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은 도면이 맞다."

▲ 박미나 & Sasa[44], <Bolero>, 15’ 20”, 2003 ⓒ 시청각

'도면함' 전시에서 도면은 작가에게 '공간을 압축해서 보여주거나 제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전시를 아카이브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총체적인 전시의 양상은 인터뷰 상이나 이미지 안에서만 존재하고, 실물만이 현재에 도착해 남아있다.

박길종은 전시장에 필요한 기물을 만들거나 디자이너/건축가의 도면을 모아두는 도면 박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게 도면은 매우 구체적인 계획과 실현 가능성, 매뉴얼을 의미한다. 조각과 영상 작업을 하는 윤지영은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전시 전후를 앞둔 기록에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과거에 제작한 네 점의 작업들이 책과 조각의 물질적 경계를 넘어 자유로이 열어젖히고 관람하는 다른 도구(tool)가 된다는 것은 '지식 탐구' 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박미나 & Sasa[44] 작가의 경우 방대한 아카이브와 자료 축적을 일상화하는데, 이들에게 도면은 다음 단계의 선택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몇 번의 변환되는 형태이다. 강문식은 이번 전시에서 '도면함' 책자를 구성하고 전시 그래픽 작업을 하는 동시에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을 제작한다.

추억이나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예상하는 가능성의 물질로서 작가들의 도면은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전시장 도면은 한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를 만든다. 그러나 결국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은 없고, 하나씩 콕 찍어서 봐야만 한다는 것을, 적어도 전시 공간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알려준다.

▲ 윤지영, <제목(필요)없음>, 1000 × 1200 × 100 mm, 2017, 그림: 로버트 허치키스 톰슨 + 최영빈·윤지영 ⓒ 시청각

한편, '시청각(Audio Visual Pavilion)'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7-6번지에 위치한 디귿자 형태의 한옥 '전시장, 전시공간'이다. 작은 마당과 세 개의 방, 문간방, 부엌, 세탁실, 옥상으로 구성된 건물은 1947년에 지어진 이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시청각은 주거 공간으로서 한옥의 물리적 형태를 유지하며 현실과 분리되지 않은 예술 공간인 이곳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시각문화 안팎의 '현실 (Reality)'을 찾아내고 기록하며 만들어내고자 한다. 

2006년 창간된 독립 잡지 '워킹매거진(walking magazine)'의 멤버인 에디터 안인용과 큐레이터 현시원이 공동 운하는 시청각은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들어 나가고자 하며, 작가와 기획자의 자발적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시각문화의 한 형태를 만들고자 한다. 시청각은 오늘날 예술제도 안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어떤 다른 상황이 가능한가'하는 작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여기서 예술은 비단 미술 작가의 페인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음악, 퍼포먼스,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시공간의 예술을 의미한다. 디스플레이-설치-판매-소장-지원제도에 한정되지 않는, 야생적인 시도들을 작게나마 꾸려나가고자 한다. 

시청각의 또 다른 큰 비전은 이야기(텍스트, 대화, 종이 등)를 수집(Collection)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수집한다는 것은 시청각의 두 운영자에게 있어서 예술, 크게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과 상황들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시청각은 작고 큰, 여러 형태의 출간물을 지속적으로 발행한다. 2주에 한 번씩 4페이지 안팎의 '시청각 문서'를 인쇄물로 만들고 동시에 웹사이트 '시청각(audiovisualpavilion.org)'에 저장한다. '시청각 문서'를 묶은 책을 비롯해 전시, 프로젝트와 연계한 책 '시청각 도서'를 발간한다. 또한, 시청각과 관련한 예술가들을 인터뷰하고 대담 을 진행하는 일 역시 꾸준히 진행한다. 

▲ 박미나 & Sasa[44], <전시 자료 2003–2014>, 2017 ⓒ 시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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