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악극보존회의 임 규 작 이상용 연출의 악극 꿈에 본 내 고향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임 규는 지난 80년 극단 '춘추'에 입단해 지금까지 무대밖에 모르는 배우이다. 그런 그가 외도 아닌 외도를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작품 '메뚜기 한 마리 쇼윈도에 부딪혀 마네킨을 웃겼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되면서 그는 '배우 겸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임 규는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묻자 "막연히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배우로서 좋은 연기를 위해 대본을 유심히 분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본업인 배우활동 때문에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힘들었지만 일 년에 한편씩은 꼭 쓰자는 생각으로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 왔다고 한다. "배우이다 보니 문학성 보다 연극성이 부각되는 글을 쓰게 되는 것 같고, 두 가지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본을 보다 보면 현학적이거나 문어체가 더러 있어 발음이 쉽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난 배우이다 보니 글을 쓰면서 직접 읽어보고 무대에 올릴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며 "내 글을 읽어 본 배우들이 '입에 딱 붙어서 좋다'고 말한다"고 했다. 임 규는 6개의 작품이 실린 희곡집도 냈다. 임 규에게 붙는 작가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상용은 배우이자 작가 겸 연출가로 극단 새벽의 대표다. <광대와 충동> <별을 수 놓은 여자>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 <간사지> <꿈에 본 내 고향> 그 외의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 또는 연출을 했다.

1930, 40년대에 활발한 공연을 펼쳤던 악극은 당시 전성기를 이루었다. 1950년대 6 25 동란 중에도 전방에서는 병사들을, 후방에서는 피난민들을 위한 악극공연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피난시절 악극단들과 군 예대는 문화적으로 공동화(空洞化)된 서울보다는 피난민들이 모인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 활동은 전전(戰前)의 것을 반복,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공연은 계속되었지만 새로운 창작물은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후에는 악극이 영화나 여성국극, 그리고 각종 쇼 등의 다양한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서울의 중앙 무대에서 차츰 사라지게 된다.

1950년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악극단은 전옥이 이끄는 백조가극단이었는데, 이 단체는 1930년대 <화류비련> 같은 통속적 신파극의 영향 아래 여주인공의 수난을 부각시켜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는 <노래하는 신파비극>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백조가극단처럼 전쟁 중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악극단들도 전후에는 흥행의 부진 속에서 <버라이어티 쇼>를 첨가하는 등의 자구책을 탐구했지만, 결과는 악극의 퇴조만 더욱 가속화시켰을 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악극단 출신 연예인들이 대거 영화나 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관객들은 새로 등장한 대중연예들로 눈을 돌리면서, 악극은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노스탤지어'로 호명될 뿐 빠르게 잊혀져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극단 가교를 비롯한 몇 개 극단에서 악극공연이 이루어지고, 현재는 한국연극배우협회와 한국악극보존회에서 대도시 및 지방순회를 통한 악극공연이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관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음은 주목할 일이다.

 

<꿈에 본 내 고향>은 일제강점기 한적한 농촌 마을 김 진사 댁 딸 순이의 가슴 아픈 인생을 그리고 있다. 경성에서 유학 중인 결혼을 약속한 철민과 순이는 방학을 맞아 해후하지만, 순이를 짝사랑한 일본인 가네야마의 음모로 철민은 독립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되고, 순이는 필리핀 일본군위안소로 끌려간다.

참담한 위안부들의 생활이 그려지면서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고, 나라는 해방이 되지만, 가네야마를 비롯한 친일파는 별 탈 없이 제1공화국 국민이 된다. 위안부노릇을 한 순이와 장애인이 된 철민은 고향을 찾아온다. 그러나 곧 이은 6 25전쟁의 발발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많은 사람들이 남으로 피란을 가게 되고, 피란지에서의 생활상이 묘사가 된다. 휴전이 성립되고 나서야 순이와 철민은 고향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나 순이는 위안부노릇을 했던 자격지심과 죄책감 때문에 부모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악극단에서 단원노릇을 하게 된다.

한편 철민은 유흥업소의 여종업원들에게 여전히 가증스러운 짓을 하는 가네야마를 보고 곧바로 살해한다, 순이와 철민은 바로 그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곧바로 철민은 체포되어 끌려가니, 순이는 악극단을 떠나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향한다. 그리운 집 앞 서낭당에서 순이는 자신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숨어서 보게 된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타나 어머니가 치성 드리는 소반을 걷어차며 순이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다시는 치성을 드리지 말라고 호령을 한다. 어머니가 소반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자 아버지는 소반에서 떨어진 대접을 서낭당 앞에 가져다 놓고 딸의 안위를 기원하며, 세상이 위안부노릇을 한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보게 될 때까지 순이가 결코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원을 한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 역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순이는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을 펑펑 흘리며 통곡을 하듯 꿈에 본 내 고향을 열창을 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전원주, 이대로, 심양홍, 황범식, 박선주, 나기수, 최성웅, 최서연, 나재균, 이창익, 김명자, 유지연, 박진희, 김재훈, 강신구, 우정환, 김태훈, 김혜영, 조민지, 남현주, 박문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혼신을 다한 열연과 열창 그리고 무용은 관객을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한국악극보존회 회장 허연호, 제작 유승봉, 임 규 작, 이상용 연출의 악극 <꿈에 본 내 고향>은 연출가의 기량과 출연자들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악극 <꿈에 본 내 고향>을 친 대중적이자 연극성이 갖추어진 감동만점의 수준급 악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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