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성열 작가

[문화뉴스] 1917년 10월 15일. 제1차 세계대전 중 한 무희가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습니다. 바로 '마타 하리'인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입니다.

 
'마타하리'는 네덜란드의 리우와르덴에서 한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린시절 유복한 삶은 끝났고, 인도네시아에서 복무한 네덜란드군 장교와 결혼할 정도로 가난한 삶이 시작됐죠.
 
'마타하리'는 어머니가 자바계 혼혈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교사로서의 취직과 결혼에 실패한 뒤 파리로 이사했습니다. '마타하리'는 자바 섬에서 온 공주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동양식' 춤을 선보였으며, 이때 만든 '마타하리'라는 이름은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새벽의 눈'이라는 뜻인데요. 그의 이러한 기만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자바에서 살았던 경력 덕분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베를린에 있던 '마타 하리'는 독일 정보기관에 2만 마르크를 받는 조건으로 포섭돼 암호명 'H21호'로 연합군 고위장교들을 유혹, 군사기밀을 정탐해 독일군에 제공해 왔습니다. 당시 그가 수집한 정보는 연합군 5만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고급정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 뮤지컬 '마타하리'의 한 장면. ⓒ 문화뉴스 DB
 
결국, 영국의 정보기관이 베를린과 마드리드 간의 외교통신을 해독, '마타하리'가 스파이임을 밝혀냈죠.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서 '마타하리'를 체포했고, 총살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마타하리'가 실제로 첩자였는지, 아니면 그것도 '마타하리'가 뿌린 수많은 헛소문 중 하나였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논란이 가중된 것은 1999년 영국 정보부 MI5가 한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며 '마타하리'가 'H21호'이라는 암호명으로 독일군에 주요 군사정보를 빼돌렸다고 자백했다는 프랑스 측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혀 '마타하리' 처형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올해 초 이를 소재로 한 뮤지컬 '마타하리'가 공연됐는데요. '마타하리'는 한 넘버에서 "저 바람 속에 가만히 누워 저 높은 곳에서 보려 한다면 꿈꾸던 세상을 봐"라는 말을 남깁니다. 과연 '마타하리'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스파이 논란'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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