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격화와 유럽과 중동 두 개의 전쟁 그리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글로벌 산업지도가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반도체 산업과 중국 수출 중심의 기존 성장 전략이 한계상황 봉착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99억 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22년 477억 8,000만 달러보다 액수가 크게 줄었지만 2년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1월 1일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전년 대비 7.4% 감소한 6, 326억 9,000만 달러(821조 8,643억 원), 수입은 12.1% 감소한 6,426억 7,000만 달러(834조 8,283억 원)를 기록했다.

정부는 당초 2022년 대비 4.5% ‘수출 플러스’를 달성하겠단 목표를 세웠지만, 원인은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반도체 산업의 침체와 중국의 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수출이 부진했던 탓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23.7% 감소한 986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게다가 바이오헬스·석유화학·디스플레이 등 주력 품목들이 줄줄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무역수지 최대 흑자국이었지만 중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한·중 관계 등이 나빠지면서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급감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한국은 지난해 대중국 수출은 20%나 줄어든 반면 수입은 소폭 감소, 중국과의 교역에서만 180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적자를 낸 건 1992년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2018년 556억 달러에 이르던 흑자 규모가 쪼그라들더니 지난해에는 전체 무역 적자의 1.8배인 180억 달러나 적자를 본 것이다.

더구나 그 규모도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중국이 사실상 최대 무역 적자국으로 변한 것이다.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늘었다. 지난해 12월 대미국 수출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대중 수출까지 추월했다. 월간 기준 미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에 오른 건 2003년 6월 이후 20여 년만이다. 연간 단위 수출 비중은 아직 중국이 19.7%로 미국의 18.3%보다 크지만, 한때 10%포인트도 넘었던 격차를 감안하면 자리바꿈은 시간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445억 달러의 흑자국이 된 것도 21년 만이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의 ‘리오프닝(Reopening │ 경제 활동 재개)’ 뒤 경제가 정상화하고 무역 적자가 개선될 것이란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아예 빗나갔다. 중국의 산업구조 전환에 안이하게 대응한 결과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의 성장은 한국에는 축복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해야 한다. 31년 동안 줄곧 한국 수출의 ‘캐시 카우(Cash cow │ 수익 창출 젖소)’였던 중국이 어느새 가장 큰 손해가 나는 시장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신한 건 한국이 석유화학을 비롯해 중국에 내다 팔던 중간재 분야에서 중국이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해 중간재의 자립도를 높이면서 한국 중간재를 수입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중간재를 팔면서 한국 시장을 빼앗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역 파트너에서 라이벌로 변신한 중국과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할 판이다.

중국에 비해 자원과 인구에서 크게 뒤지는 한국으로서는 믿을 수 있는 건 오직‘혁신’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중국에 뒤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으니 충격과 함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중국 내 반도체 기업에 전방위적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자국 반도체 구매 시 대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 내 상위 20개 기업이 2019년에 받은 정부 보조금이 총 18억 9,642만 위안(약 3,280억 원, 기업당 160억 원 규모)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큰 최소 1,000억 달러(130조 원) 규모를 지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초격차 기술과 콘텐츠, 소프트웨어 파워 등을 통해 추격을 따돌리는 게 시급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중국의 ‘과학기술혁신’ 역량이 주요 37개국 중 4위였다. 한국보다 3계단이나 앞섰다. 드론과 로봇,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바이오 같은 미래 첨단산업에서 중국이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지난 9월 20일 발표한 ‘2023년 글로벌 혁신지수(GII)’에서 중국은 12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 ‘100대 과학·기술 클러스터(S&T Cluster)’에서는 24개 클러스터가 선정돼 세계적 클러스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 100대 클러스터에 한국은 중국(24개), 미국(21개), 독일(9개) 다음으로 많은 4개(서울, 대전, 부산, 대구) 클러스터가 포함됐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하고 내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쌍순환 전략’으로 핵심 부품·재료를 자국산으로 꾸준히 바꿔온 결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간재를 수입·가공해 수출하는 가공무역 비중이 40%를 웃돌았으나 이제는 20%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한국무역협회는‘대중국 수출 부진과 수출 시장 다변화 추이’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 향상으로 대중국 수출 부진과 수입 증가세가 심화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스플레이는 2015년 -0.137에서 2022년 0.899로 증가했고, 이차전지(0.595→0.931)·자동차 부품(0.421→0.619)·석유화학(-2.115→-0.277)·기계류(0.814→-0.844)도 수출자립도가 높아졌다. 수출자립도는 ‘품목별 중간재 수입’에서 ‘품목별 수출액’을 나눈 값을 1에서 뺀 수치로, 1에 가까울수록 자립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배터리는 중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한국도 중국산 배터리를 지난해 1~11월에 59억 달러나 수입했다. 한국이 끊임없는 혁신으로 중국과 ‘초격차’를 확보하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 한 중국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빼면 설명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20%에 육박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 물량이 10% 줄면 국내총생산(GDP)이 0.78% 감소한다고 했다. 물량 변화 없이 반도체 가격만 20% 하락해도 GDP가 0.15% 줄어든다. 반도체 수출은 투자와 소득 경로를 통해 내수와 세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분야가 주력이어서 경기 변동에 더욱 취약하다.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이어서 가격 등락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반도체와 중국 수출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은 반도체에 쓰이는 희토류 수출 금지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언제든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이 부진하면 기우제를 지내듯 반도체 경기 회복과 중국만 바라보는 ‘천수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수출이 반도체와 중국에 편중돼 있어 수출상품과 국가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반도체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제는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수출이 특정 품목과 주요국에 편중돼 있으면 일부 지역의 수출규제나 업황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제침체나 자국 우선주의 등에 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국민 경제에서 반도체 부문의 의존도를 장기적으로 점차 낮추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무역협회와 유엔의 통계를 활용해 한국을 포함한 수출 10대국의 수출 품목·국가 집중도(허핀달-허쉬만 지수 │ HHI)를 산출한 결과 한국의 2020∼2022년 수출 품목 집중도는 779.3포인트로 세계 10대 수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실제로 상위 10대 수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68.7%로 10대 수출국(평균 58.8%) 중 가장 높았다. 그만큼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한국의 수출 국가 집중도는 1,019.0포인트로, 10대 수출국(평균 1,214.7포인트) 중 캐나다(5,734.4p)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처럼 특정 품목이나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대외 환경 변화에 따른 충격을 상대적으로 더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의 쌀로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삶을 무한정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 전쟁을 상수로 두고 수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거세지는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의 파고를 넘으려면 무엇보다 유연한 선제 대응 전략으로 긴축 일변도에서 재정을 풀고, 민간 소비를 늘려 내수를 진작하고, 산업구조 개편으로 수출 품목을 다양화하고 수출 영토를 넓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수출 실적에 온 나라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치둔(癡鈍)의 우(愚)만은 없도록 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사진=박근종
사진=박근종

(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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