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향력은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역사 문제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정반대다.

 

유럽에서 일본과 관련한 불편한 상황을 맞이하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의 뉴스에서 한류열풍을 언급하며 이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소개했지만, 내가 유럽 곳곳에서 직접 느낀 한국의 영향력은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문화적인 영향력은 커진 것이 분명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충분히 커졌느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의 명칭에 대한 분쟁이 있다.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 사이의 논쟁이다. 일본 측은 후자가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된 이름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명칭은 1929년 국제수로기구 『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계기로 굳어졌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국권을 피탈 당한 상태였고, 한국 측의 견해는 고려되지 않았다.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에서 일본관은 한국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그곳에서 나눠주고 있던 유인물을 보게 되었다. “Sea of Japan“. 유인물에 있던 지도에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의 이름이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본에서 제작된 거니까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국 측의 주장이었던 두 개의 이름 병기는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게 슬펐다.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뒤 라멘식당 ’Shibuya Berlin’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욱일기. 손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에서 나치 제국주의의 역사는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일본 침략주의의 역사를 알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식당에 나치 깃발이 걸려있었다면 그 손님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2023년 3월 8일은 국제여성의 날이었다. 그 다음 날, 헤센 카셀 주립대에 설치되었던 위안부 소녀상이 기습 철거되었다. 2022년 7월 8일 카셀대 총학생회의 주도로 설치된 이 소녀상은, 지속적인 철거 압박을 받아왔다. 설치 3일 만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가 총장을 직접 만나 철거를 요구했다. ‘소녀상이 반일감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역사문제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정반대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 희생자의 정보를 유럽 곳곳에 있는 보도블록에 새기는 프로젝트가 시민사회 주도로 추진될 정도로 역사를 기억하는 분위기가 강한 반면, 이번 소녀상 철거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일본 정부는 역사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반인권의 역사를 직면하고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직도 필요한 이유다.

 

참고

Lee, J. (2023, March 21). "‘동해-일본해 병기’ 30년 외쳐온 우리가 먼저 실천할 때 됐죠" [It's time for us to act first after shouting about 'East Sea-Japan Sea arms' for 30 years]. Hankyoreh.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55349.html

 

한겨레. (2023, 3월 12일). 독일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철거...일 정부는 집요했다. 한겨레.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83235.html#ace04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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