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이바노프를 사랑한 두 여자. 주유랑 김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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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건달이자 몰락 지주인 주인공이 병든 아내 몰래 친구 딸과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

바로 러시아의 천재작가 안톤 체홉의 숨겨진 4대 막장중의 하나, <잉여인간 이바노프>의 줄거리다.이 작품은 1887년, 체홉의 나이 27세에 한 극장장의 의뢰로 단 열흘 만에 완성한 희곡이다. 당시 체홉은 공연이 자기 작품 같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연극은 大성공을 거둔다. 작가는 작품을 전면 수정하여 2년 후 재공연 되었는데 이 역시 대성공을 거둔다.

세계적 거장의 막장 of 막장의 주인공 이바노프. 한때 그도 뜨거웠던 남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말라비틀어진 썩은 고목과 같은 모습이다. 러시아 크림반도 지역의 부유한 유태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안나는 과거 열정남이었던 이바노프와 결혼하기 위해 부모, 종교 (그 시대 종교를 버린다는 것은…) 모두를 버리고 시집을 왔건만, 결혼생활은 채 5년이 못 돼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바노프의 손길과 행복했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삶의 공허함이 온몸을 지배한 이바노프는 설명 못 할 끌림에 매일 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친구의 딸 샤샤를 만나러 마차에 오른다. 어릴 적부터 이바노프를 봐오면서 자란 샤샤는, 역시 과거 이바노프의 영광을 기억하며 오춘기에 빠진 그를 자신이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배우 주유랑-김샛별 

거장의 유치한 멜로드라마인 이 작품은 <잉여인간 이바노프>가 아니라, 사실 <나쁜남자 이바노프>로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이바노프는 어떻게 안나-샤샤를 홀렸을까. 두 여자는 왜 이바노프를 좋아했을까. 작품에서 타임머신을 100년 뒤로 돌려, 2015년 안나와 샤샤가 된 두 여배우 주유랑(이하 안나) 김샛별(이하 샤샤)의 심정은 어떘을까. 

고생이 많으셨다. 특히 고독한 안나. 

ㄴ 모두 : (웃음)

ㄴ 안 : 아직도 멀었지만, 공연 초반까지 정말 힘들었다. 연습 합류가 조금 늦었다. 이제 조금 감이 온다. 안나의 역할 자체가 대사처럼 우주에 동떨어진 외계인과 같아서 힘들었다. 그만큼 더 집중을 해야 했다. 체력적으로 보면 다른 연극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체홉의 작품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고 테크닉을 발휘할 수 없다. 대사를. (샤 : 오 역시 선배님)

반면 자유분방한 샤샤는 갇혀있는 느낌이 없었을 텐데

ㄴ 샤 : 음 사실 내가 힘들었던 건, 내가 생각한 샤샤의 외모였다. 원래 나이보다 더 어려보여야 하는 강박관념. 그래서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나 어려보이려면 어떻게 해?" 그리고 성격은 비슷하지마는 남자를 실제로 대하는 태도는 실제 나랑은 다르다.

작품 <잉여인간 이바노프>의 매력을 짚어보자!

ㄴ 안 : 작품적으로는 현대를 살고 있는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 그게 고전이기 하지만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라서 관객들이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측은한 감정이 생기면서 '나도 저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다들 꿈이 너무 컸는데, 정작 현실에서 괴리감을 느끼듯이.

이나노프와 샤샤는 왜 1년 만에 사랑이 식었을까?

ㄴ 안 : 이바노프가 말했듯이 꿈이 컸는데 그게 식으면서 밀려오는 허무감. 우울함이 밀려온 거다.

결혼은?

안: 저는 애가 둘….(문화뉴스 : 저희는 미혼입니다)

샤 : 저도 미혼입니다! (웃음)

안나 역을 맡은 주유랑 배우는 1994년에 데뷔했다. 전에도 비슷한 작품이 있었나?

ㄴ 안 : 글쎄, 날 오랫동안 보신 전훈 연출님이 한번은 내게 "이렇게 작품이 몰입하지 못한 것을 처음 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샤 : 맞아요 진짜!) 실제로 전훈 연출은 그 이후 내가 아주 구체적으로 안나를 상상할 수 있도록 야단을 많이쳤다. 

   
 

인물에 몰입하기 힘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나라는 역이 소화하기 힘들었다는 의미인지

ㄴ 안 : 안나는 전형적인 여자들의 모습이다. 남편을 기다리고 내조하고 희생하고. 내가 갖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다는 아니겠지만, 강한 면이 있다. 처음에는 이 역할에 대해 제의를 받았을 때 그 땐 싫다고 했다. 슬픈 역을 하는 것이 힘들어서…석달 동안 우울해야 하니까. 하지만, 공연을 보니까 너무 매력이 있어서 맡게 됐다. 체홉이 표현하고자 하는 안나의 정서를 내가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완벽한 연기는 없으니까.

샤샤가 생각하는 이바노프의 매력은?

ㄴ 샤 : 왜 좋아했을까 생각을 해봤다. 지방자치회 의장인 아버지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늘 어머님께 쪼여 살고. 그 지방에 있으면서 학식 있고 배우고 진취적이고 사상을 추구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런 남자가 그 고을에서 처음 보지 않았을까. 12살 때부터 8년 동안 이바노프를 사랑하게 된 배경일 거다.

안 : 나는 배우로서 관객분들에게 궁금했던 것이, 안나는 피해자고 샤사는 진취적이고 당당한 현대의 여성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나?

ㄴ 문화뉴스 : 둘 다 성격이 달랐을 뿐이지. 모습은 똑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 쓰러웠다. 이바노프가 스스로 채우지 않는 한. 안나의 모습도 이바노프가 있고, 샤샤의 모습도 이바노프가 있고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것이 인물들의 이바노프의 자아라고 생각했다. 그 내면의 갈등이 밖에서 보이니까 더 괴로워하지 않았나.

두 분이 만약 실제로 극중 배역의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ㄴ 안 : 죽어버릴 것 같다. 너무 괴로워서. 죽기 전까지 남편을 바라보고 기다리고…마지막 대사까지도 '내가 사랑한다고 그랬잖아, 왜 그 여자가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이러는데. 내가 실제로 안나 역에 빠지면… 이 역할은 이유 없이 살이 빠진다. (샤 : 아 진짜 너무 안 쓰러워요!) 연출도 내게 "안나는 1막부터 4막까지 나오진 않지만 이게 진이 쫙쫙 빠지는 역이다" 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와닿는다.

ㄴ 샤 : 김샛별이 만약 샤샤 입장이 됐다면…난 내 성격상 계속 매달리는 성격이 아니다. 샤샤는 모성애 발휘해서 "저 남자는 나만이 우울증을 잡을 수 있어 이러는데' 난 실제로… 찔러서 안되면? 안 와? 다른 남자 많아! 이런 식이라서… (웃음)

그럼 역을 바꾼다면? 안나가 샤샤가 되고 샤사가 안나가 되고 (안, 샤 : 오 이런 질문은 처음이다!)

ㄴ 안 : 내가 샤샤라면? 오히려 저는 끝까지 올 때까지 집요하게 있을 것 같다. 샤샤라는 인물이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어서 쉽게 포기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샤 : 좀 나줘요! ㅎㅎㅎㅎㅎ)

자 이게 극에 옵션을 넣어보자. 막장드라마에 어울리는 인터뷰질문. 안나가 건강이 회복되고 안 죽는다. 샤샤한테는 더 멋진 남자가 나타나고

ㄴ 안 : 이바노프라는 인물 자체를 안나도 알고 있다. 자기가 잡는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슬픈 것 같다. 그걸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있고. 그런데 이 여자는 갈 때가 없다. 부모 종교도 버리고. 진짜 저 외계의 길잃은 생명체다. 하! 이 역은 감정이입을 하려고 해도 잘 안됐는데, 그때 딱 외계생명체라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왔다. 그만큼 고독한 여자인데 만약에 이 여자가 죽지 않고 살았다고 하면 놔줬을 것 같다. 왜냐면 잡아도 잡히지 않고 자기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ㄴ 샤 : 제 입장에서? 아닌 샤샤 역할로? 나는 갈아타고…(웃음) 샤사는 아마…안 갈 것 같다. 이미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 사람만을 바라봐서

이바노프의 집. 안나에게는 그 집은 어떤 집일까?

ㄴ 안 : 둥지. 모든 것이다. 그녀는 갈 데가 없다. 박차고 나가고 싶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을 봤을 때 나는 주부라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안나도 전업주부이지 않나. 전업주부 관객 분들도 나랑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에엔 집이 정말 소중한 곳'. 그런데 이바노프가 그 집에 대해 "여기 있음 우울하다" 이러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누가 미치지 않을까. 괜히 안나가 폐결핵이 생긴 것이 아니다.

안나의 우울감은 어디서 왔을까. 샤사는 이바노프의 우울함을 왜 사랑했을까?

ㄴ 안 : 내가 생각하기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우울인데 그게 밖으로 표출이 되면서 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지 않나. 우리가 예를 들어 가족들에게 나도 모르게 그러듯이. (안나에 젖어있어서 실제로 가족에게도?) ㄴ 아, 이 공연으로 인해서는 그러지 않다. 더 완벽하게 하려고 해서 더 힘들지. 일 자체로 상처주는 걸 늘 조심한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쪽으로 표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방법으로 터질 줄 모르니 그런데 현대 그런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이바노프는 그걸 안나에게 한 거고. 내가 그래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 너무 우리들의 삶과 똑같다.

ㄴ 샤 : (어린 아이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어른의 우울함에 빠졌을까?)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 내 사랑을 보여주고 확인할 수 있는 느낌. 확인하고 싶고.

이바노프가 샤사랑 있는 장면을 안나에게 들키는데, 샤사가 정말 이바노프를 사랑했다면 안나에게 '나는 이바노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 장면을 본 안나의 느낌과 그걸 맞닥뜨린 샤사의 느낌이 어땠을는지 궁금하다.

ㄴ 안 : 그 장면을 실제로 봤다면 실감이 안 올 것 같다. 그게 일부러 연기를 많이 안 하려고 했다.

ㄴ 샤 : 사실 오늘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 (-문화뉴스가 공연을 관람한 날-) 원래 제가 거기서 뛰어가지 않는다. 옷을 가리고. 당당하게 가야하는데 치마에 걸려서 너무 질 뻔했다. 그 탄력에 빨리 뛰어가는 모습이 됐다.…샤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비슷한 맥락이 뭐냐면 극중에서 샤사가 승마복을 입고 이바노프의 집에 들어오지 않나. 이게 사실 말도 안 되는 당돌함이다. 심지어 말을 타고. 그때도 딱 들어올 때 누가 있는지 없는지 볼 텐데 샤샤는 그냥 들어왔다. 오늘은 내가 공연에서 잘못 표현했다. 아 물론, 현실에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싸면 나는 당당할 수 있다. (여기서 분노한 안나가 순각 욱…)

   
 

사회적 화두가 인문학적인 교양인데 대사에서도 굉장히 깊이가 느껴졌다.

ㄴ 안나 : 당연히 평소에 이런 말을 안 쓰지 않나.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문어체처럼. 소설을 읽는 느낌인데, 대사를 입 밖으로 내니까 내 것이 아녔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대사였다. 입에 잘 맞게 고치려고 했는데 안됐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이게 제가 체홉의 매력인 것 같다.

만약 안나랑 샤샤가 둘이 이렇게 같이…둘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ㄴ (안, 샤 :) 글쎄요. 정말 이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다.

ㄴ 안 : 그냥 단순하게 너 왜 그러니? 거기에 많은 내용이 함축됐다.

ㄴ 샤 :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나에 대한 제재를 하지 말라. 이러지 않을까요.

사람이 당연히 복수심리가 있을 텐데, 안나도 의사랑 썸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ㄴ 안 : 맞다. 이것도 연출의 의도다. 러시아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 이바노프 DVD를 보면 극중 의사가 진짜 멋있게 나온다. (샤샤 : 맞아요!) 연출이 공연 초기에 "너 의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도 그렇게 보였다면 성공했다.

안나가 이바노프에게 단초를 제공한 것은 없을까?

ㄴ 안 : 남녀가 헤어지는 건, 따지고 보면 정말 여러 이유가 많다. 겉으로 봤을 때 멀쩡하게 사는 것 같은데도. 그건 자기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스스로 극복하지 않고 자기 만의 벽에 부딪혔을 때 소통이 안 되는 거다.그러니 점점 따로가다보니까 불행해지지 않나. .

이 작품이야말로 로맨스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다.

안나 : 깊이 있는 로맨스죠.

표현의 수위가 조금 셌다. 옆에서 같이 본 젊은 관객이 부끄러워하더라.

ㄴ 안 : 그래서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거기에 이 작품은 인물의 관계에 엉킨 대사들이 워낙 주옥같으니. 노출할 수 있는 당위성이 탄탄해 더 감명있게 이 작품을 소화할 수 있다

ㄴ 샤 : 샤샤는 이바노프를 만지기 위해 8년을. 20살의 생일만을 기다려왔다.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화뉴스 이밀란 기자 pd@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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