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의 영리한 확장…공간이라는 안타고니스트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예고편은 관객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관객을 낚을 수 있는 대사와 장면이 조립된 영상에 홀려 극장을 찾은 관객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역시' 혹은 '예고편이 전부'. '맨 인 더 다크'는 근래 본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예고편이었다.
 
타 블록버스터보다 홍보가 덜 되어 제작 소식을 몰랐기에 그 신선도가 높았고, 핫한 배우가 없음에도 주목하게 되는 영화적 설정이 있었다. 맹인과 어둠 속 밀실에서 쫓고 쫓긴다는 이 설정만으로도 재미있어 보였다. 물론, 관람 뒤에도 '역시'라는 반응이 따라왔던 즐거운 영화로 '맨 인 더 다크'는 기억될 것이다.
 
   
 
 
밀실의 확장
'맨 인 더 다크'의 집에 갇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설정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패닉 룸'을 연상하게 한다. 조디 포스터, 자레드 레토가 출연했던 이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의 몇 없는 범작 중 하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다는 게 조금 흥미로운 정도다) '맨 인 더 다크'는 '패닉 룸'에 비해 공간은 더 좁고, 인물도 적어졌지만,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과 극에 몰입하게 하는 긴장감은 더 높다. 여기에 어둠을 잘 다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데이비드 핀처'스러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 인물을 가두고, 몸을 숨길 좁은 틈을 찾게 하는 이 밀실이라는 공간은 상대가 맹인이라는 설정 덕에 굉장히 넓어진다. 존재하는 공간은 좁으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이 영리한 설정이 도망자와 추격자의 양상을 무한히 확장한 것이다. 막다른 공간에 갇힌 인물들에게서 시각을 뺏어버리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된다. '인 더 다크' 덕에 분위기는 더 음침해지고, 긴장감은 더 높아졌으며, 인물 간의 대결 양상은 더 신선해졌다. 영화관이라는 암실이 관람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꼭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영리한 공간 연출
'맨 인 더 다크'는 밀실을 만드는데 역량을 최대한 쏟아부은 전략적인 영화다.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감정은 밀실이라는 공간과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만큼만 제시된다. 나머지는 배제해버리고, 공간에만 집중하게 했다. (굉장히 효율적인 선택인데, 이 경제성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지하, 1층, 2층으로 이뤄진 집. 이 던전 같은 공간은 출입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던지고, 공간마다 위기 혹은 해답을 주는 장애물이 있다. 이 영화의 최고 캐릭터이자 안타고니스트는 이 집이다.
 
특히, 지하는 이 집과 영화의 많은 열쇠를 가진 공간이다. 예고편에서 불이 꺼진 곳, 모두가 눈 먼자가 되는 아수라장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상적 공간이 불이 꺼짐으로써 공포가 되는 순간, 그리고 모든 핸디캡이 사라지고 눈 뜬 자가 더 불리한 이 순간이 '맨 인 더 다크' 최고의 클라이맥스이며 아이디어 및 연출적 역량이 집중된 부분이다. 공간의 승리고, 아이디어가 꽃 피운 성취다.
 
   
 
공포 영화를 기다리며
'맨 인 더 다크'는 밀실과 맹인이라는 하나의 설정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끝까지 밀고 갔다는 점에서 열광하게 된다. 이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그리고 영화가 군더더기 없이 중심 아이디어를 살리고, 필요한 장면과 감정에만 집중한 경제성도 놀랍다. (국내엔 적지 않지만) 비교적 적은 예산인 990만 달러로 5,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맨 인 더 다크'는 국내 영화계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영화다. 비슷한 예로 500만 달러가 안 되는 제작비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라이트 아웃'도 있다.
 
최근 국내 영화는 웹툰, 소설 등의 원작에서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정상급 배우들의 멀티 캐스팅, 혹은 거대한 볼거리, 물량 등의 스펙터클에 열을 올리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렇게 비대해진 크기는 매년 늘어나는 관객 수에 맞는 적절한 변화로 보인다. 하지만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 영화와 비교하면, '중박' 영화가 적다는 현실은 비대해진 덩치에 비해 내실이 없음을 대변하는 것이며, 이는 아이디어가 약해지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의 빈약함은 좋은 '공포' 영화의 감소 경향과 그 궤도를 함께하고 있다.
 
   
 
 
공포 영화를 여름 시즌용 영화, 킬링타임용 영화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르는 꽤 많은 걸 시도할 수 있다. 새로운 카메라 워킹 및 연출,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하면서, 동시에 사회성 짙은 메시지도 녹일 수 있는 장르가 공포, 호러 등의 장르다. 이 장르를 한국 영화 산업이 값싼 여름용 팝콘 무비로 전락시킨 문제가 있었지만(대표적으로 '여고괴담'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영화의 완성도를 잃었다.), 이 장르는 연출자의 새로운 감각과 관객의 관심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많은 영화다.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에겐 '여고괴담 2'가 있었고, '밀정'의 김지운 감독에겐 '장화, 홍련'이라는 걸출한 공포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의 감독 초창기에 연출력과 스타일을 보여주고, 인정받게 한 영화다. 이 시대 젊은 감독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없어서, 이 장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은 예산의, 독특한 아이디어에도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이 더 갖춰져야 할 시기다. 신파와 익숙한 공식들로 범벅되어 창의성을 잃어가는 'K 무비 인 더 다크'를 끝낼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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