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서 연극배우로 전환하다

지공연 협동조합을 이끄는 수장

그녀, 가을빛처럼 깊은 연기가 짙어간다

스치듯 한 번 봤는데도 다음에 만나면 곧장 그 사람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봤는데도 마치 처음 본 것처럼 그 사람을 몰라보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나다. 난 약간의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실례를 범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권남희 배우다. 몇 번을 마주친 적도 있고 심지어 그의 연극도 봤는데 만날 때마다 처음 본 사람처럼 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 후, 미안한 마음에 대학로에서 만나게 되면 눈에 힘을 주며 기억하고자 애썼다. 지금은 내 머릿속에 참 좋은 배우로 각인이 되어 있다. 물론 멀리서 딱 봐도 이제 안다.

오늘은 권남희 배우의 연극적인 삶과 그 이면의 궤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번 제5회 <일번출구연극제>에서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셨는데 참여한 작품 이야기와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극단 주다의 이소금 작 이원민 연출의 <초속 5cm>라는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이른바 모태 솔로 여주인공 복자의 데이트 신청을 둘러싼 가족들의 한바탕 소동극이라고 할까요. 요즘 드문 삼대가 모여 사는 집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함께 사는 외할머니 역이었습니다. 물론 복자는 집안의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하느라 직장 생활 등으로 따로 살고 있긴 하지만 할머니와의 유대감, 소통 등에 있어서 가족 그 누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열한 살 연하의 남자가 뭐가 모자라서 복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까. 데이트 신청 남자의 속마음을 둘러싸고 가족 간에 갑론을박을 하는 사이, 결국 딱지 맞고 들어와 그동안 쌓인 무게감과 설움에 한바탕 울음을 쏟아 내는 복자. 할머니는 복자에게 전혀 쪽 팔리지 않는다고, 쪽이 팔린다는 건 적어도 팔 쪽이 있다는 게 아니냐며 위로해 줍니다. 줄거리는 대략 그렇고, 나는 이 작품에서 사실 조연 역할이기도 하고 무대에 등장해 있는 것에 비해 대사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기상을 수상하게 되니 좀 뜻밖이었습니다. 아마도 무대 위에서 잘 버텨주고 손녀의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 주며 인생의 경험이 녹아 있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역할이라 높이 평가해주셔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참가한 이 작품을 통해 젊은 배우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얻었고 연기상까지 받게 되어 행복이 두 배였습니다.

사진제공-한국스마트협동조합 박치치 
사진제공-한국스마트협동조합 박치치 

누구에게나 시작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연극의 시작, 언제부터인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을 처음 봤습니다. 부산의 레파토리시스템이란 극단의 창단 공연이었는데, <출발> <너도 먹고 물러가라>라는 두 작품을 연속으로 보고 연극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가를 느끼며, 그해 겨울 그 극단의 <유리동물원>도 보면서 기회가 닿으면 공연을 보고자 맘먹었습니다. 그 당시 교복을 입고 성인들 사이에서 연극을 보는 묘한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선배, 동기랑 세 명이서 사범대학 극회를 만들고 졸업 후 각자 교직 생활을 하다 극단과 소극장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기획, 극작, 연출 등을 하다가 어느 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처음 무대에 선 것이 황석영의 <한씨연대기>에서 한혜자 역이었습니다. 아직도 한혜자의 독백 첫 대사 ‘오늘 아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가 생생합니다. 그때 고등학교 때 입던 교복을 의상으로 입었습니다. 재미로 보기 시작했던 연극이 자연스럽게 극회를 만들고 극단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하면서 연극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부산 지역의 극단 작업이 창작극 위주여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 먼저 알게 되고 깨닫게 된 얘기를 연극을 통해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연극_원맨쇼

연극배우 이전에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하셨는데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교직에 있을 때 나름 학생들과는 수업을 재미있게 한 것 같습니다. 문예반 학생들과 야유회 간 일, 연극반을 만들어 교내 발표를 한 일, 시 수업 시엔 밤나무가 많았던 모 여고 뒷산에 올라가 야외 수업을 했던 일 등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종이뱅기>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했는데 반응이 좋아, 당시 PSB 개국 기념 방송의 일환으로 <뛰는 여성이 아름답다>라는 아침 프로에서 나를 취재하러 공연 준비 중인 극장, 수업하는 학교, 집까지 찾아온 기억이 새롭습니다. 여고생들에겐 방송국에서 와서 선생님을 취재해 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구경거리 화제였었구요. 사실 그 후, 담석증으로 수술도 하고 집에서 쉬기도 하면서 인생의 전환이 되는 어떤 결정의 시초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더하여 오랜만에 담임을 맡았던 학급의 학생을 무기정학 처리를 하려고 학교측이 담임 의견서에 사인을 하라고 하는 걸 난 그대로 가방을 싸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하지 않았고 곧이어 온 겨울 방학, 방학을 끝내고 담임을 맡은 학급의 업무 처리를 끝낸 뒤, 학생들을 2학년으로 올려 보내고는 사표를 썼습니다. 학교에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제시했던 사표 관련 에피소드는 다른 기회가 있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공연 협동조합에서 올린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공연을 봤습니다 그 연극 관련 이야기 좀 해주세요

지공연의 다섯 번째 공연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올해 5월 11일부터 5월 29일까지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총 17회 공연 하면서 거의 매진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출연한 배우만 총 23명, 연출 그리고 사진까지 모두 25명의 지공연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이루어낸 성과였습니다(물론 조연출을 비롯 기획, 무대, 조명 등 외부 스탭과의 작업이기도 했지만 지공연 내의 참여자 수를 보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앵콜 및 연장 공연의 요청도 있었지만 차후 기회를 가져 보기로 하며 박수칠 때 떠났다라고나 할까요. 암전 한번 없었던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 자체가 갖는 탄탄한 스토리도 물론 한 몫 했겠지만 40대 이상이 가입 가능한 지공연의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그리고 연출, 무대 등 모든 게 잘 어우러진 결과였다고 봅니다. 개인적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있겠지만 혹자는 지금까지의 지공연 작품 중 가장 좋았다고도 하고, 여하튼 지공연 협동조합을 자리매김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공연이었다고 봅니다.

연극_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사진제공-한국스마트협동조합 박치치 
연극_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지공연의 설립 취지나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지공연 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한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의 줄임말입니다. 2017년에 창립하여 2018년에 협동조합으로 정식 등기되었습니다. 40대 이상의 이른바 중견 배우들이나 연극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스스로 설 수 있는 무대를 협력하여 만들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창립되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공연을 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조합원 각자가 공동제작자의 마음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제작 여건을 만들어 가려 한 바, 이제 초기 조합원들의 약 3배수에 해당하는 67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단체로 성장하였고, 8개 팀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던 창립 공연 원맨쇼 (박장렬 작/연출) 2인극을 시작으로, 고향마을 (신성우 작/ 최철 연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정범철 작/연출), 반성문 살인 기억 (김환일 작/ 장봉태 연출)을 거쳐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하타사와 세이고 작/정범철 연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애초의 취지대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지속적으로 공연해 가기 위한 바램은 늘 가지고 있는 바 더욱 그 목표를 향한 준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임을 늘 자극받고 다짐합니다.

한 작품을 올리려면 수많은 연습의 시간과 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연습 과정이 모두 순탄한 것만은 아니죠 혹시 연습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어느 한 해에 네 편인가 작품을 하였는데 한 공연을 제외하고 다른 세 편에선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하고 곰곰이 들여다보니 (물론 그 한 편은 결속력도 좋고 구심적 역할도 좋았으며 분위기가 좋았어요) 어떤 사소한 것들의 작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런 어떤 상호 작용에 의한 갈등들이 당연히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견해나 해석의 차이, 태도의 문제 등도 물론 있겠지요.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습니다. 최근에 강하게 와 닿은 표현이 있는데, 화(분노)의 자가증폭! 가능하면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 감정을 다스리면서 기분 좋게 작업을 하려 합니다. 나를 바꾸고 변화시키는 게 어쩌면 더욱 효과적이니까요.

연극_나는 아니다
연극_나는 아니다

다양한 작품을 해오셨는데 혹시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외국에서 9년여 살면서 무엇보다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닿으면 학생들의 단편영화, 저예산영화, 개런티 보장이 없는 연극 등 사실 가리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그때 선생님 혹은 선배님들께서 조언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무 작품, 아무 역할 하지 말라고, 가려서 하라고.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너무나 연기가 하고 싶어서 왔는데, 기회가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너무나 감사한데, 내가 그걸 가려가면서 할 정도의 깜냥이나 되겠나 했었던. 어떤 건 상처였을 수도 어떤 건 시간 낭비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형성하였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궁금합니다, 내게 작품을 고르는 뚜렷한 기준이 있게 되어, 어느 한 해 그 기준에 맞는 작품이 한 작품도 없게 되더라도 내 선택, 내 판단에 만족해하는 그런 어떤 날이 내게 과연 오게 될 지가......

배역이 크든 작든 각각의 소중한 인생이 녹아 있기에 

그 모든 것들이 다 애착이 가죠

여러 번의 인생을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죠

그동안 참여한 작품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말씀해주세요

영화로는 <고스톱 살인> 드라마로는 <안단테>가 있습니다. <고스톱 살인>은 최초로 주인공(급) 역할을 하게 된 장편영화라는 의미도 있지만 캐릭터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도 최 여사는 팜므파탈, 무조건 예뻐야 한다며 의상, 분장 팀에 특별히 얘기해 주셨고 나또한 의상, 분장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2014년 개봉 당시 극장을 찾은 적은 관객 수에 처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후 IPTV 등을 통해 꽤 많은 분들이 보신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됩니다.

드라마 <안단테>는 작가와도 소통하면서 캐릭터(고등학교 교감 역할) 창출에 신경을 쓴 작품인데 주인공 (고등학교 학생들)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애초에 설정하였던 것만큼 상황이나 대사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16부작 드라마에 한 회 빼고 매번 나오면서 나름 기대를 했지만 이 역시 주말 오전 시간에 편성되면서 시청률이 그다지 좋지 않아 안타까웠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연극...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말한다는 게 좀 어렵습니다. 다들 그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고 삶이 깊게 녹아 있어서요. 그래도 굳이 언급을 한다면 좀 많긴 하지만 대략 이렇습니다. 비엔나에서 직접 기획 제작하게 되었던 <사라치> 지공연 창립 공연인 <원맨쇼> 단원이기도 한 연극집단 반의 <이혈> <이등병의 엄마> 2012년 처음 참여하게 되면서 연극계의 많은 선후배 선생님들을 알게 되고 작년까지 하게 된 <레미제라블> 그리고 지공연에서 한 <불편한 너와의 사정거리>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모두 애정과 애착이 가는 작품들입니다.

연극은 공동 작업이라 여러 사람들과 늘 함께 하게 되는데 혹시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있나요

알고 있는 한 분이 말씀하시길 사람에겐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그 사람만의 장점, 그걸 중심으로 사람들을 대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안 예쁜 사람이 없다고... 난 사실 그게 가능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분이 젊은 친구들의 세세한 개인사까지 관심을 가지시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 내겐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내게 부족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껏 예의적이고 형식적인 인사 주고받기가 끝나면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던 나의 대화법. 물론 그건 예쁜 사람, 미운 사람을 구분해서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자기 안에 갇혀 있었던 내 사고 방식, 혹은 내 표현법의 한계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능하면 미워하기보다 예뻐하기, 난 칭찬에도 참 인색했던 것 같은데 가능하면 칭찬도 많이 해주려고요.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주변에 대해 편해져 가고 내 연기 또한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더 좋은 공연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의 연기의 한계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생각하면 끔찍한 공연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작품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내 연기의 끔찍한 순간들이 기억나서입니다. 입술은 바싹 말라 타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대사가 꼬이고 애써 당황한 모습 보이려 하지 않았지만 그 애씀이 당연히 객석에 전달되었을 터이고 커튼콜 때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의 공연을 한 적이 기억납니다. 그때 보러 온 연극인, 지인들의 면면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고... 예전엔 평소에도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무대 위에도 옮겨 와 힘들게 하던 시절, 얼굴도 잘 붉어졌고... 연기자가 되기엔 부족한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상생활에서의 긴장감들이 조금씩 걷어내어지면서 연기도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아직도 배우로서 부족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내 속의 것들을 걷어내고 맡은 인물 속에서 말하고 호흡하고 상대방과 교감하는 것이 훨씬 쉬워져 가는 걸 보니 이제 연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잘해야죠. 내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여름은 간데없고 어느새 가을이 왔다. 가을은 그 어느 계절보다 풍성하다. 먹을 것도 많고 감성도 높아지고 생각도 깊어진다. 권남희 배우는 가을을 닮은 듯하다. 봄과 여름의 땀과 피가 가을의 곡식을 선사하듯 그녀가 여태 보낸 시간과 열정이 곧 자기만의 가을을 만들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그녀가 손을 흔들며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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