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고 사는 당신에게, '너'에만 집중하는 우리 모두에게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을 극장가에서 접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극장가에서 막을 내린 후, 한참이 지나서야 출시된 DVD로 접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기간 내에 '찾아'봤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달까. 주변 사람들에게 고전이 아니면 영화추천을 하지 않았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른들이 꼭 봐야 하는 동화였다. 혹독한 현실에 지쳐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던 '어른'들에게, 내 내면의 소리를 잊고 사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해왔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나'의 내면을 객관화시켜 바라본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전부가,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 등의 캐릭터화된 내면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작용의 산물이라고 얘기한다. 흥미롭게 표현된 상상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지난 2월에 봤던 연극 하나가 떠올랐다. 두산아트센터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고달픈' 방식으로 표현했다.
 

ⓒ 두산아트센터


바로 연극 '브레인 컨트롤'이다.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기관들이 있다. 두뇌부, 신체부, 마음부 등. 이중 연극이 주목하는 기관은 두뇌부이다. 인턴사원인 '나'의 에피소드들이 두뇌부 속 조직원들의 작용에 의해 재밌게 풀이된다는 점이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매우 비슷하다. 영화와 연극의 공통점은, '나'라는 존재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저런 존재였구나, 이런 존재였구나, 하며 깨닫는 순간들은 비로소 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들이다.

사는 것이 뭐가 그리 바쁜지 이 세상 수많은 '나'들은 스스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모두 '너'에만 주목하고 신경 쓴다. 그리고는 정작 '나'라는 존재를 소외시킨다. 그래서 연극 '브레인 컨트롤'과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정말 귀하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를 사유한다는 것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사유는 각자의 정체성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뿌리가 단단한 나무야말로 거센 비바람에도 굳셀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연극과 영화가 다른 점이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애니메이션답게 고난과 역경의 순간을 통해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소소한 일상들을 통한 행복을 결말로 보여준다. 그러나 연극 '브레인 컨트롤'은 인턴사원의 자살로 끝이 마무리된다.

                                    "쉬어야 한다는 건 알아. 근데 누가 쉴 수 있지?"

두뇌부 조직원 중 한 명의 대사이다. 조직원들이 모여 '나'를 이루지만, '쉰다'는 행동에 대해 쉽게 타협할 수 없다. 마음부와 신체부는 '나'가 쉬어야 함을 강력히 어필하지만, 두뇌부는 지독한 취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대 쉬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나'의 분열이다.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여러 조직들이 반드시 행복한 화합의 결말을 유도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은 갈등할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분열할 수도 있었다. 연극은 그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 이제, 나의 정체성이 분열되기 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시간들이 꼭 필요하겠다. 반드시 말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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