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문화 人] 박장렬 연출 "5,000원 받는 배우들 보며 '공연예술인노조' 만들었다" ② 에서 이어집니다.

노조를 만들기 위한 준비자료를 보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장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담긴 연극인들의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ㄴ 우리 현장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회당 5,000원 출연료에서도 나온다. 보편적인 인식에서 보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정의의 개념이 다 다르겠지만, 내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공기업이나 관기업 사무실은 대부분 지상에 있다. 서울연극협회 자료엔 약 2,500개 극단이 있는데, 80~90% 소규모 극단들은 다 지하에 있다. 연습실도 지하고, 소극장도 지하다. 싼 술집도 모두 지하에 있어서, 지하에서 술을 마실 정도다. 이게 정의로운 사회일까?

나는 이제 극장을 지하에 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우리가 지하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술을 마셔야 할까? 대학로엔 높은 건물들만 올라가고 있다. 그 높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업종을 보면 그게 정의로울까? 자본주의에서 먹고 사는 것은 각자의 문제이지만, 소득분배를 균형 있게 하는 것은 행정가의 책임이다. 옆에 예술가의 집도 있지만, 그들은 지상에서 전기세 상관없이 에어컨을 켜고 있다. 그런데 민간에선 전기세 걱정에 난방과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한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을까?

백성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왕이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연극계 현장이 덥고, 춥고, 공기가 나쁜 곳이라는 것을 알까? 모른다. 그런 곳에서 6시간을 일하고 나면 정말 힘들다.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연습실도 반지하다. 그게 옳은 걸까? 청계천 사무실 지상에 연습실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기에 심사제도도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예술가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겠지만, 3~5명 평가보다는 100명이 심사해야 한다. 왜 만날 그 정도 인원만 심사를 해야 하나? 행정가들이 100명 관리를 하기 힘든 것이다. 누구를 위한 효율성일까? 자기 조직을 위한 효율성이 아닌 타자를 위한 효율성을 찾아가야 한다. 자기를 위한 효율성을 따지고, 국가가 정해놓은 답에 가까운 효율성을 찾아보니 기구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게 다 정의롭지 못하다.

민감한 이슈일 수도 있다. 바로 '공연계 내 성폭력' 문제다. 최근 본지에서도 이 지점에 대해 연극인들이 제보한 적이 있다.
ㄴ 그 문제는 어린 시절 총체적인 교육을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대학교 연극영화과조차도 그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 너희 삶을 위해, 어떤 주권을 가져야 하고, 어떤 노동 인식을 해야 할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게 없다. 성폭력 같은 경우도 국가 정책으로 성폭력 방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가 되어 있다. 기업에서 시행하지 않으면 제재가 들어온다. 문체부나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연극계에서도 남녀평등을 비롯한 전반적인 인권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소와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무언가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교육을 받으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 '이등병의 엄마' 제작발표회에서 박장렬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군 의문사'를 다룬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연출하고, 5월에 올릴 예정이다. 대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ㄴ 작품을 본 지 한 달 반 정도 됐다. 대본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두환 집권 때 한 해 군에서 3천 명이 죽고, 노태우 때는 1~2천 명이 죽었다"는 내용인데, 그 숫자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죽었나 싶다. 대본 속에 어머님들의 사연을 쭉 써놓은 게 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너무나 힘들었고, 아팠다.

아들이 고3인데, 2~3년 후엔 군대를 갈 것이다. 옛날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문득 아들 걱정이 들었다. 작품 대사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가 등장한다. 자기한테 벌어지고 나서야, '군 의문사'를 이해한다는 내용을 보고 아들을 생각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서 그럴 수 있다는 상상을 하니 너무나 먹먹했다. 그러는 와중에 유가족분들을 만났다.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누군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인데,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 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없앤 것도 열 받은 일이었다. '군 의문사'가 한 명이 나오더라도 존재해야 하는 기구라고 생각한다. 의료사고가 나면 사고를 당한 사람이 증명하고, 부모한테도 그 사고를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군이라서 민간인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고 끝이 난다. 시스템적으로 국가를 위해 충성한 사람들에게 찬밥 신세를 하고 있다. 너무 황당하고 짜증 난다. 이걸 개선하도록 노력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동참할 수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등병의 엄마' 제작진과 유가족들이 제작발표회 포토타임을 가지고 있다.

'이등병의 엄마'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가?
ㄴ 인간은 누가 꼬집으면 "아, 아프다"라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근데 어느 시기에 꼬집고 "너 아프다고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꼬집는데 아프다는 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게 연극의 몫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예술의 몫이다. 둘이 공존하고 바라보게 하는 것 역시 예술의 몫이다.

솔직히 극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삶의 컨디션이 좋으신 분들이다. 삶의 컨디션이 좋으신 분들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는 다른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구나"라며, 자기 삶 속에 가져가 판단하면 좋겠다. 공연을 보고 타인의 아픔을 보면 그 아픔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가정, 사회, 직장에 가서 조금 아픈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극의 미학적인 몫은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관객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쳐다보는 게 사회적인 몫이라 생각한다. 내가 배운 것은 연극이니, 일반 사람들보다 잘 만들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걸 하고자 한다. 모든 국민이 각자가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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