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왕위 주장자들'의 한 장면.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연극인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적 부분에 뭐라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단지 올 것이 왔고, 우리가 생각한 모든 것이 현실로 벌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과 세종M씨어터 재개관 10주년 기념작인 헨리크 입센의 연극 '왕위 주장자들'을 연출한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이 말한 작품의 의미다. '왕위 주장자들'은 노르웨이 국민 작가이자 근대극의 아버지라는 평을 받는 헨리크 입센의 1863년 작품으로, 5막으로 이뤄졌다. 국내 초연으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심리 변화와 방황을 중심으로 154년이라는 시간을 관통하며 현대성을 가진다.

끊임없는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스쿨레' 백작은 올해 서울시극단 지도단원으로 합류한 유성주가 열연하며, '호콘' 왕과 '스쿨레' 백작 사이를 오가며 둘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인물인 '니콜라스' 주교는 베테랑 배우인 유연수가,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며 권력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하는 '호콘' 왕은 김주헌이 맡았다.

또한, 이창직, 최나라, 이지연 등 서울시극단 정단원들과 연수단원, 김현, 문호진 등 실력파 배우 총 23명이 보여주는 앙상블은 극의 몰입도와 매력을 높인다. 4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가운데, 31일 오후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 프레스콜이 열렸다. 전막 시연 후 기자간담회엔 김광보 연출, 김주헌, 유성주, 유연수 배우가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 연극 '왕위 주장자들'의 한 장면.

'왕위 주장자들' 작품을 소개해 달라.

ㄴ 김광보 : 방대한 분량을 120분으로 잘라서, 대본을 많이 손봤다. 원본대로 했다면 3시간 30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 대본을 보고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150여 년 전 헨리크 입센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언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올리게 됐다. 환란의 시기를 지나 희망이 탄생하려는 시점에, 그 희망이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희망인가라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으로 '왕위 주장자들'을 선택한 이유는?

ㄴ 김광보 : 이 작품은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하기 직전, 3년 임기 계획을 짤 때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입센 전문가인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로부터 괜찮은 작품이니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올해 대선이 12월에 할 거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할 줄 몰랐다. 이 작품과 대선의 연관성을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다. 작품에 흥미가 있어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자신이 맡은 인물을 설명해 달라.

ㄴ 김주헌 : '호컨'은 소명의식이 확실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여기 있는 세 인물 중에 가장 세다.

유성주 : '수쿨레' 백작은 앞서 '호컨'과 정반대의 인물로 확신보다 자신에 대해 자리와 권력에 대해 좀 더 의심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심을 향해 쫓아 나아가는 인물이다.

유연수 : '니콜라스' 주교는 '수쿨레' 백작의 의심을 부추겨서, '호컨'과 계속 싸우고 이간질하는 악마 같은 캐릭터다.

 

   
▲ 김광보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대사가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데, 중간에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다. 의도가 있나?

ㄴ 김광보 : 대사가 안 들리게 의도한 것은 없다. 다 들리게 해야 하는데, 변명을 드리자면 무대 준비 기간 시기가 오래 걸려서 극장에서 최종 리허설 한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 공연하면 잘 될 것 같다.

무대가 인상적이다. 어떤 의미인가?

ㄴ 김광보 : 무대는 박동우 무대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빈 곳에서 연극을 만들어나가려는 것이 내 작품의 특징이다. 빈 곳 속에서 오로지 배우만 돋보이게 연출하는 것은 계속 내가 써온 것이다. 나무가 매달려있는데, 나무가 왕관 같기도 하다. 뿌리는 근원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가 매달려 있다.

의도치 않게 전 대통령 구속과 세월호 목포 신항 입항이 같은 날에 일어났다. 이 작품을 보면서 현재 사회에 대한 생각이 날 것 같다.

ㄴ 김광보 : 연극인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적 부분에 뭐라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단지 올 것이 왔고, 우리가 생각한 모든 것이 현실로 벌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기존에 연출한 헨리크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 작품이 세월호를 나타냈다는 무대 평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사회의 메시지를 주는 대사가 있나?

ㄴ 김광보 : '사회의 기둥들' 무대는 어떤 상징적인 무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무대도 상징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징보다 기능적인 부분에서 공헌을 한 무대라고 보고 싶다. 장면도 많고, 배우도 너무 많아서 유기적 등·퇴장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라고 해서 무대를 만들었다. 원본이 83페이지 정도 되는데, 각색된 대본이 52페이지 된다. 20페이지 정도 줄였지만, 이 희곡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번역하면서 훼손한 것은 없다.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다듬기도 했지만, 원본에 없는 걸 집어넣지 않았다.

 

   
▲ (왼쪽부터) 배우 김주헌, 김광보 연출, 유성주, 유연수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13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의상을 보면 19세기 배경 같기도 하다. 모호한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ㄴ 김광보 : 시기적인 배경을 어떤 시기로 한 건 없다. 지금 현대 이곳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여준 방식에서,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것을 보여주건 간에 내가 만들고자 한 이유는 지금 현재 이곳이다. (제작비용에 대한 문제가 있었나?) 제작비용에 대한 문제점은 없다. 내가 무대를 비우는 데 주력하는 연출이고, 배우로만 연극을 만드는 요소가 있다. 특별하게 어떤 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

'햄릿' 등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비슷한 소재가 있다. 작년 셰익스피어 공연을 서울시극단에서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의 차별점이 있거나 동질점이 있다면?

ㄴ 김광보 : 내가 셰익스피어 몇 작품 했다. 헨리크 입센의 전문가인 김미혜 교수님이 번역하면서 말씀하시길 "입센이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했다. 실제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곳곳에서 만났다. '햄릿', '줄리어스 시저', '리어왕', 괴테의 '파우스트' 등 온갖 요소가 이 작품에 포함되어있다. 우연히 '줄리어스 시저'를 연출해서 느끼는 것인데, 그것과 비슷한 역할이 있다. 좀 더 생각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셰익스피어를 내가 다 안다고는 못해도, 셰익스피어를 아예 몰랐다면 이 작품을 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은 어떤 의미인가?

ㄴ 김광보 : 마지막은 첫 장면과 맞닿아있다. 환란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내가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역사가 반복된다는 의미의 목적으로 장면을 그렇게 만들었다.

 

   
▲ (왼쪽부터) 배우 김주헌, 김광보 연출, 유성주, 유연수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

연기하면서 고민을 많이 한 것 부분은?

ㄴ 김주헌 : 원래 대본에 있던 '호컨'의 이미지가 정의롭고 확신에 가득 찬 단순한 인물이었다. 연출님이 나에게 인물을 잡으면서 비열함도 넣었고,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까? '수쿨레'가 심리적으로 어떻게 대할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유성주 : 며칠 전에도 연출님께 그 말씀을 들었다. "지금 현재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다. 최소한 20년 전부터 계속된 권력 욕구로 왕이 되고 싶은데, 이런 것들이 중첩되어 오면서 쌓인 것을 어떻게 하면 표현할 수 있을까?"였다. 단지 이틀 전에 왕 선거에서 떨어져 나온 게 아니라, 쌓인 것을 어떤 깊이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도 계속 그것들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고 생각 중이다. 어떤 게 가장 고민인가는 그 부분이 아닐까 싶다.

유연수 : 방금 못 알아들으시는 대사가 있다고 하셨는데, 세종M씨어터 공간 자체가 중극장 정도 된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공연을 하지만, 여기서 발성으로 대사를 다 채우기가 힘들다. 그런 부분을 연습하면서 연출님과 모든 배우와 공감하고 중점에 뒀다. 배우분들도 이 극장에서 대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고, 채울 수 있도록 가장 큰 중점을 뒀다. 안 들리신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다.

김광보 : 오늘 프레스콜 행사는 내가 생각하기에 중대한 한 요소가 빠진 것 같다. 쉽게 공연의 3요소가 있는데, 일반 관객이 빠져있다. 그 관객이 빠진 상태에서 공연을 보니 여러 문제점과 괜찮았던 점을 발견했다. 관객과 오늘 밤에 만날건데 일반 관객이 어떻게 이 작품을 볼지 궁금하다. 잘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응원 부탁드린다.

mir@mhns.co.kr 사진ⓒ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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