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27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문화뉴스] 열섬현상이라는 게 있다. 도시지역 온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 올겨울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열섬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 특히 강동원이 몰고 온 난기류 덕분에 더 뜨겁다. 이뿐만 아니라, 스크린 독점에 대한 문제로도 영화관은 타오를 지경이다. 일반적으로 열섬현상은 겨울에 더 뚜렷하다고 하는데, 영화계도 유독 지난 겨울에 과점 문제로 뜨거웠다. 작년 겨울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사실 이 글은 '검사외전'이라는 영화의 텍스트를 읽으려 했던 글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좁은 시야를 가진 덕분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독해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검사외전'을 읽어볼 만한 부분은 '네블라이저' 정도일 듯하다. 그 작은 물건이 없어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걸 흥미롭게 보던 우종길(이성민). 그는 한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생존 도구를 빼앗고, 그를 질식시켜 죽였다.

이 구도를 '검사외전'의 주제로 확장한다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약자의 숨통을 막는다는 이야기로 이 영화를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느끼게 할 정도로 '검사외전'의 만듦새가 뛰어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이 영화는 익숙한 장치들이 겉을 감싸는, 어딘가 허술한 영화다. 허술한 것들을 작위성이란 접착제로 쉽게 이어 붙인 영화다.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강동원이 사기꾼을 연기한 이 영화는, 강동원의 아우라가 관객에게 사기를 치는 영화다.

파괴적 이미지

'검사외전'이 주는 유일한 즐거움은 배우의 연기다. 그중에서도 강동원이 유독 돌출되어 있다. 그의 대사 한 마디에 객석은 들썩였고, 그의 키스신은 영화관을 여자 늑대들의 비명으로 들끓게 했다. 이러한 생경한 광경을 만들어 냈다는 것, 영화 속 이미지가 객석의 즉각적인 피드백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강동원의 이미지는 파괴적이다.

거대한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의 얼굴은 3D 등의 시각적 테크놀로지와 맞붙어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늑대의 유혹'에서의 그 유명한 '우산' 장면 이후 그는 이미지만으로도 영화를 채울 수 있었고, 관객을 객석에 앉힐 수 있었다. '검사외전'은 강동원의 얼굴을 전시하면서, 그의 이미지가 가진 힘을 재확인해준 영화다.

이번 영화에서의 강동원이 독특하다면, 그것은 여태 볼 수 없었던 '가벼움'을 보여준 데 있다. '전우치전'에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번 영화처럼 친근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한 해에 한 편 정도 볼 수 있던 그를 '검은 사제들' 이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독특하다.

강동원이 최근 대형 연예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를 영화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쓸데없이 남 걱정을 하자면, 그가 아껴온 이미지를 한 번에 방출해 여태 아끼고, 숨겨 온 아우라를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악인의 보편성/면역성

강동원의 이미지, 끼를 제외하면 이 영화엔 남는 것이 거의 없다. 2015년의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로 가장 뜨거운 배우 황정민, '미생'의 이성민이 등장함에도 그들의 빛은 바랬다. 그들의 연기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캐릭터엔 매력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플롯에 매력이 없다. 복수, 사기(범죄), 코미디 등의 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복수의 서사는 긴장감이 없고, 복수에 성공해도 통쾌함이 없다. 사기꾼을 이용한 작전도 몰입하기 힘들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은 강동원의 능청스러움과 '붐바스틱' 열풍을 몰고 온 춤, 그뿐이다.

정보를 모으고, 복수를 위한 계획을 짜는 장면에서는 '케이퍼 무비' 장르(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영화. '오션스 일레븐', '도둑들' 등)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지만, 모든 계획이 어설픈 행동 속에서, 너무도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긴장감을 느끼기 힘들다. 한치원(강동원)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목적을 달성한다.

   
 
영화는 그(강동원)의 매력이 현실성마저도 초토화할 수 있다고 말하려 했을까. '검사외전'의 진행이 순조롭다는 것은 이 영화가 작위적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치원의 사기엔 리얼리티가 실종되어있다. 때문에 '캐치 미 이프 유 캔'같은 유쾌한 사기극으로 이 영화를 분류하기 싫다.

작위적인 설정들로 뭉친 이 영화의 플롯을 받치고 있는 것은 우종길이라는 적대자다. 마블이 만드는 영화가 유사한 플롯을 가지고도 매번 재미있는 이유는 매력적인 적대자, 빌런의 존재감 덕분일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검사외전'도 너덜너덜한 플롯을 감추기 위해 적대자를 전면에 내세우려 했다.

이 영화는 우종길이 얼마나 악한가를 보여주고, 관객이 그에게 분노하며 파멸을 기다리게 한다. 이런 설정은 우종길이 달궈진 주전자로 사람을 때리는 장면 등에 배치되어 있다. 굉장히 자극적인 이 장면의 역할은 관객의 분노를 끌어오는 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이 악인에게는 매력이 없고, 극이 진행될수록 그에게서 긴장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리고 '검사외전'은 우종길을 정치인으로 설정하면서, 최근 영화의 트랜드도 따른다. 재벌 2세, 정치인 등의 화이트칼라 범죄인들은 현실의 거울처럼 영화에 등장하고, 관객을 분노하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뉴스에는 없는 정의를 영화에서 구현한다는 점. 영화가 시대를 대변하고,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처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악인들의 파멸은 매력적이다.

'검사외전' 이전, 2015년에 관객은 엄청난 악인이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에 열광했는데, 두 편 모두 사회 상류층이 질 나쁜 악인으로 등장했다. 조태오(유아인)와 장필우(이경영). 그리고 관객은 그들의 파멸을 목격하고, 통쾌해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설정만으로 관객은 분노하지 않을 것 같다. 화이트칼라의 범죄가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으나, 싫증을 느낄 수도 있다. 싫증. 이는 유사한 악인들의 유사한 플롯을 보는 것에 지쳤다는 말도 되지만, 더 무서운 가정도 내포한다. 지금의 관객은 이런 악인들에게 별 감흥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스크린 밖, 뉴스에서 이런 부류의 인간을 너무도 많이 목격했기에 웬만한 악인과 나쁜 짓에는 자극을 받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쁜 놈들의 나쁜 일들이 보편적인 시대이고, 덕분에 관객은 이에 면역성을 키울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스크린에서 충격을 받을 시기가 지나간 것이다. '검사외전'이 재미없었다면, 그리고 우종길에게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혹시 나는 악인의 나쁜 짓과 폭력에 면역되지 않았는가.'

   
 
독과점과 악의 보편성/면역성

강동원의 춤만큼이나 이 '검사외전'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로 뜨거웠다. 엄청나게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검사외전' 덕분에(?) 관객은 영화관에서 선택권을 잃었다. 사실, 이렇게 영화관이 관객이 볼 영화를 선택해주는 것도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12년의 '광해' 때도, 독과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 옛날 '괴물'부터 문제화되었다) 2016년 독과점의 문제와 2012년의 그것은 본질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다.

제작과 배급을 함께 맡은 거대 회사 때문에, 제작비가 적은 영화(독립, 예술영화 등도)는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하고 수익을 낼 수가 없다. 작은 영화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관객은 특정 회사가 만드는 거대한 영화만 소비하게 될 것이다. 다양성의 실종이고, 상상력의 소멸이며, 영화의 퇴보다.

앞서 관객들이 악인들에게 면역되었듯, 스크린 독과점에 면역되었을 수도 있다. '검사외전' 전에도 스크린 독과점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이처럼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현상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영화관엔 여전히 수많은 팜플렛이 있음에도, 관객이 볼 수 있는 시간대의 영화가 적다는 것, 그리고 상영관을 동등하게 확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느끼지 못했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악'에 면역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