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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3,745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도 3만 2,886달러보다 2.6% 증가했으나 7년째 3만 달러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 한국의 GNI는 2017년 3만 1,734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선진국 문턱’이라는 3만 달러를 돌파한 뒤 2021년 3만 5,523달러를 정점으로 7년 연속 ‘3만달러 박스권’에 갇힌 채 제자리걸음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는 요원하기만 하다.

2022년에는 3만 2,886달러에 그쳐 20년 만에 대만 3만 3,299달러에 추월당했다가 안정된 원·달러 환율 덕에 다시 1년 만에 근소한 차이로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통계청이 지난 2월 29일 발표한 1인당 GNI는 3만 3,299달러였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1.1% 상승했지만 대만 달러화 환율은 4.5% 상승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3만 5,000달러를 넘어 최고조였던 2021년 3만 5,523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후퇴한 상태다. 최근 환율변동성이 다시 커지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기조도 장기화할 전망을 감안해 성장동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국민소득 4만 달러, 나아가 5만 달러를 앞당기는 데 정책 역량을 총 집중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5일 발표한 ‘2023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미 달러화 기준으로 전년 3만 2,661달러보다 2.6% 증가한 3만 3,745달러를 나타냈다. 원화 기준으로는 4,405만 1,000원으로 전년대비 3.7% 증가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국민 총소득을 추계 인구로 나눠 구한다. 다시 말해 국민총소득은 한 나라 국민 전체가 국내와 국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이다. 이를 통계청 추계 인구로 나눈 1인당 GNI는 국민 생활 수준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다만 달러화로 환산되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 시 감소하게 된다. 2017년 3만 1,734달러를 기록한 1인당 GNI는 2018년 3만 3,564달러까지 늘었다가 코로나19 충격으로 2019년(3만 2,204달러), 2020년(3만 2,004달러) 연속 뒷걸음쳤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예상 수준에 부합하고, 원화값 낙폭이 줄면서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이 증가한 결과 대만에 역전한 것이다. 한국 GNI가 처음 3만 달러를 넘었던 2017년부터 작년까지 연평균 증가율이 1.03%인 만큼 소득이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040년에야 4만 달러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올라가는 데 무려 23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뒤 3년 만에 4만 달러로 직행했는데 유독 한국만 3만 달러대에 멈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4분기와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전기 대비 0.6%, 전년 대비 1.4% 성장했다. 1월 발표한 속보치와 같은 수준이다. 다만 속보치 추계 때 이용하지 못했던 자료를 추가 반영한 결과, 4분기 건설투자(-0.3%포인트)는 하향됐고 수출(+0.9%포인트)과 수입(+0.4%포인트), 설비투자(+0.3%포인트) 등은 상향 수정됐다. 따라서 작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1.4% 성장했고 1인당 국민 총소득(GNI)은 2.6% 늘어 한화로 약 4,405만 1,000원이다. 이는 국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인당 GNI는 원화 기준으로 2006년 2,076만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2,000만 원대에 진입했고, 2014년 3,080만 원으로 3,000만 원을 넘어섰다. 이어 2021년에는 4,066만 원으로 처음으로 4,000만 원을 돌파한 후 2022년에는 4,249만 원을 기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만과의 비교가 아니다. 장기 저성장세 고착화의 긴 터널에 갇힌 한국 경제가 언제까지 3만 달러 초중반을 오르내릴 것이냐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초저출산율에다 가파른 고령화로 너무 빨리 늙어가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냉철히 보면 ‘3만 달러의 늪’에 빠져든다는 우려가 커진다. 기형적 인구구조만 탓할 일이 아니다. 수출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다해온 반도체산업에 스며드는 위기감을 비롯해 주력 산업 전반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AI 경제’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첨단화·고도화 경쟁에서 미래 생존을 기약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생·고령화가 진행 중이어서 더 늦기 전에 미리미리 국민소득을 키워놓을 필요가 절실하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용을 감당하려면 경제 규모를 늘려 재정을 확충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을 예로 들면 1992년 처음 명목 GNI 3만 달러를 달성한 뒤 3년 만인 1995년 4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 뒤로 ‘잃어버린 30년’ 경기 침체와 고령화를 겪은 결과 아직도 1995년 수준에 GNI가 머물러 있다. 따라서 사회·경제적으로 비효율을 제거하고 정치와 행정 시스템을 과감히 혁신하면서 총체적 구조개혁을 서둘러 해나가야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5만 달러로 나아갈 수 있다.

단기간에 소득을 확 키울 마법은 없다. 하지만 규제를 풀어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자본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노동개혁과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경제 성장을 가속할 수 있다. 기업의 생산성 혁신 등 자발적 산업 구조조정이 중요하지만 이를 유도해낼 대대적인 규제 혁파와 공공의 효율화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지금이라도 고도 경제의 초석을 다지지 못하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처럼 재정위기를 겪은 만성 저효율 국가보다 못한 나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인 맥킨지앤드컴퍼니가 지난해 10월 19일 아시아 미디어데이에서 한국의 장기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S-커브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커브’는 성장을 시작하면서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다시 정체되는 순간을 겪는 곡선의 모양인데 중화학공업 기반의 첫 번째 S-커브, 첨단 제조업 중심의 두 번째 S-커브에 이어 제3의 S-커브를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 전환과 바이오, 모빌리티 산업 등에서 초격차 기술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동안 맥킨지는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변곡점마다 경제 분석보고서를 통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맥킨지는 지난해 말 한국 경제를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빠졌다고 비유했다. 중대한 위기가 닥쳐오는데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며 해결책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10년 전인 2013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한국 대표가 ‘2차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 · 위험을 맞고 있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한국 경제를‘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해 경종을 울리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그 개구리가 이미 반쯤 익었다”라고 경고한 것이다. 풍자적 비유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구조개혁을 게을리한 탓에 한국 경제의 정체가 중증(重症)인 만성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중국 특수에 취해 구조개혁을 미뤄 10년을 허송세월했다”라고 했던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진단이다. 성장과 도약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뻔히 보이는 저성장 침체의 길로 가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게 여겨진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맥킨지는 한국 경제가 지금부터 제3의 도약을 향한 과감한 구조개혁을 펼친다면 2040년에는 매출이 1,000억, 100억, 10억 달러 이상 기업이 각각 5개, 20개, 100개 이상 추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통해 2040년 1인당 GDP 7만 달러 시대 달성을 통한 세계 7대 경제 강대국 진입도 가능하다고 봤다. 이 길로 가려면 고비용·저효율의 낡은 규제부터 과감히 그것도 서둘러 걷어내야 한다. 이를테면 현재 국내에서는 15개 시도에 25개의 바이오클러스터가 분포돼 있는데 전국에 산재한 상태로는 경쟁력이 없다.

김주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생명기초사업센터장은 지난 2월 27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열린 한국기술혁신학회 제1회 기술혁신포럼에서 ‘바이오클러스터 운영체계 개선을 위한 효율화 전략’이란 발표를 통해 “지금처럼 바이오클러스터가 지역별로 지나치게 난립, 산재하면서 역할과 관리 비효율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클러스터간 연계·협력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수도권에 결집(結集)시켜 미국 보스턴에 맞먹는 수준으로 키워야 하는데 수도권 규제법이 가로막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2%대에 머무는 등 성장동력 자체도 저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0~5.2%에서 2021~2022년 2%로 20년 만에 절반 넘게 줄었다. 향후 생산가능연령(15~64세) 인구가 줄어들 경우 잠재성장률은 앞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 방향회의 이후 진행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 정도로 보고 있다.”라며 “고령화 문제를 잘못 다루면 잠재성장률이 음(-)의 숫자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월 저출산에 대한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추세 성장률이 2050년대에는 68%의 확률로 마이너스(-)를 보일 것으로 추산됐다. 나아가 2060년대에는 80%의 확률로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다. 분배 측면에서도 세대 간 불평등 수준이 높은 고령층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제 전반의 불평등도가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무엇보다도 ‘연구개발(R&D)’ 예산 합리화 등 재정과 세제 개혁, 공공부문 군살 빼기도 시급하기 그지없는 핵심과제다. 지난 2월 29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26일 ‘R&D 구조개혁 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용역 공고를 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담긴 ‘미래세대 비전 및 중장기 전략을 마련’ 방침에 따라 R&D 쪽도 들여다보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라고 말했다. 올해 정부가 편성한 R&D 분야 예산은 2023년도보다 2조 5,000억 원(7.9%) 감소한 26조 5,000억 원으로 과학계에선 인건비가 깎이고 연구가 중단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게다가 원화값도 적정 수준을 회복해야만 한다. 원화값은 코로나19 위기 때 급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팬데믹 이전 환율을 적용한다면 달러 환산 GNI는 3만 9,000달러에 달한다. 물론 원화값이 오르면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지만, 통화가치를 희생하면서 수출에 의존하다 보면 수출이 늘어도 국민소득은 3만 달러대를 맴돌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의 에너지는 결국 사회적 대타협이 뒷받침될 때 배가된다. 앞으로도 저성장 기조와 원화 가치를 둘러싼 불확실성으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목표로 삼은 ‘임기 내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까진 해결할 과제가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로 더 적극적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국가적 대장정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심층 분석한 ‘리스트업(List up)’을 통해 이것부터 타파하는데 정부 역량을 집주(集注)하여 국민소득 증대에 총력 경주(傾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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