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들을 감추지 말라/ 재빨리 증유되는 핏속에서/ 나는 맡았다/ 친숙한 아편에서 스며 나오는 냄새를/ 상처들을 감추지 말라..... 

<중략>

금 간 곳을 칠하라/ 새로 태어나 장례식 전날/ 철야하는 사람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심재(心材)의 맥박만을 전하라”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의 [전후(戰後)]라는 시(詩)의 일부이다.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월레 소잉카.

1986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受賞)한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위대한 이름이다. 이는 지금까지 유럽의 백인 문명권에서만 받아 온 노벨 문학상이 저 아프리카의 원시문명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강렬하고도 명쾌한 자기 선언으로,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 국가 국민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하면 우선 ‘비아프라(Biafr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아프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잠시 존재했던 국가이다. 1967년 5월부터 1970년 1월까지 존재하다 만 3년도 채 되지 않아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비아프라를 기억한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세월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핏빛 비극 「비아프라의 눈물」이 화인(火印)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비아프라는 나이지리아 연방정부와의 독립전쟁에서 무려 20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내어 세계 제2차대전 후 지구상 인류가 만든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중에서 초등학생만 해도 80여만 명이 굶주려 죽은 사실은 외신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런 나라, 비아프라의 인간적 고뇌와 고발이 1986년도 노벨 문학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소잉카는 나이지리아 서부의 '요르바(Yoruba)족' 출신이었지만 그는 비아프라의 '이보(Ibo)족' 편을 들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22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으며 전쟁 때에는 정부 전복 및 간첩행위의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펜으로 안 되면 몸으로 부딪치겠다는 그의 참여 정신은 핍박받는 세계 속에서 작가가 취해야 할 행동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주로 희곡을 썼던 소잉카의 작품에는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제6번 교향곡 [비창]이 거론되거나 배경음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특별히 ‘비창’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1970년 1월 12일 나이지리아 연방정부의 대공세로 전쟁이 끝나던 날 비아프라 방송은 '필립 에피옹' 참모총장의 전투 중지 호소 말미에 200만 아사자에게 바치는 [비창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끝내 침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아프라 방송을 통해전투 중지를 호소하는 참모총장
비아프라 방송을 통해전투 중지를 호소하는 참모총장

이는 소잉카, 그가 비아프라의 비극을 얼마나 처절하게 통감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의 지구상에서 발생했음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하여 아프리카 문학은 이제 고난과 미개인의 땅 아프리카가 아닌 원시문명으로서, 그리고 인간성의 원류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땅 아프리카로서, 현대 물질문명에 뒤틀리고 병들어 가고 있는 서구 문명에 거대한 파도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월레 소잉카. 이 검은 피부의 작가는 오늘도 불볕 태양의 열기로 이글거리는 아프리카의 어느 대지 위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원하라, 아프리카여! 저 태양이 식지 않는 한.....”

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의 제4악장을 듣고자 한다.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비창과 비극은 다르다.

비창과 비애는 다르다.

비창은 그냥 슬픔이 아니다. 비창은 슬픔에 젖은 채 망연자실 앉아만 있는 그런 정서 상태가 아니다. 비창은 슬프긴 하되 무언가를 준비시키고, 또 다른 감정을 잉태시키기 위해 부단히 격동하는 그런 생산적인 일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비창의 미학]에는 정적(靜的)인 것보다는 동적(動的)인 요소가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비아프라 방송이나 월레 소잉카가 다른 하고많은 슬픈 노래 중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택한 까닭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나이지리아에 항거하여 독립하려고 했던 비아프라. 그러나 끝내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200만 명의 애꿎은 생명을 아사(餓死)라는 최악의 비극 속에 몰아넣은 인류 사상 드문 역사의 치부를 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수(憂愁)의 작곡가라 불리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쓰는 동안 자주 통곡하였다는 ‘비창 교향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 곡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제4악장은 촛불처럼 마치 서서히 숨이 끊어져 가는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 이 암울한 4악장에는 그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쓰면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이 교향곡이 마치 나 자신을 위한 진혼곡(鎭魂曲)같이 느껴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결국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이 곡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한 뒤 9일 만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1893년 차이코프스키의 장례행렬
1893년 차이코프스키의 장례행렬

차이코프스키는 임종 직전 자신의 오랜 후원자요, 정신적 연인이었던 ‘폰 메크(Nadezhde von Meck)’ 부인의 이름을 몇 차례 부르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장례 행렬에는 수만이 넘는 시민이 나와 애도했다고 하며 얼마 후 ‘비창 교향곡’이 두 번째로 연주되었을 때 공연장이 울음바다로 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B단조 Op.74 [비창 교향곡] 제4악장 : 아다지오 라멘토소 (슬픈 마음으로 느리게) / 지휘, 정명훈 /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Pyotr Ilyich Tchaikovsky Symphony No.6 [Pathetique] Movement 4(IV. Finale. Adagio lamentoso-Andante) / Cond. Myung-Whun Chung /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참모총장의 전투중지 호소와 이 ‘비창 교향곡’을 200만 아사자에게 바치며, 마치 이 곡 4악장의 종지부와 같이 끝내 조용히 침묵해야만 했던 비아프라 방송은 지금도 깊은 침묵 속에서 깨어날 줄 모르고 있다.

이 음악을 듣노라니 문득 전체주의 독재권력에 의해 기아에 허덕이며 고통받고 있는 북녁 이산가족의 모습이 가슴을 깊이 파고든다. 특히 제4악장의 악상기호(Adagio Lamentoso '슬픈 마음으로 느리게') 까지도 남북으로 나뉘어진 우리 조국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 같아 오늘따라 이 곡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 한반도에 들려지는 이 ‘비창’은 민족상잔의 슬픔을 극복하고 태초의 한민족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노래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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