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2017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으레 쓰는 공연계 상반기 결산 기사이지만, 올해 상반기는 다뤄야 할 이슈가 비교적 많았다. 연극계의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면 '반권위'라는 단어가 단연 먼저 떠오른다. 연극계에는 젊은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비교적 거칠고 소리 높게 울리고 있었다. 또한 전통과 권력, 그리고 관습에 맞서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어 연극계 전반에서 성찰적 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연극계의 역동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사태 및 작품들을 세 갈래로 나눠 다루고자 한다. 각각의 키워드는 '크라우드 펀딩', '페미니즘', '젊은 연극인들의 외침'이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 공연 장면 ⓒ 문화뉴스 DB

'크라우드 펀딩'의 활성화 

'크라우드 펀딩'이란 대중(crowd)에게 자금을 모으는(funding) 방식을 말한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서 언급되곤 했던 이 시스템이, 올해 상반기에는 연극인들의 제작비 충당 방안으로 주목받는 플랫폼이 됐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비를 메우는 사례는 꽤 있어 왔지만,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단체가 눈에 띠게 증가한 이유로는, ▲공적 지원 제도 규모가 다양한 창작집단의 공연 제작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표출된 공적 지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 등이 주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연극계 한 관계자는 '순수예술로서의 연극을 지향하는 영세한 창작집단들의 특성과 크라우드 펀딩이란 제도의 플랫폼 형식이 잘 맞아떨어졌'기에 크라우드 펀딩의 활성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크라우드 펀딩은 해당 공연에 관심 있는 잠재적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공연 제작비에 일조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홍보 수단이 되고 있다. 또한 펀딩 참여자들과 창작집단이 별도의 티켓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예매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군 의문사 피해 유족과 함께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기획한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목표금액의 약 91%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 지난 5월 중순 공연을 올린 바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에 맞서고자 진행됐던 '2016 권리장전_검열각하'는 공적 지원금을 거부하며 펀딩을 통해 목표 금액 이상의 제작비를 확보한 바 있다. 올해도 텀블벅을 통해 '권리장전2017_국가본색'으로 펀딩을 진행하는 중이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는 매년 연출자와 극단을 초청하며 '세월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중, 올해는 '세월호2017'을 텀블벅으로 공연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달 20일 사전 논의 없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예술후원센터' 명의로 지급된 후원 금액을 거부하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먹쥐고 치삼', '연극의 3요소', '코인라커', '아주 친절한(페미니즘) 연극', '바보햄릿' 등 다양한 작품 및 프로젝트가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며 공적 지원 제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지지하는 예술 작품의 제작을 위해 수용자들이 소액일 지라도 직접 투자할 수 있는 방식이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스템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예술과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로 생긴 공적 지원금이 이들을 소외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페미리볼버' 작가 겸 연출가 김슬기 ⓒ 문화뉴스 DB

여성 연극인들의 목소리 담아낸 페미니즘 연극

지난 해 하반기부터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연극들이 하나 둘 공연되기 시작하고, 올해 상반기에는 문제작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작품들이 '페미니즘 연극'으로 공연됐다. 

특히 지난 5월 서계동 국립극단 마당에서 야외 게릴라 공연을 선보였던 '페미리볼버'는 '연극계가 남성 중심 서사에 사로잡혀 권위적이고 마초적인 분위기에 지배당하고 있다'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공연 당일, 공연 팀과 국립극단 직원들 간의 언쟁으로 인해 다소 공연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공연은 무사히 끝났고, 이후에는 재연 무대가 이어졌으며, 관객들이 저마다의 날카로운 후기를 내놓는 현상으로 이어져 다양한 관객의 적극적인 피드백을 이끌어내는 공연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2월에는 '아주 친절한 (페미니즘) 연극', 3월에는 '페미수제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4월에는 '가해자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가 공연됐다. 또한 지난해 '페미그라운드-여기도 저기도 히익 거기도?'를 공연한 바 있는 남산예술센터는 공공극장 최초로 참여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됐던 '연극인 2030 모임' ⓒ 연극인 2030 모임

젊은 연극인들의 문제제기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정부의 각종 지원제도가 연극인들을 '검열'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이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발견되기까지. 연극인들은 지난해부터 문화예술계 적폐에 대항하거나 혹은 청산을 목표로 하며 '2016권리장전_검열각하',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블랙텐트', '검열백서'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일반의 논리'와 '관습'을 앞세워 공공연히 자행돼 온 문화예술계 적폐들. 이것을 청산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연극계가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는 자성적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지난 5월 '젊은 극작가들의 창작 환경과 공공극장의 역할 - 국립극단 '작가의 방' 사태를 넘어서'라는 토론회가 개최됐다. 지난해 진행된 국립극단 자체 창작극 개발 사업 '작가의 방'에 참여했던 젊은 작가들과 고연옥 작가의 문제제기를 통해 현재 연극계가 젊은 극작가가 도구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근본적 의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연극계 이슈들은 세대 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젊은 예술가들의 주체적 입장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며 송경화, 정진새, 전윤환의 주도로 '연극인 2030 모임'이 첫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젊은 예술가들은 연극계의 한축을 담당하는 일원이 아니라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불평불만, 자기 문제제기, 자기 존재증명을 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후 6월 모임은 연극계 내 불편한 마음들을 공론화시키는 동시에 '자기반성'을 더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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