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틀빅픽쳐스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지난 6월에 개봉했던 영화 '박열'은 이제훈의 연기인생 전환점이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박열'을 통해 이준익 감독의 능력과 여주인공 최희서를 비롯한 출연배우들의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누적관객 230만 명 이상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이제훈의 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박열'에서 이제훈은 홀로 빛났던 과거와 달리, 동료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능력까지 갖추며 한 단계 성장했다.

그 능력은 지난 21일에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드러났다.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파트너인 나문희와 최고의 호흡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 개봉하기 훨씬 앞선 9월 초, 서울 중구 삼청동 어느 한 카페에서 필자는 이제훈을 만났다. '박열' 이후, 두번째 만남이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이제훈은 여유가 생김과 동시에, 한 층 더 성숙해보였다.  

지난 6월 '박열' 인터뷰 당시, '박열' 때문에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했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 이유를 알려달라.
└ 배우로서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희로애락을 전해주고 싶었다.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가치나 앞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 영화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아이 캔 스피크'를 선택할 때, 아무런 정보 없이 대본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옥분'과 '민재'의 따뜻한 소소한 코미디와 티격태격하면서 영어를 배우고 옥분의 헤어졌던 동생을 만나는 훈훈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의 깊은 사연이 공개되면서 굉장히 놀랐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연 이 영화가 상업영화로서 대중에게 잘 전달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으나, 다행히 김현석 감독님과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이 있어 용기 낼 수 있었다. 또한, '박열'을 찍으면서 익힌 경험을 토대로 배우로서 뭔가 책임을 져야 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컸다.

▲ ⓒ 리틀빅픽쳐스

망설인 부분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가슴 아프고 오랜 세월을 겪어온 고통을 정공법으로 돌파하면서 찍었다. 이에 반해, '아이 캔 스피크'는 따뜻한 시각에서 우회적으로 풀어냈기에 어떤 자세로 취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김현석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며 뭔가 믿음이 생겼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할 때, 단순한 재미를 넘어, 남겨진 분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나문희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같이 연기 해보니까 어떤 느낌이었나?
└ 나의 조부모님이나 외조무보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나, 혹은 사는 곳이 멀어 명절 때 아니면 따로 왕래했던 기회가 적어, 살가운 기억이 많이 없었다. 처음에는 긴장된 마음으로 어떻게 감히 내가 대사를 던지고 선생님의 대사를 받아칠까 고민했다.

하지만 선생님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마치 친할머니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고, 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막내아들이나 손주 같은 시선으로 아껴주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셔서 녹아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선생님과 연기한다고 느끼기보단, 선생님과 같이 보내는 시간 자체가 마냥 좋았다.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대선배와 함께 하기에, NG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 의상을 정하고 선생님과 단둘이, 혹은 감독님과 셋이서 같이 대본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시는 모습이 뭔가 어른들에게 꾸중 들어야 할 것 같고 움츠리고 조심스러워야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게 없었다. 촬영 끝날 때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잘한다고 격려해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촬영 때 분위기가 자유롭고 편했다. 테이크가 많이 갈 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촬영에 임하지 않았나 싶었다. 영어 가르치는 장면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표현을 이끌었다면, 다른 장면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게 많았다.

별도로 준비해야지 했던 건 없었다. 선생님과 함께 시사회 인사를 통해 같이 돌아다닐 생각에 기대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에 선생님께서 힘드시지 않을까 조금 걱정된다.

촬영장에서도 나문희가 항상 곁에 있었다는데?
└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봐주신다. (웃음) 보통 연기하는 데 있어 합을 맞출 때, 의견을 내면서 상대방은 어떻게 할까 봐 예상을 하며 의견 조율하거나 리허설에 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선생님 연기 하나하나가 일상 같았기에, 선생님의 연기를 받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나오더라.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보통 연기하는 모습과 일상의 모습 간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그게 없었다. 덕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이 순간순간 느끼시는 감정들이 소녀 같았다.

또한, 리허설 혹은 촬영 후 휴식시간 가질 때나, 선생님과 도란도란 시간을 보냈다. 어떤 때는 나나 스태프들에게 자양강장제나 간식도 주기도 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선생님이 참 정이 많으시다는 걸 느꼈다.

이번 영화에서 나문희의 영어대사가 꽤나 많았던데?
└ 내가 생각하기에 옥분은 영어에 무지해야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의 영어 대사가 상당히 자연스러우셨다. 후반에 긴 대사를 내가 경험했기에 부담감 있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내가 놀랄 정도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셨다.

선생님이 성우 생활 시절, 외화 더빙도 하셨던 경험도 있으셔서 감이 있으셨다. 또한, 선생님 남편분도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시고, 따님들도 미국에 거주 중이어서 영어로 소통하는 데 있어 낯설어하시거나 하는 게 전혀 없으셨다.

▲ ⓒ 리틀빅픽쳐스

'박열'에서는 일본어를 배운다고 고생한 걸로 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영어가 많이 나오더라. 힘들었던 건 없었는지?
└ 하나도 모르는 일어에 비해, 영어는 읽을 수 있기에 나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인처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는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박열' 촬영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본어 배웠던 경험이, 이번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영어 대사를 하는 내내 뉘앙스나 단어 악센트 등 최대한 귀 기울이며 지도받았다.

극 중에 나왔던 토익점수가 엄청 높았는데, 실제로 시험 본 적이 있나? (웃음)
└ 대학교 1학년 때 봤지만, 극 중에서만큼은 나오지 않았다. (웃음)

▲ ⓒ 리틀빅픽쳐스

지난 번 인터뷰 당시, '노잼' 이미지에 고민을 했었던 게 기억난다. 최근에 출연했던 '삼시세끼'나 이번 영화를 봤을 때, 그 문제를 극복한 것 같은데? (웃음)
└ 많은 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있어 이야기를 건네야 말문이 터졌다면, 지금은 낯선 이들과 있어도 내가 먼저 말을 많이 걸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영화를 찍어나가면서 스태프들과 많은 소통을 하게 되면서 변한 것이다. 그 전에는 그저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넓은 시각으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스킨십을 통해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면서 나 자신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이게 나의 연기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 人]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박열',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님께 감사해"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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