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봄이 와서 꽃 피는 게 아니다
꽃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긴 겨울 찬바람 속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하면서도
기어이 새 움이 트고 꽃 핀 것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고 있던
봄을 데려오기 위함이다

골방에 처박혀 울음만 삼키고 있는 자여,
기다린다는 핑계로 문을 잠그지 마라
기별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될 일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와야 할 누군가가
대문 밖 저 너머에 있다

내가 먼저 꽃 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문 열고 나서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다
끝끝내 추운 겨울이다

이정하 시인 <봄을 맞는 자세 2>

봄 맞이 꽃
봄 맞이 꽃

언젠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로 연애시(戀愛詩)를 쓰는 이정하 시인은 시적(詩的) 표현이 매우 감상적(感想的)이고 애절하지만  끈적거림이 느껴져 그닥 내 취향은 아니다." 

그동안 나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정하 시인의 작품은 깊은 예술성보다는 감정의 말초(末梢)를 건드리는 것 같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이정하 시인의 시에 자주 눈이 가는 것을 보니 강 건너 봄이 오듯 아마도  먼 곳으로부터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제 이 봄 손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문을 열고 나서야 겠습니다. 모처럼 봄을 맞이하는 내 마음에 벌, 나비도 함께 찾아와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송길자’ 작시, ‘임긍수’ 작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이라는 우리 가곡을 소개하려 합니다. 

강 건너 봄이 오듯 
강 건너 봄이 오듯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 마을에 내리누나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꺼나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없이, 그리움 말없이 
말없이 흐르는구나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꺼나 
새 소리 바람 소리 물 흐르듯 나부끼네 
물 흐르듯 나부끼네“ 

그런데 실제로 이 노래의 가사는 시조 시인(詩人) ‘송길자’가 쓴 <소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시조 에서 온 것인데 이 시조를 가곡 가사로 KBS에 보낼 때 제목을 <강 건너 봄이 오듯>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원래의 시조인 <소식>의 가사를 소개합니다. 

”앞 강에 살얼음이 풀릴 때쯤이면 
나뭇짐을 실은 배가 새벽안개 저어왔네 

삭정이 청솔가지 굴참나무 가랑잎 덤불 
한 줄로 부려놓은 지겟목 쇠바릿대 위엔 
연분홍 진달래도 한 아름씩 꽂고 와서 
강 건너 봄, 그 우련한 빛을 
이쪽 강 마을에 풀어 놓더니 

오늘은 저문 강을 뗏목으로 저어와 
내 마음 어둔 골에 봄빛을 풀어놓네 
화사한 꽃 내음을 풀어놓네“ 

그동안 KBS는 오랜 세월 꾸준히 시인들로부터 시를 받아 작곡가들에게 가곡을 의뢰해 왔습니다. 

어느 날, 작곡가 임긍수에게도 예외 없이 의뢰가 갔습니다. 송길자 시조 시인의 '소식'이라는 시조를 가곡으로 작곡 해 달라는 의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조는 하나의 노래로 만들기에는 좀 길었습니다. 노래는 반복 리듬이 중요한데 이 시조는  반복이 없는동절 시조였습니다.

임긍수는 고심 끝에 이 시조의 내용을 1, 2절의 노랫말로  '리메이크(Remake)‘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에 멜로디를 붙였습니다. 우리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노래입니다. 

이제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이 가곡은 예술성이 높은 매우 훌륭한 명곡입니다. 

우리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로 들으시겠습니다. 

볼륨을 한껏 높히고 음악에 한 번 취해 보시죠.

송길자 작시, 임긍수 작곡 소프라노 조수미

어떻습니까? 멋지다는 표현을 넘어 봄기운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듯한 노래에서 감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물론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조금 아쉬웠고 코다(Coda) 부분의 마지막 고음이 발성적으로 '비브라토'가 약간 고르지 못했지만 곧 호흡으로 다시 조정하는 모습에서 노련함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평소 모습보다는 노래하는 모습이 대단히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싹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싹

앞서 [내 마음에 봄]이 찾아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좀 이른 감이 있다구요? 어디 ’마음의 봄‘이 4계절 순환의 법칙만을 따른답니까? 세상이 꽁꽁 언 추운 겨울에도 [내 마음의 봄]은 찾아온답니다. 

봄이 찾아오기엔 세월이 너무 흘렀다구요? 아무리 그루터기만 남았어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거기서 싹이 돋고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봄노래와 함께 <강 건너 봄이 오듯> 우리 모두가 [내 마음의 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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