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리뷰

   
 

[문화뉴스] 배우의 뒷모습. 좀처럼 마주하기 힘들었던 배우들의 뒷모습을 고적하게 관망했다.

Space111의 무대는 이번 공연도 흥미로웠다. 박스형 극장 중앙 부근에 자리 잡은 원형의 객석과 무대. 둥그런 객석에 의해 감싸진 무대에는 단 네 개의 의자와 한 개의 테이블만이 존재했다. 무대와 배우들은 자신들의 온몸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허락했다. 그렇게 관객으로서의 필자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을, 배우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시공간이 주어졌다.

러시아에서 스페인으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가 독일 위버링겐 상공에서 화물기와 부딪혀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이로 인해 두 비행기에 타고 있던 탑승자 전원은 사망하고, 이 사고로 두 아이와 아내를 한꺼번에 잃은 니콜라이 코슬로프(손상규)의 이야기로부터 극이 시작된다.

 

   
 

'사고'는 무책임하다. 그 단어는 참 손쉽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더없이 뼈아프다. 예기치 않았던,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럼으로써 그가 낳은 피해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고'. 코슬로프에게 들이닥친 불행의 원인이 항공 관제사의 실수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는 끔찍한 사고에 대한 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단히도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회는 관제사의 실수를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통을 살갗으로 느껴야 하는 개인은 그 실수를 이해하기 버겁다. 고통을 느껴야 했던 개인과 느낄 수 없는 사회의 차원을 떠나서, 같은 고통을 마주해야 했던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는 존재했다. 항소를 포기하지 않는 그에게 또 다른 유가족이 찾아와 위로하려 한다.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였다. 그는 코슬로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똑같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었는데, 왜 유독 코슬로프는 가족들이 묻힌 무덤에 살면서 항공사와 관제사를 상대로 끝까지 싸우고 맞서려고 하는지, 그의 삶의 방식이 유난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고 고통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코슬로프와 언쟁을 벌인 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떠난다.

 

   
 

코슬로프는 고통을 극복한 자신만의 방식을 타인에게도 적용하게 하려는 그 알량한 선의에 분노했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 연민의 감정을 증오했다. 우리의 감정은 그 어떤 유사한 타인의 감정과도 똑같지 않다. 같은 사건으로 같은 아픔을 겪었을지라도, 고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고통의 모양새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질량과 부피와 색채와 질감은 전혀 다르다. 결국 코슬로프는 관제사와 항공사에 떨어진 가벼운 형량을 인정할 수 없었고, '국가도, 법도 아무도 아무것도 안하는데 나라도 해야지'라 생각하며 관제사를 찾아가 살해한다.

 

   
 

지난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걸로 무대를 채우기 위해 세트들을 비우"며 "사운드, 뉘앙스, 무드, 빛 등의 사람의 감정을 터치할 수 있는 것들로 (무대를) 채운다"고 말한 바 있는 여신동 아트디렉터는 이번 공연의 무대와 조명, 사운드의 디자인을 맡았다. 연극 'My eyes went dark'의 무대는 그의 말대로 시각적인 것들보다 촉각적인 것으로 채워졌다. 조명의 각도와 빛깔, 공기의 흐름, 그리고 귓가를 울리는 미세한 진동 등이 섬세하게 디자인된 이번 무대는 관객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건드린다. 배우의 숨결,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디자인은 무대를 보는 것 뿐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것으로까지 만들어버렸다.

더구나 원형의 객석은 어느 각도에서든 배우를 바라볼 수 있게 했는데, 필자는 양조아 배우의 등을 잊을 수 없다. 코슬로프를 위로하러 무덤에 찾아온 처제 역을 맡은 그는, 자신의 언니를 잃었다는 슬픔에 취해 눈물을 터뜨린다. 온몸으로 흐느끼는 배우의 뒷모습은, 그 어떤 눈물 연기보다 사실적이다.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쓰는 주변인들의 울음을 목격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그녀의 감정이 꽤 떨어진 객석에까지도 전염돼 버리고 말았다. 표정도, 제스처도, 감정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등. 배우의 신체 중 가장 무심하게 바라보곤 했던 등은 배우의 연기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신체 부위였다.

 

   
 

잔 떨림으로 메워진 적막한 무대, 그곳에서 바라본 배우들의 온몸은 타인의 고통을 향한 악랄한 잣대를 가진 나와 당신의 과거를 들춘다. 그리고 이내, 고통의 형세에 대한 개개의 정의(定義), 고통을 타개해 나갈 다양한 정의(正義)를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한다. 코슬로프는 자신만의 고통을 자신만의 정의(正義)로 견뎌나갔다. 우리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그가 그 고통을 표출하는 방식을, 그리고 그가 삶에서 고통을 녹여내는 과정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고통을 정의하고 대처하는 당신의 방식은 그 누구에게도 정의로운 것일 수 있을까.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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