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명절, 추석이다.

학교가 쉬는 것이 마냥 좋은 아이들부터, 가족들 먹일 음식을 하느라 종일 고생할 이 나라의 며느리와 어머니들, 치열하고 바쁜 회사에서 며칠 간이나마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는 직장인들. 모두가 기다려온 황금연휴. 그런데 이런 명절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까? 아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이들, 특히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을지 모르겠다.

   
 

한국의 결혼 풍토나 결혼에 대한 인식은 최근 많이 바뀌어 온 것이 사실이다.

2005년 여름, 당시 푹 빠져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분)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젊지도 않은 노처녀 뚱녀'라 소개된다. 많은 시청자가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녀가 젊고 잘생긴 레스토랑 사장인 '진헌(현빈 분)'과 연인이 되어가는 판타지같은 과정을 응원했지만, 사실 그 당시 나는 그녀에 대한 캐릭터 소개에 나와있듯,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나이 든 성숙미를 지닌 것도 아닌 심지어 성격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삼순이가 곱디 곱고 여린 옛 연인 '희진(려원 분)'으로부터 독종처럼 진헌을 빼앗으려는 게 못내 마음이 들지 않는 입장이었다.

   
 

희진 역을 맡았던 려원은 워낙 청초하고 예뻐 그때가 리즈시절이라는 말까지 듣곤 하는데,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불치병을 안고 홀로 떠나서는, 힘든 치료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는데,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했던 여자를 놓아버리고 새로운 그녀에게 갈 수 있는 건지, 그런 진헌이 이해되지 않고 잔인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당시 갓 스물을 넘었던 내가 아직 '나이 든 노처녀' 삼순보다는 희진에게 이입을 했던 것이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올해 초, 그 삼순이가 고작 '서른 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삼순을 떠올리면 아직도, '내가 되려면 멀고 먼, 나이 많은 노처녀'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녀의 나이를 넘어섰다는 것, 아니 그보다 극중 서른살인 그녀가 그런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 적잖이 충격이었다. '겨우 서른이었어?'라며 벙쪄있는 내게

모친이 '시대가 변했잖아. 그새 서른 정도는 노처녀가 아닌 나이가 되었지, 지금은 플러스 다섯 살 정도 하면 되겠다. 우리 딸은 아직 해당없어'라고 말해주어 조금 위로가 되었지만. 비록 놀란 딸내미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말은 현실과 아주 다르지 않다.

1990년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 27.8세, 여자 24.8세, 그리고 2005년에는 남자 30.9세, 여자 27.7세로 상승했고, 올해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조사해 발표한 평균 결혼 연령은 무려 남자 36세, 여자 33.4세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말이다.

어쨌든, 이런 통계치와 관련 없이 결혼 적령기를 맞은 이들은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언제 갈거니' 식의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기며 고달파하기 마련이다. 8월 말 첫 방송을 시작한 SBS의 리얼 버라이어티 '나의 달콤한 도시'에서는 이러한 압박에 시달리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청첩장을 받으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와 언제 결혼하겠다는 명쾌한 답을 내리지 않는 남자친구를 보며 서운하고, 그렇지만 그 말을 내 입으로 꺼내기는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그녀.

언젠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예쁘다고 말했던 그는 곁에서 없어지고, 그런데도 바삐 일하며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들이 보기에는 꽤 능력있는 전문직 여성이지만, 실은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고,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느라 바쁘고, 이런 와중에 대체 남자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니 싶어지는 그녀.

결혼이라는 것이 로맨스의 끝을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그녀의 이야기까지, 이 나이대의 한국 여성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주제가 결국 '연애,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데 이 '결혼'이라는 것의 본질이 대체 무엇이고, 꼭 해야만 하는 것인지, 주변에서 이렇게 압력을 행사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얼마 전, JTBC '비정상회담'에서는 '결혼'을 주제로 다루면서, 한국에서의 결혼 풍토를 바라보며 외국인들이 괴리감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이런저런 이슈들이 나오는 중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에서 현재 교제 중인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도, '결혼은 언제 할거냐'고 묻는 게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였다. 나조차도 그런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젖어 있었기에, 저 말을 듣는 순간, '아…저 질문, 실은 참 모순적인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겠다. 상대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결혼이란 아마도, '적절한 나이대가 되면, 결혼할 만한 적당한 남자를 만나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인생의 과제'라고 인식되지 않을까. 그리고 저 말을 이상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결혼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하다, 이 사람과 떨어지고 싶지 않고,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 때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시기가 스물이든, 서른 혹은 마흔이 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는 것이 된다. 그런 대상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혼이라는 게 이미 불가능한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흐르며 결혼에 대한 인식이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후자의 의견이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결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사회를 존속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사회적 제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늦은 나이에 결혼한다는 것은, 이미 결혼 제도의 본질과 멀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결혼은 단순한 사회의 장치임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이고 약속'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한 제도임을 떠나,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둘의 약속을 통해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는, 중요한 심리적 성장의 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내 짝이 될 이를 알아보고, 서로 향하는 그 마음이 같은 시기에 일치해 평생 다른 이 말고 두 사람이 함께하기를 약속하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런 짝을 찾은 기혼자 여러분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결국, 연애와 결혼은 선택의 문제다. 모든 것이 갖춰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전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내가 이것만은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아끼는 마음,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 취미와 취향, 인생에 대한 가치관, 인간에 대한 배려와 태도, 경제적인 풍요로움' 등 많은 요소 가운데, 내게 가장 중요하고, 설사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이것을 잡고 있다면 두 사람이 부부로서 맺은 약속을 놓지 않을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그 부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는, 얼마 전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 '하진'의 프로포즈가 꼭 와닿는다.

 

   
 

"니가 하루종일 공방에서 힘들게 일하다 집에 들어왔는데, 말이 엄청 잘 통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좋겠지? 그런데데 이 친구가 막차 시간이 되어도 안 가. 밤새워 놀아도 돼. 한 방에서 껴안고 자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 어머니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날마다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어딜 가도 같이 가. 그렇게 꼭 붙어다녀도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해. 난 그게 결혼이라고 생각해."

아무쪼록 타인의 시선과 은근한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과부하 되지 않는, 즐거운 연휴가 되길.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 블로그 방문가기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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