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23일 오후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실은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세계 최고의 축제 중 하나인 에든버러 프린지 참가지원 1차 워크숍이 진행되었고, 에든버러 프린지에 관심 있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매년 8월 한 달 가까이 영국 북부의 관광 도시 중 하나인 에든버러를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에든버러 프린지도 어느덧 올해 7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 공연이 에든버러 프런지에 첫 선을 보였던건, 지난 1999년 배우 송승환이 제작한 뮤지컬 공연 '난타'였다. '난타'는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연이은 호평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난타'가 머나먼 영국 땅에서 선전한 것을 본 대학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에든버러도 관심가지기 시작했고, 2016년까지 총 100여 개의 공연 팀이 에든버러 프린지에 도전장을 냈다. 꾸준히 참가한 덕분이었는지, 지난 2015년부터 올해 2017년까지 에든버러 프린지는 '코리아 시즌'을 기념하여 에든버러 어셈블리 홀에서 한국 공연 팀들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점프'의 한경아 쇼앤아츠 대표가 에든버러 프린지 현장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는, '난타'와 더불어 에든버러 프린지의 성공신화이자, 한국 공연을 전 세계로 널리 알렸던 '점프'의 한경아 쇼앤아츠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코믹 마샬아트 퍼포먼스'로 알려진 '점프'는 2005년에 에든버러 프린지에 첫 진출 후, 2년 연속 참가하였다. '점프'는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난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해외 순회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치며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기에 한 대표가 15분간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에 공연관계자들은 우상을 우러러보듯이 한 토시 놓치지 않고 집중하며 경청했다.

예상과 달리, 한경아 대표는 한동안 에든버러 프린지의 '에'자만 떠올리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점프'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그만큼 에든버러 현지에서도 많은 고생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한 대표는 "어셈블리 홀, 프레상스 등 각자 극장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공연과 어울리는 공연장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공연 기간을 선정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점프'로 4주 내내 공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공연장 및 공연 기간 선정부터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 다음 문제는 바로 돈이었다. 에든버러가 아시아에서는 머나먼 페스티벌이다. 에든버러까지 한 사람당 항공권을 비롯하여 100명이 넘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숙식문제, 극장 대관료, 홍보비까지 당시 1억 원가량 들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점프'가 진출했던 2005년에는 정부의 지원도 일절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도전은 도박에 가까웠다. 다행히 한 대표의 경우,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하기 위해 직접 스폰서를 구하러 뛰어다녔고, 결국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항공료를 포함한 예산의 절반을 해결했다.

한경아 대표의 치열했던 에든버러 경험담은 이어졌다. 그녀는 "프린지는 첫째 주에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했다. 에든버러에 도착한 후, 모든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직접 전단지와 포스터를 붙이면서 거리를 뛰어다녔는데, 포스터를 붙이면 얼마 후에 남의 포스터가 덧붙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프리뷰가 있으면 좋겠지만, 프리뷰가 없어서 프레스들을 끌어들이는 게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첫 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끌어들이는 데 노력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 ⓒ 쇼앤아츠. '점프'는 2005~2006년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했다.

그러면서도 한경아 대표는 프린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한 대표는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하려는 공연 기획자들이 프린지에 참가하기 전에 미리 에든버러를 방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프'가 2006년에 매진 기록을 세우고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2005년 첫 진출 경험이 밑거름되었기에 가능했던 일. 2005년 당시, '점프' 또한 에든버러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진출했었기에 시행착오도 꽤 많이 겪었다. 그때 직접 몸을 부딪치며 정보와 사람들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2006년의 성공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점프'가 에든버러 현지에서 홍보했을 당시, 그들은 15,000 여부의 포스터 및 전단지와 함께 부채를 나눠주었다고 말했다. 축제 기간이 더운 8월이었던 것을 고려하고 내건 전략이었다. 그 전략이 통해 관객들은 부채를 버리지 않고 계속 들고 다녔고 '점프'라는 이름이 관객들 머릿 속에 각인될 수 있었다. 한경아 대표 이외에 이날 워크숍에 참가했던 이길준 브러쉬 씨어터 대표와 김준영 아이러브스테이지 운영감독도 공연 내용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차별화된 전략이 중요하다며 입을 모으기도 했다.

   
▲ ⓒ ARKO. 세계의 가장 큰 축제로 평가받는 에든버러 프린지,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곳은 전쟁터다.

지난해까지 총 100여 개의 한국 공연이 에든버러 프린지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점프'처럼 현지에서 인정받고 해외 공연기획자들과 함께하자는 제안까지 받았던 공연은 불과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만큼 어려운 전투였다. 그래서 한경아 대표는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하는 공연단체들을 두 팔 걷어 도와줄 것이라고 답변했다. 2006년을 끝으로 에든버러의 '에'자만 들어도 힘들어했던 그녀가 오랜만에 참가하는 것이다. 성공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에 조력자로 등장하니, 참가하는 공연단체들엔 그 어느때보다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뉴스 석재현 인턴기자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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