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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은 달콤한 인생일까명작다시보기 : 달콤한 인생(2005) 감독 김지운

[문화뉴스 MHN 오세준 인턴기자]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은 빛이 어둠을 향해 추락하는 영화다.

빈틈없는 일처리로 선우는 강사장(보스)로부터 총애와 신망을 받는다. 어느 날 강사장은 선우에게 자신이 출장을 가있는 동안 애인 희수에게 새로운 남자가 있다는 의혹을 전하며 감시를 맡기고, 만약 사실일 경우 처리하라 명령을 한다.

미행을 하는 동안 선우는 희수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3일째 그는 희수가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현장을 급습하지만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이를 알게 된 강사장은 선우에게 이유를 물으며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빠져나온 선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선우를 바라볼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정한 헤어스타일, 깔끔한 블랙 슈트, 스카이라운지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케이크 한 조각을 스푼으로 떠서 입안에 넣는 선우의 모습은 부르주아적 이미지, 도시적 남성성, 차가움을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그의 집 안은 선우의 집 안은 심플한 구도, 단색의 벽지, 소파, 스탠드, 상자 등의 미니멀리즘적인 구성으로 스카이라운지와 대비되는 공간이며 외로움과 소외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김지운 감독이 주로 영화의 시작이 미술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는 것을 비춰볼 때,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도시의 차가움과 사람들의 고독감과 동일시하게 바라볼 수 있다.

또 영화 시작과 끝에서 나타나는 선문답 장면을 제외하고 보여주는 시퀀스들은 선우의 행동 묘사를 통해 결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스카이라운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첫 장면은 선우의 삶이 밑바닥으로 향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선우가 스카이라운지에서 창문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삼아 쉐도우 복싱을 한다. 처음에 카메라는 안에서 창문을 비추도록 장면을 찍으면서 이후 창문 밖에서 건물 안으로 선우가 보이도록 장면을 찍는데 이 장면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남자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 인물들의 관계

① 선우와 희주의 마주침 그리고 욕망의 시작

영화의 맨 처음 쇼트, 녹색 잎들로 무성한 버드나무 가지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동안 화면 밖의 목소리가 말한다.

"어느 봄날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헀다,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네 마음뿐이다'

이 대사는 선종의 육조인 혜능이 깃대 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바람이나 깃발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라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선불교에 의하면 인식은 외부와 내부의 인연으로 생겨나는 현상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부에 마음에 있다.

이 영화대사의 스승도 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동양 사상에서 마음은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마음인 욕망과 의식을 가리킨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영화가 암시하는 바는 삶의 의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생동하는 인간 주체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20세기 현대철학자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결핍이 있고, 그 반증으로서 인간의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에 부질없는 고행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욕망에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욕망하는(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에 대하여 인간의 불가피한 숙명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을 한다. 학교 연습실에서 희수가 첼로를 연주하는 동안 선우는 희수의 첼로 소리에 깊이 빠져들어 간다.

같은 첼로 음악이 계속 들리는 동안 카메라는 선우의 등 뒤를 보여주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로 전환한다. 이는 그동안 선우가 강사장으로부터 억눌린 혹은 인식하지 못 했던 욕망이 깨어났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의 욕망은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에서 주체로 살 수 있는 불씨로 생각할 수 있다.

② 소유와 존재 ~ '희주'를 대하는 선우와 강사장의 태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은 '소유인가? 존재인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소유냐 존재냐> 중에서 그는 인간을 소유지향의 인간과 존재 지향의 인간 두 종류로 구분해 놓았다.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가 소유하고 지배하고 권력을 행사 할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경쟁적이고 적대적이며 끊임없는 불안으로 몰아 결국 자신도 소외시키게 만든다. 반대로, 존재지향적인 사람들은 물질 같은 소유물에 기초를 두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 내면의 능동성, 진정한 기쁨, 삶의 긍정,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한다.

영화에서 강사장은 소유지향적인 인물이고, 선우는 존재지향적인 인물이다. 프롬의 분석에 의하면 사람들은 점점 존재지향에서 소유지향으로 바뀌어감으로써 진정한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소유지향적 인물들에게 경고하듯 프롬은 말한다.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고…' 마치 선우가 희수에게 존재 그 자체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 희수라는 존재에 대한 그 의미를 느낀 순간처럼 말이다.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지"라고 말하는 선우에게 희수는 죽어있던 삶의 향유와 의미를 일깨우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강사장처럼 그녀의 타자성을 부정하고 그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자신의 다름과 그녀의 고유한 타자성의 세계를 인정하고 단지 그녀가 일깨워준 존재의 달콤함을 자기 나름으로 즐길 뿐이다.

③ 선우와 강사장의 대립구도

둘의 관계는 보스와 부하로서 마치 권력자와 피권력자,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노예, 상사와 부하처럼 수직적이고 단절된 관계이다. 예를 들면, 선우가 강사장에게 이유를 물을 때, 진짜 이유를 끝까지 강사장은 얘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선우 입장에서 핵심적인 질문을 풀지 못하게 되는데, 사실 선우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에 강사장이 선우에게 "너 대체 나한테 왜 그랬니?" 라고 물었을 때, 선우 역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결국 둘 사이는 서로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인 것이다. 선우가 희수를 감싸준 행위는 권력자에 대한 배반행위이며, 둘 사이가 파국으로 가는 시발점이다.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복적인 이유는 희수를 소유하려다 실패한 자신과 달리 선우는 희수와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갖지 않지만(영화 전체에서 희수를 사랑하는 선우의 마음은 모호하고 절제 있게 나타나며 희수는 끝까지 이 시살을 모른다.) 그의 태도에 뭔가 달라졌기 때문에 즉 그가 그녀를 통해 달콤한 인생의 향유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 에 따르면, "'시기란 타자가 자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즐기고 있는 환상에 그 향유를 파괴하고 하는 감정"이다.

선우 또 강사장에게 '잘못했다' 라고 말하면 그냥 가볍게 지났을 일인데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가?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이 가져오는 향유 자체는 어느 절대권력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존재의 근원적인 뿌리인 셈이다.

프랑스의 작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에서 "인간이란 금지사항, 권위, 범규 따위에 대항하지 않고서는 기쁨을 맛 볼 수 없으며 인간의 자립적이고 존재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반항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어쩌면 선우는 자신의 의식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을 발견하는 순간, 금지된 것에 대한 유혹을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르겠다.

멋진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올 때면 '영화처럼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인생을 사는 모습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주인공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인가?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주인공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A Bittersweet Life' 라는 점을 비춰볼 때 삶은 달콤할 뿐만 아니라 씁쓸하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쓰디쓴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고통의 연속일 수 있다. 비록 그 끝을 알 수 없더라도 선우처럼 강하게 밀고 나아가는 삶이 주인공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yey12345@mhnew.com

 
    오세준 | yey12345@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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