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장기영 기자] [문화 人] 기세중 "팬텀싱어 벗어나 뮤지컬 배우로"…뮤지컬 '나폴레옹' 인터뷰 ①에서 이어집니다.

'팬텀싱어'에 같이 출연했던 박유겸과 같은 역할로 만났다. 서로 어떻게 다른 '앤톤'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ㄴ 제 '앤톤'이 더 나이가 많은 것 같다. 저는 생각이 많고 이것저것 무대 위에서 많이 하고 있어서 무너지는 것 자체가 덜 깊을 것 같다. (박)유겸 형 '앤톤' 보면 정말 귀엽더라. 저와 달리 '앤톤'이란 캐릭터의 정신연령을 좀 더 순수하게 잡고 있다. 그래서 무너질 때도 훨씬 착한 사람이 무너지는 느낌이 잘 보일 것 같다.

평소 겉모습을 사람들이 어리게 보지 않나. 그래서 더 그런 설정을 하는 건지.

ㄴ 배우한테 얼굴과 목소리에 갭이 있으면 캐릭터가 한정되는 것 같다. 그래선지 평소에도 어리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옛날에 한 음악감독님이 '너는 20대 때는 안 풀릴 수 있다'며 '천천히 계속 열심히 연습하면 언젠가는 빛이 온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게 생길 거라고 하시더라. 실제로 현장에 나왔을 때 제가 가진 이미지, 성격, 보이스가 모두 따로 논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앤톤'이 그런 면에서 좋았던 건 대본 상에서 공허한 캐릭터라 오히려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았다.

 

'집들이 지침' 때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때 인상적인 게 '보도지침' 전부터 법이나 정의,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했던 부분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ㄴ 제 생각은 원래는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 법인데 지금은 강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많이 만들었다. 저는 오디션 볼 때 자유독백을 중요시한다. 어떤 작품의 장면이 아니라 제가 평소 생각하는 것들을 모아서 독백을 하는데 그 내용이 주로 주인공이 어렸을 때 불우한 환경을 겪으며 자란 뒤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하는 말이다. 배심원들한테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다. 사람들은 날 이렇게 괴롭혔다. 나는 나만의 법 안에서 저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 사람을 죽였다. 내겐 그게 정의다. 그런데 지금 법이 나를 심판하고 있다'는 독백. 연기지만, 내가 하고픈 말이다. 각자가 지닌 정의가 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법 자체는 정말 허점이 많기에 각자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이렇게 어떤 것이 정의고,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정답인지 생각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신호등 앞에서 '나는 왜 빨간 불에 움직이면 안 될까?' 생각한다. 그건 '내가 이걸 지키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누군가 다칠 수도 있으니 지켜야 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뭐든지 나 스스로 '왜'가 충족 안 되면 움직이기 힘들다. 그래서 이미 캐릭터가 완벽히 잡혀있기 때문에 그걸 따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공연은 안 하고 싶다. 이미 여러 번 공연해서 캐릭터가 잡혀있던 작품의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단체 생활할 때도 막연하게 '이건 이래야 돼'하는 지시도 잘 따르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교도, 군대도 정말 힘들었다. 군대에선 부조리하다 싶은 건 바꿀 수 있는 선에서 다 바꿨다.

예를 들면 어떤 걸 바꿨는지.

ㄴ 부대 내에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저는 헌병이었는데 일병 때 식당에 아무도 없으니까 카세트 놓고 연습하고 싶었다. 중대장을 찾아가서 허락을 맡고 바로 식당서 연습했다. 선임들은 무척 싫어했다. 학교 다닐 때도 선배들이 설명을 하지 않고 강압적 태도로 대하면 오히려 잘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저를 보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우가 된 후에도 그랬다. 막내가 청소하고 그런 것은 저도 그게 편해서 곧잘 했는데 '무조건' 가야 하는 회식 같은 건 싫었다. 처음에는 선배들이 좋고 친해지고 이야기 많이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회식에선 친해지기 힘들더라. 저는 사람들이 '이타적 개인주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위하고 피해주지 않지만, 나도 내 할 것만 하면 된다는 마인드.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친함을 강요하고 단체생활을 강요한다. 물론 효과는 있다. 사람은 강제로라도 모아놓으면 이야기가 생기고 친함이 생긴다. 그래도 거기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가만히 두면 세상은 생각보다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윗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싫다. 그래서 오히려 연출님, 대표님, 감독님 이런 분들께 오히려 친근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도지침' 때도 '저를 인기나 화제성으로 보지 않고 다음에도 캐릭터와 맞으면 쓰고, 아니면 쓰지 말아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친해진 분들께도 꼭 말한다. 친분으로 캐스팅되고, 실력 외의 것으로 배우 생활하면 창피할 것 같다. 그걸 느끼면 배우 생활도 그만두게 될 것 같다.

'보도지침'을 하길 잘한 것 같다. 오세혁 연출이 배우들을 자유롭게 두는 편이지 않나.

ㄴ 오세혁 연출은 정말 이런 생각을 존중해주고 좋아해줬다. 저는 핸드폰에 갑자기 생각나는 말이나 좋은 글귀를 저장하는데 제일 처음에 '빠르지 않아도 좋으니, 내 걸음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 풍경을 보고서라도 걷고 싶다'고 써뒀다. 뛰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뛰다 지치면 멈출 것 같다. 그래서 연기도 조금씩 바꿔보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작품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 같다. 하루라도 다르게 살고 싶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만 두지는 않는다. 오늘과 내일을 똑같게 만들려고 하거나, 울타리를 만들어 놓는다. 요즘 즐겨보는 책이 '사피엔스'라는 책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이야긴가?

ㄴ 책 이야기 하니까 평소에 많이 읽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웃음). 어쩌다 보니 읽고 있다. 그 책에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형태는 250만 년 전에 다 만들어 졌다고 나온다. 언어는 욕이나 거짓말을 하려고 만들어 졌고 대부분의 생활 방식은 250만 년 전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거다. 그걸 깨는 게 우리가 해야 되는 일 아닌가 한다. 옛날과 똑같이 살면 재미없지 않나.

 

이야기를 돌려서 '히스피아노 온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배우 기세중이다'라며 소개한 적이 있다. 실제로는 뮤지컬을 줄곧 해왔는데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는지.

ㄴ '맨오브라만차'를 보면서 꼭 뮤지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충격이었다. 노래가 아니라 그 안에담긴 말 때문이다. 대극장에서는 대사의 힘이 많이 세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세르반테스'는 그 사람의 신념이 정말 잘 드러난다. '집들이 지침' 콘서트 때 (고)상호 형이 했던 게 제일 좋아하는 독백이다. 그외에도 '맨오브라만차' 전체가 예쁜 동화 같다. 제겐 가장 완벽한 뮤지컬이다. (홍)광호 형도 정말 좋아한다. '맨오브라만차'를 다섯 번쯤 본 것 같다. '데스노트' 때 만나서도 '맨오브라만차' 다시 안 하냐고 물었다.

아직 '배우 기세중' 보다는 '팬텀싱어 기세중'이 대중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있다. 배우로서 꼭 만나고 싶은 작품은?

ㄴ 하고 싶은 작품은 많다. 그 중 연극에서 꼽자면 '사이레니아'의 아이작 다이어를 하고 싶다. '사이레니아'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준 작품이다. 좁은 공간에서 단 둘이 나와서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대체 이들이 인간인가, 귀신인가, 대체 누군가 하면서 끝나는데 배우로서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앤톤'이 좋은 게, 마지막에 다 쏟아낸다. '세르반테스'는 제 꿈의 캐릭터다. 대사의 힘이 정말 세고 그가 가진 신념도 저와 비슷한 게 많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스프링 어웨이크닝'. '어쩌면 해피엔딩'도 하고 싶다. 그리고 '보도지침'을 무척 다시 하고 싶다.

'팬텀싱어 시즌1'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물밀듯 러브콜이 밀려왔을 것 같다. 어땠나 당시에?

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과 후의 차이는 확실히 있다. 여러 가지 왔었고 '보도지침'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럼 여러 작품을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한 작품씩 하는 이유는?

ㄴ 저는 한 번에 하나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배우는 게 느리다. 제가 이해할 때까지 잘 못한다. 항상 그게 정리가 완벽하게 되는 시기가 4주 정도다. 그 뒤엔 제가 하고픈 걸 많이 만들어 간다. 그전까지는 '과연 기세중이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받는다. '보도지침' 때도 형들이 많이 걱정 했었다. 처음부터 센스 있게 잘해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스크린이나 드라마 쪽 나가기 두려운 게 템포가 정말 빠르다. 제가 해결해야 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경험 부족일 수도 있고, 성향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작품, 이해할 수 있는 극을 하자고 생각한다. 의미 없는 대사가 담긴 극을 하고 싶지 않다. 작품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면 제게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보다 더 멋있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맞다. 저는 어떤 캐릭터를 멋있게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다.

 

'팬텀싱어' 경연 동안 매주 다양한 조합을 경험했던 참가자 중 한 명이었는데, 가장 케미가 잘 맞았던 조합이 있다면?

ㄴ 저는 싱어를 꼽으려면 동현이 형(록커 곽동현). 이번 '뮤직 오브 더 나잇' 콘서트 할 때도 동현 형과 제가 멜로디, 동현 형 화음을 했었다. 가수들 중엔 함께 노래해도 에너지를 제게 전해주지 않는 분들도 있다. 저는 배우라서 그런지 상대가 에너지 주면 저도 같이 받고 더 에너지 주고 그러는 편인데 동현 형은 그걸 잘한다. 하기 전에 미리 보고 말하지 않아도, 그냥 무대에서 눈으로도 교감을 나눈다. 끝나고 나면 정말 좋다. 혼자 하고 나면 허해지는데, 동현 형과 하면 좋아진다.

그런데 '배우'가 되면 앞서 말했던 것 같은 어떤 자유로운 삶을 살기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는데.

ㄴ 아직은 불편한 것 없다. 무대가 아닌 곳에서 관심 받는 것도 좋아한다. 사진 찍어드리고 싸인 해드리는 것 정도는 좋다. 예전에 '팬텀싱어' 때, 크리스마스에 고기를 먹는데, 어떤 분이 팬이라고 싸인 요청해주셔서 해드렸는데, 그 분 남편께서 “개인시간에 귀찮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고기를 계산하고 가셨다. 정말 고맙더라. 배우들은 타인의 관심으로 사는 사람이라 저는 감사하다.

배우들이 그런 대중의 관심을 다시 돌려줄 방법이 많지는 않다.

ㄴ 연말에 공연 없으면 작게 극장 빌려서 팬미팅하고 싶다. 하고 싶은 뮤지컬 씬을 만들어 연기, 노래해보고 싶다. 저를 보러 온 분들에게 정성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것조차 누군가는 '세중이 스타 됐네' 하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폴레옹' 보러 올 관객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굉장히 배우들의 힘이 센 작품이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고 숨 쉬는 것에 호흡해주시면 분명히 만족하는 공연을 얻어가실 수 있을 거다. 어떤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면이나 '탈레랑', '조세핀'과의 삼각관계에만 주목하기보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면, 내면의 생각을 보며 그 사람이 어떤 에너지, 감정으로 살아가는 지 보면 3시간 동안의 극을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제 생각엔 한 번 공연에 한 캐릭터씩 집중하셔도 좋다. 재관람 환영한다(웃음). 많이 봐주시고 많은 비평, 칭찬 남겨주시면 저희 작품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기세중은 이번이 첫 단독 인터뷰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팬텀싱어' 출연진들과 함께 단체 인터뷰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만큼 '팬텀싱어'의 그림자에서 당장 벗어나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눠본 그는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나 한없이 순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그가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삶의 굴곡을 겪어가면서도 그 색깔을 잃지 않기를 바랬다. 그의 '앤톤'이 어떻게 변할지, 그가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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