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의미와 재미를 모두 갖춘 작품이 만들어졌다.

뮤지컬 '앤ANNE(이하 앤)'은 극단 걸판에서 만든 작품으로 소설 '빨간머리 앤'을 극화하는 걸판여고 학생들의 극중극 형태를 띄고 있다.

'앤'은 츄리닝이 훤히 보이는 상태에서 가운이나 가발만으로 멀티 캐릭터를 표현하는가 하면 앤의 상상 친구를 표현할 때 비싸고 현대적인 표현으로 여겨지는 영상이나 소품을 쓰기보다는 배우들이 직접 옷을 들고 변신 로봇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컨셉트가 고교생의 연극이라는 극적 설정과 잘 녹아들어 프로덕션 퀄리티와의 세련된 합치를 이뤄낸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앤'은 연극성이 살아있다. 우리는 흔히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억 단위로 들어가며 티켓 값의 앞자리가 달라지는 장르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소박한 무대 언어로 만드는지에 대해 여타의 소규모 창작 초연 뮤지컬에게 한 가지 길을 제시한 셈이나 다름이 없다.

이야기는 '빨강머리 앤'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 가지 지점을 통해 관객에게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이야기는 모두 기승전결이 각 에피소드마다 명확하다. 앤은 행복하게 녹색지붕의 집에 왔지만, 자신이 불청객임을 깨닫고, 자신을 일꾼으로 부려먹을 다른 집에 갈 위기를 극복한다. 다이애나와는 처음 다니는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다 길버트와 사고를 치는 앤이 다이애나를 취하게 만들고, 우정을 잃게될 위기에 처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마지막에는 마을의 자랑이 된 성장한 앤이 은행이 파산하고 매슈가 죽는 괴로운 경험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낸다.

앤이 다이애나의 어린 동생을 구한 뒤 세 쌍둥이를 돌본 것에 감사하며 말하는 '어떤 것이 어떤 것의 토대가 되기도 하잖아요'나 졸업연설에서 말하는 '모퉁이를 도는 것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는 이야기는 명랑음악극으로 만들어졌으나 인문학적 감수성을 채우고 싶어하는 현대 성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들이다.

지금은 '빨강머리 앤'이나 '보노보노' 등 현대인이 놓치기 쉬운 것들을 다룬 이야기가 다시금 조명받는 시기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작품이 '성인이 볼 수 있는' 무대 예술로 만들어진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까.

지난 8월 31일 막을 내린 뮤지컬 '앤'은 자신이 여타의 작품과 다른, 'e'가 붙은 뮤지컬임을 증명했고, 관객은 전회 전석 매진이란 성적표로 보답했다.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라는 말이 나오는 공연계에서 '가장 의미있는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걸판이 작지만 의미있는 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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