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송어', '박하사탕', '공공의 적', '오아시스', '광복절 특사', '실미도' 등 이 배우의 대표 작품을 꼽자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자, 검증된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였다. 관객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가 나오는 영화라면 무조건 보러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작품마다 연기 혼을 불태우며 애쓰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대중들로부터 '부진을 겪고 있다', '작품에서 동떨어져 있다'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한 물 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설경구 연기 인생의 최대 위기가 온 것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한 물 갔다'는 설경구는 부활의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7일에 개봉 예정인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에서 설경구는 예전에 강렬했던 연기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연기에 굶주려있다. 새 영화 '불한당', 그리고 설경구라는 배우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보려 한다.

영화 '불한당'을 언론 시사회 때 관람한 후, 소감은 말해달라.
└ 언론시사회 때 보면서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한테 "왜 이렇게 어색해?" 한마디 했다. 그 말에 감독님이 매우 당황해하더라.

의외의 대답이다.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모습이 이상했다는 것인지?
└ 영화를 처음 보게 되면 내가 연기하는 모습만 보게 됐는데, 영화 속에서 비친 내 모습이 영화를 못 즐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즐길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내 모습만 집중해서 보다 보니 영화에 섞인 나를 제대로 못 봐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완벽해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불한당'을 보면 느와르·액션 장르임에도 브로맨스가 먼저 떠오를 만큼, 인물의 감정선이 상당히 부각되어 기존에 봐왔던 다른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어 보였다. 직접 볼 때 어떠했는지?
└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촬영에 임했었는데, 그렇게 봐주었다니 다행이다.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불한당'이 기시감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이었고, '불한당'이 크랭크인 들어갈 당시, 지난 3월에 개봉했던 '프리즌'과 공교롭게 크랭크인 시기마저 비슷해 이야기 흐름이 비록 '프리즌'과 다를지라도, 설정이나 도입부가 '프리즌'과 비슷하니까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 감독님에게 물어보았다. 감독님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중에 기자회견 때 감독님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멜로영화처럼 찍었다"라고 발언했는데,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이 완료되고 기자회견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 이야기를 촬영 도중이나 첫 만남에서 들었다면, '불한당'을 찍는 동안 나 스스로 헷갈렸을 것이고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 다시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 '불한당'을 어떤 영화라고 들었는가?
└ '불한당'은 감정에 매달리는 영화라고 언급했을 뿐, 거친 숨소리와 남자들만의 폭력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야기 결은 기존 비슷한 장르의 영화와 다르고, 나는 이 영화에 스타일을 낸다면서 촬영하는 내내 '나는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고 크게 자신하더라.

 

사실 말로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못 찍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에, 감독님의 말을 들으면서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 전에 감독님의 전작('나의 P.S 파트너') 또한 알고 있었기에, '이 사람이 전작과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여태껏 시도하지 않은 장르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지?' 하는 의구심은 있었다.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모험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감독님은 촬영현장 이외 술자리 등에서도 계속 자신감 넘치게 말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사탕발림처럼 남 듣기 좋으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친해지고 보니 감독님이 마음이 없는 소리를 잘 못 하는 타입이었다.

'스타일을 낼 것이다'라는 감독님의 의도가 정확하게 '불한당'에 반영되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때깔이 묻어나오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 촬영, 조명, 미술, 연출 등 모든 부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평범하지 않은 색깔을 많이 넣었고. 콘티 작업부터 크게 정성을 들였다. 콘티만 봐도 재밌는 영화였다. 한 컷마다 쉽게 그려내지 않은 영화다.

'재호'라는 역할을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
└ '재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남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복잡한 것처럼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단순하게 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느꼈다.

 

극 중에서 '재호'에 대해 "작업할 때, 직접 눈을 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독한 놈"이라고 설명했는데, 정작 '재호'에게서 독함보다는 따뜻함이 더 많이 묻어났다. 그래서 영화가 설정한 '독함'이 기대치만큼 올라가지 못한 것 같다.
└ '작업할 때, 직접 눈을 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독한 놈'이라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재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간략하게 알려주는 것일 뿐이다. 직접 '현수'의 엄마를 자기 손으로 제거한 것, 그리고 허준호 형한테 악랄하게 했던 행동도 그 인물의 설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현수'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에 의심을 하며 미리 뒷조사해서 '현수'의 정체를 알게 된 것도 '재호'에 대한 인물 설명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도 '재호'는 '현수'가 자신의 눈앞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영화는 '재호'의 흔들림을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재호'의 내면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재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믿을 것 같다는 설정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도 감독님에게 "'재호'가 '현수'에게 가는 게 스스로 죽으러 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냐"라고 감독님께 먼저 물어본 뒤에 연기에 임했다. 거기서마저도 '현수'를 제거하지 못하고 지키는 역할이 되었다.

그동안 최근 출연했던 작품들에서 배우 설경구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불한당'을 통해 '설경구가 다시 깨어났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동안 나 스스로가 나의 연기에 대해 실망했던 부분들이 많았었고, 연기를 너무 쉽게 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연기했다간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보면 치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나 자신의 문제다. 그래서 나의 연기에 대해 창피했고 부끄럽게 느껴져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흥행 실패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의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지인들이 필터링 없이 내 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계속 듣다 보니 전율이 올라오면서 듣기 싫었다. 나도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알고 있는데, 그들한테서 들으니까 괜히 듣기 싫었다.

 

그런 감정을 느꼈던 와중에 좀 더 치열하게 다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시점에서 '불한당'을 만났다. 나는 감독님과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다 나 스스로 혹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 몸을 혹사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분명히 느꼈던 건, '불한당'을 하면서 최소한 창피하진 않겠다고 느꼈다. '불한당'을 통해 조금이나마 극복했다.

본인 스스로 연기력에 부진을 느꼈던 것이 슬럼프 때문인가, 아니면 매너리즘 때문인가?
└ 확실하게 무엇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들다. 어느 순간부터 작품과 인물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쉽게 연기했고, 너무나 쉽게 고민했다. 그렇게 쉽게 임하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했던 지점이 찾아왔다.

[문화 人] '불한당' 설경구 "연기력 방점 찍으면, 배우 은퇴하겠다" ②로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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