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그녀의 과거, 강태하. 5년을 만나 곁에 있는 게 당연해진 그녀를 지나치게 편안히 대했다.

그녀가 시무룩해도, 속상해해도, 나를 필요로 해도 '왜'냐고 묻지 않았고, 그녀와의 약속을 잊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그녀를 내버려두기 일쑤였다. 물론 당시의 그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있었고, 많은 일로 바빴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녀가 예민하고 괜히 불안해했던 것이 아니라, 태하는 실제로 변했었다. 가장 괘씸한 것은, 그가 변한 것이 이 관계에 대해 권태롭다고 느끼게 된 것이, 그녀가 자신을,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안감은 상대를 안달하고 걱정하게 한다. 그를 사랑해서 그에게 내주었던 마음이 그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결국 이 관계에서 더는 긴장감도 애틋함도 느끼지 않게 되어, 나를 그저 놔두어도 괜찮은, 그랬다가도 내가 언제든 손을 잡아준다면 금세 풀릴만한 여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니.

그 사실이 무엇보다 괘씸한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그녀를 잃어버리는 순간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가 그립고, 그녀의 빈 자리가 공허했으면서도, 그 감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 스스로의 약한 모습을 인정해야 할 테니까. '네가 없어졌다고 해서, 내가 멋있는 남자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데? 여자에게 차여? 내가? 너 말고도 세상에 여자는 많아.' 결국 더 사랑한 쪽인 그녀가 헤어지자는 말을 뱉어놓고도 다시 그를 찾아가 매달렸지만, 그는 돌아서지 않았다. 제고의 여지가 없다는 듯 칼 같이 그녀를 밀어냈다.

   
 

이게 무슨 사랑인가. 그는 자기애와 아집으로 똘똘 뭉쳐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남자이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나타나선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은 떠올리지도 않았던 여름을 우연히 마주한 이후,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를 보고 난 후, 예전에 너를 만났던 자신은 몰랐던 진짜 사랑을, 괴로움을 알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감동스럽기보다는 기가 차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사랑? 글쎄, 이건 소유욕에 더 가깝지 않을까. 물론 중간 중간 아이처럼 해맑거나 솔직하기도 하고, 실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여서 좋아하는 그녀가 사랑한다는 남자 앞에서 곤란할까, 그 중요하신 자존심 구겨지는 것도 참는 걸 보면, 가끔 안쓰럽고 모성애가 자극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남자는 아니다. 잃고 나서야, 내 것이 아닐 때에서야 그녀가 빛난다는 것을 아는 어리석은 남자이니까.

그녀의 현재, 남하진. 한 후배가 그랬다. 자신의 여자에게만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도 그런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다니, 그것만으로도 하진은 주인공 여름의 짝에서 탈락이라고. 그 눈빛은 '아련, 애틋, 미안'한 눈빛이지, 사랑하는 그녀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진의 편을 들었던 나이지만, 사실 그리 쉬이 넘어갈 문제만은 아니다.

그는 사랑을 안다. 이 명제는 일종의 딜레마를 제공한다. 사랑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 내가 사랑하고 지금 내 품에 있는 여자가 빛나는 것을 알고 아낄 줄 아는, 세심하고 자상한 남자. 그런 그는 안타깝지만 나 이외의 여자들에게도 매너있고 젠틀할 가능성이 크다. 워낙 훈훈하게 잘 큰, 정 많은 남자니까. 물론 그는 그건 사랑과는 다른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배려'라고 자신하겠지만, 아마도 그 배려를 착각해 사랑에 빠질 이들이 존재할 테고, 그를 사랑하는 여자로서는 충분히 불안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하진의 편을 들었던 것은,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반할지언정, 그에게 여자는 단 한명, '한여름'뿐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멋있고 탐낼만하지만, 그는 내 여자 이외의 대상들에게 기껏해야 '인간애' 정도를 발휘하는 남자인 거니까. 그런데 '안아림'이라는 아이를 찾으면서 이런 그가 조금 달라진다. 말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사랑하는 여름에게도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건 그래 백번 양보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포즈한 그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두 사람. 게다가 너희가 정말 피 섞인 남매인 것도 아니잖아. 이건 위험하다. 이러한 관계를 바람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성준은 이번 '연애의 발견'에서 '하진'이라는 캐릭터를 매우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가 필요해 3'의 연하남 고구마의 모습이나,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 어머니의 반대로 결혼의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어하던 '정훈'의 모습과 같이, 전작들에서도 그는 항상 '따뜻한 로맨틱 가이'를 연기했지만, 그리 어리지 않은 30대 나이의 전문직으로 돌아온 그는 '가이(guy)'보다는 '남자'에 더 가까워 보여, 훨씬 매력적이다.

다만, 이 매력은, 그와 '아픈 추억속의 그녀, 아림'의 관계가 이성으로의 감정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유지되겠지 싶다. 오래 함께해온 시간과 둘만이 공유하는 추억을 가진 관계를 각별히 여기는 정현정 작가의 작품이라, 어쩐지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 블로그 방문가기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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