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란?

[문화뉴스]

"당신은, 당신의 연인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얼만큼 솔직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까? 나의 가장 아프고, 약하고, 수치스러운 부분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상대가 존재하나요?"

그런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내어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왜일까. 아직 자신도 감당해낼 수 없는 일을 꺼내어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하나의 이유일 수 있고, 그러한 모습을 알고도 '과연 상대가 나를 여전히 좋아하고 사랑해줄까'라는 의구심 또한 커다란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것은 '트라우마', 그리고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갖는 '신뢰감'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저마다 상처를 마음 어딘가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 크기나 깊이는 제각각 다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상처가 작은 상흔만을 남기고 소화되거나 잊히기도 하는 반면, 너무 크고 깊은 상처는 차마 그것을 들여다보기조차 두려워 때로 그저 덮어두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치유되지 못한 채 덮인 마음의 상처는 우리의 무의식에 머물며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순간 의식되지 않는 것도 같지만,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서 쉽게 우리를 나약하고 무너져 버리게 한다.

'트라우마'란 본디 사고나 자연재해 등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사건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공포 및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느낀 이후 경험하게 되는 정신적 상처를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좌절과 충격, 아픔을 안겨준 사소한 사건들 또한 좁은 의미에서의 '심리적 트라우마'일 수 있다. 트라우마로 인하여, 이와 연관되거나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에 노출되었을 때 과도하게 각성하며 불안해지거나 두려움을 겪게 되는 정신장애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 일컫는데, 우리가 겪는 인생의 작은 트라우마들도 이와 유사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또한, 이런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 나의 아픈 과거와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다시 꺼내어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에게 보이기 쉽지 않고, 그런 나를 알게 된 그의 평가도 두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커다란 부분이기에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만 할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재열과 해수는, 서로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보듬을 줄 아는 연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예민하고 소화해내기 쉽지 않은 과거를 가졌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딱 좋아 내 스타일이야' 라고 말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던 것은,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 없던 서로 가장 약한 부분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기보다 이해하고 안고 보듬었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 짓밟힌 어린 시절 이후 강박적인 성향이 있게 되고,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는 편안히 잠들 수 없던 재열. 아픈 아버지를 내버려 둔 채 그의 친구와 외도를 한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으면서도, 그 사람으로부터의 경제적인 서포트가 필요했던 자신의 이기심으로 그런 어머니의 관계를 오히려 부추기고, 죄책감과 분노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해수. 그런 서로의 모습을 안아내었던 그들이기에,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었고, 재열의 정신분열병이라는 치명적인 상황이 닥쳤음에도 함께 치유하고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드라마 '연애의 발견'의 주인공들은 어떨까. 여주인공인 여름이 태하와 하진, 두 남자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옛 연인인 '태하'에 대해 과거에도 쉽게 서운해하고 보채고 의존하며 애정을 쏟아붓던 그녀는, 헤어진 후인 지금도 과거의 일을 들먹이며 화를 내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반면, 그녀의 현재 남자인 하진에게는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대한다. 무조건 감정을 쏟아붓기보다 조금 더 차분히 그리고 냉정히 이 연애를 바라보고 현명하게 대처하려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하진을 좋아하는 감정이 덜하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애정의 크기와 비례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녀가 이전의 연애를 거치며, 또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 부분이 있고, 무작정 내 마음이 얼만큼 큰지를 상대에게 보이고 확인받는 것보다 현명하게 관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여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또 지금의 연인이 그녀를 감정적으로 덜 자극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여름과 하진, 이 두 사람의 관계가 겉으로는 별다른 갈등 없이 평탄하게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어쩐지 그리 건강하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슈는, 이들이 서로에게 '가장 취약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꽁꽁 싸매고, 방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하진에게 있어 가장 큰 약점은 그가 보육원 출신으로 입양된 고아라는 점이다. 여름의 경우, 갑작스러웠던 아버지의 자살일 것이다. 여름과 어려서부터 동고동락해 온 가장 친한 친구들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만 알고 있을 만큼, 그녀는 아직 이 사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연히 아버지와 함께 가던 낚시터 근처에 가게 된 그녀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식은땀을 흘리며 실신해버린 것은, 이제껏 그 사건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를 얼마나 처절히 사용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결혼을 생각하는 연인이지만, 아직 만나온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사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런 무거운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하진과 여름 모두, 상대에 대해 '나와는 달리 별다른 역경과 상처 없이 여유로이 잘 자라온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될 테고, 이런 생각이 위험한 것은, 과연 이렇게 여기는 상대에게 이들이 인생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털어놓고, 함께 이겨내자며 의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던 고아라는 사실, 그리고 그때 친동생처럼 함께 자랐던 아림을 두고 입양되어 자라왔다는 것이 가시처럼 마음에 걸려있는 하진은, 이제 능력있게 성장한 어른으로 아림과 보육원의 아이들을 도우며 스스로 치유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칼럼 (▶보러 가기)에서 이야기했듯 '모두가 꿈꾸는 이상형의 남자'에서 '내 여자와 아무 여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쁜 놈'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필자는 작가가 그의 경쟁자인 태하의 진심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하진을 아낀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작가와 하진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그를 조금 변명해 보자면, 그가 여름과 아림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가 된다. 헤어지지 말자고 입양을 앞둔 아림을 붙잡아두고, 정작 자신이 그 집으로 입양되어, 입양의 기회도, 의지했던 오빠도 모두 잃게 하였던 그가 아림에게 자신이 바로 그 오빠라고 털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을 데려와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 지금껏 키워준 어머니가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들이다'며 예비 며느리에게 입양된 사실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없이 자상한 것 같다가도,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주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는 그에게, '얘가 왜 고집을 부리니, 아니라고 했는데 왜 여러 번 말하게 해.' 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은, 그를 낳은 친모가 아니기에 어쩐지 더 아프게 느껴지고, 그가 그 부탁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여름과 하진은 어떤 의미에서 참 많이 닮았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에 푹 빠질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가 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제 하진이 용기를 내어 여름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을 때,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가 중요해 진다.

누구보다 젠틀하고 따뜻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저 마음속 깊이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을 아프게 묻고 있고, 어쩌면 그래서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일종의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친동생도 무엇도 아닌 '안아림'이라는 아이가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 있어, 그를 신경쓰고 케어하고 싶어하는 그. 어쩌면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이런 과거와 아픔, 그리고 그가 짊어지겠다고 생각하는 부분까지도 함께할 수 있다고 여겨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런 자신을 아마도 여름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보육원에서 자라온 그 아이들만이 자신과 이런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제껏 하진이 여름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일 테니 말이다.

여름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태하와의 관계에서도, 또 지금도, 그녀는 아닌 것 같지만 실은 스스로에 대해 굉장히 방어적인 사람이다. 극중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다 알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라는 그녀의 대사가 말해주듯, 그녀는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와서 묻고 알아내주려는 상대에게만 자신을 오픈한다. 그렇게 다가오지 않은 상대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정말로 쿨해지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런 전개를 기대한다. 서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실은 이제껏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렀던 하진과 여름이 자신들의 상처를 내보이고 서로를 안음으로써, 좀 더 긴밀하고 견고한 연인이 될 수 있기를 말이다. 과거에 기회를 놓쳤고 이제서야 정신차린 태하와, 이미 하진에게 버려졌고 이번엔 짝사랑을 외면당할 아림이 안쓰러워지겠지만, 이미 5년 전 그들의 관계를 놓아버린 채 많이 시간이 지나왔고,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일은 없기를. 또 평생 미안한 마음의 짐이었던 여동생을 하진이 사랑하게 되는 전개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태하가 말했듯 상대를 의심하기 전에 그에게 내게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그래서 그걸 내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래본다. 좋은 관계는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가 아니라,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관계이니까.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 블로그 방문가기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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