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수영 panictoy27@mhns.co.kr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음악과 건반을 가르치면서 음악방송 '음악잡수다' DJ를 맡고 있다

[문화뉴스] 한 장의 음반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수많은 과정 중에는 마치 직소 퍼즐 여러 개가 제자리에서 자신의 위치와 그림에 충실해야 마침내 완성된 퍼즐이 완성되듯이, 갖가지 역할의 여러 사람이 그들의 역할을 잘해 주어야 비로소 한 장의 음반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 역할 가운데는 음악을 직접 만드는 작사, 작곡, 편곡가, 연주자들(여기에는 그 음반의 주연 격인 가수도 포함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연주하는 사람이므로)과 녹음을 하고 녹음이 된 트랙들을 정리, 믹스하는 작업을 하는 엔지니어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총괄, 지휘하는 프로듀서, 실질적인 곡의 선별과 앨범의 컨셉, 비주얼 적인 요소들을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음반 한 장은 도깨비방망이 두들기듯이 연주하고 녹음한다고 해서 뚝딱 나오는 신비로운 마술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노고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총괄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프로듀서들, 어느 프로듀서를 만나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에, 또한 이것이 음반의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기에, 몇 장의 앨범을 프로듀싱 했던 것을 넘어서서 팝 음악계를 전반적으로 진두지휘했던 역대 최고급 프로듀서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비틀스의 '제 5의 멤버'로도 불렸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비틀스와 함께 있는 사진

▶ 뮤지션들의 역할을 최고로 끌어 올려준 프로듀서들  - 조지 마틴(George Martin),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팝 음악계를 논할 때 그 어느 분야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인 비틀스. 음악성, 상업성, 예술성, 화제성 등 현대 팝 음악에서 비틀스는, 그리고 비틀스의 음악은 거의 바이블 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비틀스가 그런 존재로 남게 된 데에는 비틀스 멤버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노고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 노고(?)가 가장 컸던 두 사람을 이야기해보자면, 한 명은 비틀스의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과 그들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사람들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전설의 비틀스, 그리고 그 전설을 만든 또 하나의 전설인 조지 마틴'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지 마틴은 원래 EMI에 고용되어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통해 비틀스의 음악을 알게 되어 당시 무명이었던 비틀스를 처음 EMI로 영입 시킨 인물이고, 무명이었던 비틀스가 크게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조지 마틴은 EMI를 나와 비틀스와 함께 AIR(Associated Independent Recording)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다.

비틀스가 해체하기 전까지 이들의 거의 모든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조지 마틴은 거물급 프로듀서로 성장할 수 있었고, 비틀스 후반부에 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던 멤버들 간의 조율을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조지 마틴이 함께 거들어 줌으로써 비틀스 멤버들의 음악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도운 인물이기도 하다. 비틀스가 해체한 후에는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의 솔로 앨범에도 프로듀서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비틀스 외에도 조지 마틴은 영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인 제프 벡(Jeff Beck)의 음반 중에서도 명반으로 꼽히는 'Blow by blow'라는 앨범을 프로듀싱하여 또 하나의 전설적인 경력을 남기게 되며, 셀린 디온(Celine Dion)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였던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그녀의 앨범 'Let's talk about love'에 프로듀서로 또한 참여하기도 했다. 조지 마틴은 작년인 2016년 3월에 9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비틀스'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프로듀서가 조지 마틴이듯이, 영국의 또 다른 별이었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에게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라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원래는 록시뮤직(Roxi music)이라는 글램 록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프로듀서로서도 유명하지만, 브라이언 이노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개성과 예술적 감각이 워낙 뛰어났기에 사실 아티스트로 더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나,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뮤지션들이 데이빗 보위나, 콜드플레이, U2 같은 대형 수퍼스타들이 많다보니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이력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다.

록시뮤직 시절부터 짙은 화장과 충격적인 비주얼적인 요소들로 매번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던 브라이언 이노는 그의 이름을 건 여러 장의 앨범 활동 이외에도 다른 가수들의 앨범에 프로듀서로도 여러 번 참여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앨범은 바로 데이빗 보위의 'Low', 'Heros', 'Lodger' (베를린에서 제작되었다 하여 일명 베를린 3부작 이라고도 불리는 3개의 앨범이다) 같은 작품들을 들 수 있다. 특히나 브라이언 이노는 충분히 개성이 강하고, 충분한 음악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과 주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들이 브라이언 이노를 택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이유, 즉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의 프로듀서로서 브라이언 이노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필 스펙터

▶ 대중음악 사운드의 격을 한 수 높인 역사적 인물, 프로듀서 위의 프로듀서 - 필 스펙터(Phil Spector)

필 스펙터는 비틀스의 앨범들과 비틀스가 해체한 후,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솔로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사람이다.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라는 하나의 창조적인 기법 혹은 체계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이 월 오브 사운드 기법은 단어 그대로 소리를 계속 쌓아서 벽처럼 단단한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기법이라는 말이다. 계속 같은 소리를 더빙함으로써 쌓아 올린 필 스펙터의 이 기법은 당시 아주 획기적이고, 창조적이고 동시에 '소리의 혁명'으로까지 회자하기도 했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아바(ABBA)등의 대형 스타들이 필 스펙터의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고도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필 스펙터는 원래 고등학교 때 결성한 밴드 '테디베어스'라는 밴드로 활동하던 중 프로듀서로 전향하게 되고, 비틀스의 'Let it be' 앨범과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레너드 코헨,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뮤지션들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중 2003년에 라나 클락슨 이라는 한 여배우를 총기로 살인한 혐의로 현재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래미 어워드에서까지 상을 받고 수많은 뮤지션들의 추앙을 받았던 사람이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현재는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한때는 날고뛰는 프로듀서들에게도 추앙받던 그였는데 말이다.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

▶ 프로듀서계의 수퍼스타 - 퀸시 존스(Quincy Jones)

재즈 빅밴드의 단원으로 시작해 밴드의 리더로, 또한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던 퀸시 존스. 그러나 지금의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앨범은 퀸시 존스의 손으로부터 탄생하었고, 그로 인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게 된 전설의 프로듀서'로 평가받는다.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낸 솔로 1집 앨범인 'Off the wall' 앨범 제작에 참여했었고, 또한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에 기록된,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Thriller'(1982) 앨범을 프로듀싱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당히 예민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공동으로 그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팝 음악계의 성스러운 영역' 안에 속한 사람이며, 마이클 잭슨 외에도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 밥 딜런 등의 유명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상복이 또한 유난히 많았던 퀸시 존스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지금까지 총 79번의 노미네이트된 경력과 27회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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