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 다방면의 공부를 해야 진정한 분장디자이너로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효상 playticket@mhns.co.kr 플레이티켓 대표·공연전문프로그램 마포FM 김효상의 '플레이

[문화뉴스]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을 이야기하고 공연을 만나보는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플레이투스테이지 47회 게스트는 분장디자이너 김종한이다.

김종한은 분장디자인 분야에 1978년 입문하여 현재까지 국립극장의 전속단체 정기공연 및 다양한 장르에서 분장을 포함한 무대 작업(stage art director)을 하고 있다. 무대 스태프 분야에서는 최장수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을 누르면 이번 인터뷰가 실린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47회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클릭) 

 

 

 

   
플스 47회 게스트_분장디자이너 김종한

Q. 분장디자이너가 된 동기가 무엇인가?

ㄴ 내가 어렸을 때는 이소룡 영화 같은 것이 유행이었다. 70년대 초반 국립극장이 명동에 있을 때(현 명동예술극장) 거기서 우연히 연극을 한 편을 보았다. 국립극단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나에겐 당시 유행했던 이소룡 영화 이상의 감동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불과 파 라이트(PAR light) 조명기 몇 개 켜 논 것에 불과한 연극이었지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 73년도에 남산으로 국립극장이 옮겨가고 개관기념으로 성웅 이순신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것 역시 또 다른 감동이자 신세계였다.

그래서 연극배우를 꿈꿔봤지만 내 신체조건이 암만해도 배우를 하기엔 다소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일을 무작정 찾았고 무대 스태프에 도전하고자 78년도에 무턱대고 남산 국립극장의 문을 두드렸다.

 

   
서울예술단 '놀이' 공연중 분장실에서

그래서 당시 초창기 한국현대연극을 이끌었던 배우들을 모시며 20여 년을 보낸 것이다. 그 점에선 운이 좋았다. 당시 나를 받아준 스승님은 무대 전반의 일을 맡아 하시던 故 최효성 선생님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전문적으로 분장을 가르쳤던 1세대였다. 그때만 해도 무대 스태프의 분야가 뚜렷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서 배우나 스태프 할 것 없이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최효성 선생님은 원래 직업이 화가이면서 영화배우도 하셨다. 워낙에 손재주가 좋았던 탓에 말년에는 분장기술을 독학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그때는 방송이나 무대 분장에 대한 영역 구분이 없어서 극장에 있다가 필요하면 방송국도 왔다 갔다 했다. 이처럼 국립극장의 정식직원은 아니었지만, 매일같이 출근하며 무대 일을 해나가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80년대 들어서 컬러 TV가 보급됐고 분장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무대 전문인력도 늘 부족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가 안 되었다.

분장할 때 얼굴에 바르는 가장 기본적인 도란(Dohran) 이란 용품도 직접 만들어 썼다. 해외를 나다니던 게 어렵던 때라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란을 만들어서 당시 서울예대 등에 사용하라고 나눠주기도 하였다. 지금으로선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그것을 만들어 쓰던 마지막 세대다.

그렇게 국립극장에 상주하면서 국립극단을 비롯해서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등 당시 국립극장 5개 전속단체 공연분장을 거의 도맡아서 했다. 그것이 또한 다양한 공연 장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창극 토끼전 중 용왕 역

Q. 현재 우리나라에서 분장디자이너가 되는 경로는 무엇인가?

ㄴ 지금은 우리나라에 20여 개의 분장학과가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학교공부 이외에도 10년 이상의 공부를 각오해야 한다. 또한 여러 방면의 공부가 필요하다. 분장을 잘한다는 것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나 문화적 특색을 이해해야 한다. 단지 눈썹 잘 그리고 파운데이션 잘 바른다고 좋은 분장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배우들이 공연을 새로 연습할 때 맨 처음 대본 분석을 하는 것처럼 분장디자이너도 그런 작업을 배우들과 같이 해나가야 한다. 내용을 모르고는 분장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연극만 해도 우리나라 작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희곡과 전 시대적 배경의 작품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헤어스타일의 역사도 공부해야 한다.

 

Q. 공연분장이 미용 분장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ㄴ 앞서 언급한 내용이 미용분장과 공연분장의 큰 차이다. 미용은 단지 화장기술에 불과한 것이고 분장(扮裝)은 '꾸민다'는 뜻 이외에 어떠한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가 있지 않은가. 배우의 캐릭터를 도출하는 것이 분장디자이너가 해야 할 몫이다. 이론만 공부한다고 해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없다. 예전엔 말 그대로 배우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했다. 실제 배우들의 이면의 모습을 모르면 무대 위의 재창조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국립오페라단 작품을 맡을 때였을 것이다. 모차르트 시대의 느낌을 알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하였다. 확실히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오페라를 직접 관람하며 이것저것 몰랐던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했다. 당시엔 정보도 부족하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몸소 체험해본 것이다.

분장은 캐릭터를 구축하기까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정해지고 나면 그에 따른 기술은 대단치 않은 것이다. 때로는 연습 때 참관하여 배우의 캐릭터에 대해 조언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만 좋은 디자이너라고 할 것이다.

 

 

   
신촌 창무춤터 공연장에서 '신맞이' 공연분장 중

Q. 극장의 조건이나 공연 장르에 따라 분장하는 스타일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

ㄴ 분장은 조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입문할 땐 조명기가 그다지 발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분장을 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명상황은 대단히 발전하여 LED 조명을 비롯한 다양한 조명기기가 국내에 도입되었다. 밝기로 따지면 한여름 해변가의 느낌도 무대에 나타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대극장 객석에서 리허설을 보는데 배우의 얼굴을 너무 진하게 그려서 삶의 희로애락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슬픈 장면인데 관객이 봤을 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느낌이 들어 다시 수정한 경우도 있었다. 조명의 컬러와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숲을 배경으로 한 무대는 녹색의 조명이 주가 된다. 그럴 때 일반적인 분장으로 무대에 서면 얼굴이 어둡게 보인다. 그리고 파란색 조명 아래에는 사람이 창백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명디자이너와의 사전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장르별 예를 들자면 발레와 한국무용의 차이를 비교해보겠다. 발레는 직선적이고 한국무용은 정적이며 곡선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분장에서도 그런 정서가 느껴지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의 배우들이 느낌이 다른 것처럼 인종이나, 계절 등도 분장할 때 고려대상이 된다.

 

Q. 연출이 요구하는 것과 디자이너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땐 어떻게 하는가?

ㄴ 그 점에선 시스템이 이야기로 대신하고 싶다. 예전에 국립극장장이셨던 신선희 선생님께서는 국립극장장이 되시기 이전부터 아트디렉터의 역할을 국내에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유럽의 시스템은 연출과 스태프들이 직접 부딪히기보단 아트디렉터와 다수의 스태프가 협의하는 경우가 많다. 연출은 단지 전체적인 조율만 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아트디렉터와 스태프들의 회의를 통해 나온 내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다. 하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선 개념이고 그로 인해 작품을 할 때 새로운 느낌을 시도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아쉽다.

 

Q. 분장디자이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ㄴ 학과나 학원에서의 배움이 끝나면 보통 대학로에서 바로 분장디자인을 시작하는데 일단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대본을 분석해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를 추구하는 것이 분장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님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플스 47회 방송을 마치고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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