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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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 한 마리.

자그마한 병아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집으로 오는 내내, 이름을 뭘로 지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삐약이가 좋을까? 노랭이가 좋을까? 아니야. 이건 너무 흔해. 노란색이니까 개나리가 좋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집에 오자마자 개나리를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종이박스로 집을 짓고 집 한쪽에 음식과 물도 가지런히 놓아줬습니다.

삐약. 삐약. 작지만 선명하게 울어대는 그 소리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어찌나 신비롭고 귀여운지 한순간도 개나리 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를 마치고 왔는데 개나리가 축 처져 있었습니다. 울음소리도 약해지고 걷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힘겨워하더니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개나리의 죽음, 그건 생에 처음으로 겪은 이별이었습니다.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을 다시 마음 밖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게 이 얼마나 눈물겹고 가슴 아픈 일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이별은 참 아픈 거구나 그때 알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숱한 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아리를 떠나보내는 일, 친구와의 헤어짐, 연인과의 결별, 팀의 해체 등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이별의 아픔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에 비할 순 없습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함께 생활을 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그 허탈하고 공허한 마음은 어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그립고 만지고 싶고 말하고 싶고 눈을 마주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두 번 다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또 가슴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남은 자들이 겪게 되는 슬픔이 워낙 크다보니 죽음을 앞둔 사람조차 맘 편히 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죽음을 앞둔 사람들 중에 더러는 남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슬픔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마을에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는데 결혼식 내내 사람들의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결혼식의 주인공은 겨우 11살인 조시. 예쁘게 화장을 한 조시는 한눈에 봐도 어립니다. 이 결혼식은 다름 아닌 11살 생일을 맞은 딸을 위해 아빠가 특별히 준비한 것입니다.

조시의 아빠는 췌장암 말기로 살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시가 나중에 커서 결혼할 때 함께 입장할 수 없겠군.’

순간,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본인에게도 조시에게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조시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미리 결혼식’이었습니다.

아빠와 조시는 함께 입장해 주례를 맡은 목사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목사는 ‘영원한 딸과 아빠’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 순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 찾아오면 반갑지 않는 것, 그게 이별입니다. 만남이 있기에 이별이 있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막상 이별이 찾아오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별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요?

그 어떤 자세를 취한다 해도 슬프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후회라도 덜고자 한다면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잘 지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이별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이별의 시간이 먼 훗날이 될지 아니면 내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절절하게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만큼은 소중한 이와 모든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마디라도 더 들어주고 하나라도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세요. 후회 없이 그리고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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