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제개막작 안톤체홉의 <공포>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강익모] 공포! 안톤 체홉이 120년 전에 본 공포가 한국에 나타났다.

미세먼지와 친족살인, 연인데이트폭력, 실업률, 한국인의 공포와 닮은 백 년전, 또 그 이전의 공포와 두려움이 대학로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1890년 체홉은 사할린 섬으로 새로운 창작의 전기를 마련하러 떠난다. 그 여행을 바탕으로 <사할린 섬>을 발표하고 짙은 파도소리를 곁들인 <공포>를 펴낸다.

이들 작품들은 인간고뇌와 결코 고쳐지지 않을 시간이 만들어낸 개인들의 고집과 거스를수 없는 운명을 다룬다. 특히 희곡 다이얼로그의 주제들은 사회문제나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39회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공포>는 체홉 특유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특히나 상반되는 인물들의 공포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즉 두려움이라는 존재가 무서운 것만이 아니라 말 없음, 불신뢰, 도덕적 양심의 고통, 술주정뱅이의 치유하지 못하는 약점, 그리고 운명을 탈피하지 못하고 주어진대로 살아야 하는 단순함의 반복에 대하여 깊은 사색과 옳고 그름을 관객들 스스로가 발견하게 만든다.

 

그 사색과 발견을 위하여 비스듬히 누운 흰 나무들의 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저항하는 자태를 자연과 인간의 동일시로 보여주는 장치로 등장하며 이명소리를 통하여 고뇌하고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울부짖음과 동시에 나오는 것인지 알게 한다.

이를 차분히 증명하며 시편94편, 잠언, 이사야 등을 장마다 내세우며 극의 흐름을 구분하기도 한다.

극 중 대사인 "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왜 용서하는 것도 인간의 몫은 없는가?" 등은 <밀양>이라는 영화의 이창동감독의 집필에 의하여 전도연의 목소리로 다가온지 불과 몇 년 전이다. 다시 말하면 여전히 12년 전 체홉이 본 불안과 두려움의 공포는 오히려 더 거세고 잔인하게 우리를 할퀴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체홉역의 배우도 그렇지만 실제 피아노를 연주하는 마리의 연주는 체홉을 호명하고 더불어 악몽과 절규를 일깨우는 리얼리티 만점의 극중 장치중 하나이다. 오랜만에 보는 대극장 연극의 세트와 배우들의 허리를 곧추세운 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글] 문화뉴스아티스트에디터(ART'ieor) 강익모. 서울디지털대 문화예술 경영학과교수이자 영화비평가·문화평론가로 활동. 엔터테인먼트 산업학회 부회장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조직국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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